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대학 Rotman 경영대 학장을 지내고 현재는 Martin Prosperity Institute 사장인 Roger L. Martin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9년 1-2월호에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효율성 추구의 대가>라는 글을 썼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효율성 추구가 어떤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글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실재하지 않는 가정에 기반한 경제학은 언제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질까? 심하게 말하면 가장 큰, 공인 사기꾼 집단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Part 1에 이어)

이와 같은 부작용을 사회는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경쟁우위의 기반이 되는데 있어 덜 관심을 받았던 복원력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복원력을 향해

복원력은 충격 후에 제 모양을 되찾기 위해 어려움으로부터 회복되는 능력이다. 기존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효율은 파괴할 것을 추구하는데 반해 복원력 있는 시스템은 다양성, 불필요한 중복, 느슨함 등을 특징으로 한다.

효율 추구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복원력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할 수 있다.

규모 제한

반독점 정책에서 1980년대 초반 이래로 효율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경향이 우세했다. 사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효율성 증대는 과도하게 커질 수 있는 합병자들에 대한 적합한 방어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효율성 추구의 이득이 소수의 강력한 주체에게 누적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향을 거스를 필요가 있다. 시장 지배는 그것이 유기적인 성장과 같은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수용되어서는 안된다. 스냅챗을 죽이기 의해 페이스북이 자신들이 인수한 인스타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허락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아마존이 다른 모든 판매상들을 죽이게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 십수년 전 인텔이 AMD를 쳐부수기 위해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할인을 해주었던 것은 좋지 않은 것이었다. 최근 퀄컴이 인텔과 비슷한 행동을 했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 반독점 정책은 그것이 효율성을 낮추게 된다고 할지라도 보다 역동적인 경쟁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마찰이 있도록 하라

시스템을 더 효율적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마찰을 제거해 왔다. 완벽한 클린룸을 만들려고 할 때 방안에 있는 모든 미생물을 제거하는 것처럼. 이러한 전략은 새로운 미생물이 들어와 무방비 상태인 주민들을 사정없이 파괴하기 전까지는 잘 작동한다.

위와 같은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 기업과 정부는 정기적인 면역요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에서 모든 마찰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시스템이 복원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장소에 생산적인 마찰을 도입해야 한다.

국제 무역에 대한 낮은 장벽을 순수하게 좋은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무역을 통해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는 했지만 파레토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정책입인자들은 소수 기업의 지배가 효율을 최대화하는 것일지라도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몇가지 무역 장벽들을 도입해야 한다. 프랑스의 소규모 제빵업체들은 강력한 규제를 통해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그 결과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프랑스 빵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 일본의 비관세장벽은 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일본시장에 침투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성장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마찰은 자본시장에도 필요하다. 미 규제당국의 현재 목표는 유동성을 최대화하고 거래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규제당국은 뉴욕증시가 다른 증시들을 합병하게도 하고 Intercontinental Exchange에 뉴욕증시가 합병되는 것도 허락했다. 이를 현실화하게 되면 부의 파레토 분포의 상위에 있는 억만장자 헤지펀드들이 소수의 더 큰 시장에서 거래하는 속도를 높일 것이고 그 결과 파레토 분포를 더 극단적이게 만들것이다. 미 규제당국은 유럽 최대증시인 런던증시와 독일증시 합병을 막았던 EU처럼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증시를 설립하려는 새로운 주체들 앞에 장벽을 세우는 일을 멈춰야 한다. 이런 장애물들은 기본의 거대 주체들의 권력을 공고히할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공공부문 연금펀드들이 주식 대출을 금지한다면 단기 매매와 이를 유발하는 변덕스러움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장기 자본 장려

보통주는 장기적이어야 한다. 주식이 일단 부여되면 개념적으로 회사는 그 자본을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구든 회사의 허가없이 주식 시장에서 지분을 살 수 있다. 이는 단기 투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장기자본은 회사가 장기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당신이 내게 100달러를 주면서 ‘10년 동안 원하는대로 사용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24시간 동안에 어떻게 사용할 지 말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100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농담처럼 얘기하듯 워렌버핏의 주식 보유 기간은 “영원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가치에 있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장기와 단기 투자에 정확히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 이것은 실수다. 보유 기간에 따라 권리에 차등을 둬야 한다. 이런 접근방식으로 보통주 보유자들에게 10년 동안의 보유기간 기준으로 하루당 한표를 부여할 수 있다. 10년동안 100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신은 365,000주 투표권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주식을 구매한다면 구입 당일 100표를 얻게 된다. 그리고 구매자가 장기보유를 하면 결과적으로 365,000표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구매자가 주식을 몇 달 정도만 보유하는 헤지 펀드라면 장기 투자자들의 이익은 전략에 따른 영향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주권을 할당하면 주식 장기보유자들에게 보상이 될 것이다. 한편 단기로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 주주권이 감소하기에 해지펀드가 해당 기업을 휘두르기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몇몇은 이렇게 하면 나쁜 경영자들이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경영이 만족스럽지 않은 투자자들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는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주주들이 경영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한 주주가 회사로 하여금 자산을 팔거나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거나 회사의 미래에 해가될 수 있는 다른 조치들을 취하게 하여 단기 자금을 모으고 싶을 때 그 주주는 해당 의제를 추진하기 위한 주주권을 얻기 위한 능력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라

