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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서평 (24)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인류 불평등의 역사를 탐구한 ‘불평등의 역사’ 지난 10월 민주노총은 각 지역 본부들을 중심으로 “불평등 타파”를 구호로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코로나19 감염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총파업대회를 진행했던 이유는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에게 불평등이 그만큼 절박한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총파업대회를 통해 불평등이 문제인 이유와 평등이 왜 중요한지 시민들의 광범위한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소위 ‘능력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과정이 공정하다면 그 결과로 오는 불평등은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력, 시험 등의 결과로 인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한국식 능력주의가 공고한 사회에서 불평등을 타파하자는 구호는 능력을 갖추지 ..
1980년대 후반 영화 시리즈는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영화에서 상상한 30년 후 미래의 모습(2015년)을 현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된 도구가 되는 타임머신은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다른 다양한 기술이나 제품들은 현실에서 이뤄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지문결제, 드론, 무인상점, 스마트 TV 등 상상이 이미 현실이 된 기술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호버보드, 하늘을 나는 자동차, 쓰레기를 이용한 에너지 변환 시스템 등도 아직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을 구현한 제품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호모 이마기쿠스(Homo imagicus)라는 별명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까페나 하나 하면서 살고 싶다. 매일 커피향을 맡으면서.” “회사 그만두고 동네에서 책방이나 하고 싶다. 여유롭게 책이나 읽으면서 지낼 수 있잖아.” 직장생활이 힘들다며 회사 동료들과 푸념을 나누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까페 사장, 책방 사장이 이 말들을 들으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요. 회사에 매여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까페나 책방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책을 읽는 사람들 숫자가 점점 적어지는 한국에서 책방을, 그것도 자그마한 동네책방을 하겠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왠지 책방 주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자유, 여유, 낭만이 먼저 떠오르는 것..
한국전쟁 후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평생 농부로 고생하며 살았다고 하시는 제 부모님은 자식들은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아주 단순한 공식이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 자식들이 본인들보다는 덜 고생하며 사는 것.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하면 조금은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습니다. 부모님에게 ‘성공’은 경제적인 안정이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좋은 직장’이란 높은 급여를 받는 안정적인 직업이었고 공부는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공부했던 이유도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 높은 수능 점수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위 몇%에 들기만 하면 이후의 삶..
“아빠! 회사 꼭 가야해?” 내일은 일하러 가야해서 놀아줄 수 없다는 말에 초등학생 딸이 제게 종종 묻곤 합니다. 딸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너 장난감도 사주고 용돈도 주려면 돈 벌어와야지!” 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니는 혹은 일하는 첫번째 목적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딸은 이제 제법 커서 아빠가 회사에 가는 목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눈치입니다. “아빠! 난 뭔가를 연구해서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빠는 꿈이 뭐였어?” 하아...이건 난이도가 좀 있는 질문입니다. 어릴 때 장래 희망란에 과학자라고 적었던 것을 희미하게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로봇 만화를 좋아했었으니까 아마도 지금으로치면 제 꿈은 로봇 공학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뭐 딱 맞는 분야는 ..
여성, 인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날입니다. 회사가 매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여성조합원들에게 근무일수 하루를 빼주는 걸 보면서 ‘여성들은 좋겠네’ 하고 부러워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어떤 남성조합원은 왜 남성의 날은 없냐며 볼멘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남성들이 이처럼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남성의 날은 왜 없냐고? 여성의 날을 따로 정해서 기념한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소외되어 왔기 때문임을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최근 몇년 동안 많은 남성들이 ‘이제는 성평등이 이루어졌다’ 혹은 ‘역차별이다’라고 말하기도 하..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12월 31일과 다음 해 1월 1일이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해 아침이라고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참 이상하다 생각하곤 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운 느낌은 해뜬 후 아침이슬처럼 금새 사라져 버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모순되게도 저 역시 연말연시엔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살아갈 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합니다. 까페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에 끊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들의 인생은 어떨까 궁금해 하고, 텔레비전에서 보는 유명인들의 삶을 동경하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다..
“40분마다 1명, 하루 38명, 한해에 1만4천명이 자살하는 나라” 얼마 전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가 칼럼에서 언급한 이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연말이다 크리스마스다 한창 들뜬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속수무책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서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없다 신영전 교수는 2018년 대한민국 자살 사망자 수를 보면서 “자살은 없다”고 썼습니다. 신 교수는 칼럼에서 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지목합니다. 타인의 자살을 함부로 비난하는 자들, 대책 없는 정부, “대학을 못 가면 살 가치가 없다”고 내뱉은 부모와 선생들, 민생을 외면한 국회의원들, 악한 검찰과 기업인들, 돈과 권력의 편이..
매일 곁에 두고 읽는 묵상집, 박노해 사진에세이 연말연시. 또 한 해가 흘러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볼 것이고 또 새롭게 맞이할 한 해를 계획할 것입니다. 연말이 되니 저 역시 한 해를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달력, 다이어리, 스마트폰 메모 등을 찾아보며 지나온 한 달 한 달, 하루 하루를 추적해 봅니다. 자연스레 ‘하루’의 의미도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 참으로 평범하고도 경이롭고, 흔하고도 무서운 말이 ‘하루’다. 하나의 물방울이 온 하늘을 담고 있듯 하루 속에는 영원이 깃들어 있는 일일일생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하루는 저 영원과 신성이 끊어진 물질에 잠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지금 시대는 돈이 없이는 살 수 없고 돈이 있어도 삶이 ..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몸싸움도 마다않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부정을 저지르는 검사와 판사들에 대한 고발도 끊이지 않습니다. 감옥이 우리나라 대통령의 필수코스가 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치’는 더러움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도 정치라는 말이 붙으면 눈살부터 찌푸리게 됩니다. 정치인들의 실망스런 행태들로 인해 죄없는 정치가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회사에서도 정치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저 사람은 정치를 참 잘해서 승진이 빨라’라든지 ‘너 참 정치적이다’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정치’는 상사에게 하는 아부 혹은 조직 내에서의 권모술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더럽게 만든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