효율성 추구 측면에서 반복적인 노동은 최소화되어야 할 비용으로 믿게 되었다. 기업들은 교육과 숙련기술 개발에 투자를 줄이고 임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들 사용하고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 스케쥴을 빡빡하게 관리하고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게 숙련기술이 필요치 않은 일자리를 설계한다. 이는 노동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노동은 생산적이 될 수 있는 자원이다. 현재의 경영 방식은 비용을 줄일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나가게 한다.

만약 우리가 장기적인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낮은 숙련기술, 최소 임금 임시직을 위한 일자리 대신에 보다 생산적이고 가치있는 일자리를 고안해보면 어떨까? MIT의 Zeynep Ton은 몇몇 할인판매상들이 보다 헌신적이고 지식을 갖춘 노동자들, 더 나은 고객서비스, 더 낮은 실수, 판매와 수익 증가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한 바 있다. 이러란 노력은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도록 했다. 핵심적이지만 반직관적인 전략의 한 요소는 직원들이 예상치 못했지만 가치있는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게 여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기업에만 있는게 아니다. 값싼 노동 모델은 더 넓은 의미의 경제에서 매우 비용이 큰 것이다. 회사가 노동 비용을 줄일 때 월마트와 같은 회사들은 단순히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납세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최근 의회 연구에서 월마트 직원 200명이 연방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여기에서 직원들 한 사람에 대해서 낮은 임금에 의해 필요하게 되는 수당을 위해 매년 2759달러가 지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000개 점포와 230만명의 직원을 가지고 회사가 자주 선전하는 노동 효율성은 가격표를 상당히 무겁게 만들고 있다.

복원력에 대해 가르치라

경영 교육은 오로지 효율성 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질을 측정하기 위한 단기 대용물을 도입하는 분석 기법들을 가르친다. 그 결과 졸업생들은 복원력이 크게 부족한 채 효율이 높기만 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세상으로 향한다.

경영대학장, 교수, 학생들은 아마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 과정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금융은 효율적인 재무 구조 추구를 가르친다. 효율적인 비용관리는 재무회계의 목적이다. 인사영역에선 효율적인 직원되기를 가르친다. 마케팅은 효율적인 목표선정과 세부 시장에의 효율적인 판매에 관한 것이다. 운영관리는 공장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대한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목표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은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시장 자본주의가 주주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이다. 비슷하게 이번 분기의 노동 비용 감소는 효율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올해 경영 환경 하에서 최적 자본 구조는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장기 산출물을 평가하는 단기적인 방법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단기적 조치들을 계속 장려하게 되면 관리자들은 그것들을 최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단기적 조치들이 효율이 높다고 판단되면 헤지펀드들은 회사를 통제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펀드들은 규제당국과 기관들에 의해 응원을 받을 것이고 이들의 행위들이 회사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미래 민주적 자본주의를 위해 경영 교육은 복원력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결론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현대 역사의 중심 주제는 폭정과 민주적 자본주의 사이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확실히 후자가 더 우세하다. 후쿠야마도 그랬듯 후자가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주장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민주적 자본주의를 뒷받침했던 경제적 효율성이 수반되는 이득을 분배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증거들을 우리는 매일 발견한다. 파레토 분포의 냉혹한 현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다수의 삶을 더 낫게 해줄 수 있다는 유권자들의 핵심 신조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할 수 있고 훨씬 덜 공평하다. 변화가 필요하다.

 

 

 

출처: Roger L. Martin(전 토론토 대학 Rotman경영대 학장, 현 Martin Prosperity Institute 사장),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HBR, 2019년 1-2월호.

봄꽃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4월. 꽃을 즐길 수 있는 주요 거리들엔 완연한 봄을 맞이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필자의 고향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부도로 가는 길도 주말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일 게 눈에 보입니다. 이 지역은 서울 근교에 있는데다 꽃구경도 하고, 바다내음도 맡고, 해산물 요리도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저도 고향집을 방문할 때면 가족들과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가는 길목 선감도라는 곳에 선감학원이라는 소년 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1982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지난 해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가 쓴 <소년들의 섬>이라는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았습니다. 평소 종종 다니던 곳에 이토록 잔혹한 국가폭력의 역사가 있었다니…가까운 주변에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인터넷 검색창에 선감도를 입력하니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선감도 수용소의 잊혀진 아픔을 기억해내고 진실을 밝히려 노력해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식민지 말기에 만들어져 1982년까지 운영되었던 선감학원은 4.3이나 5.18과 같은 국가폭력 사건들만큼 폭넓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민선 기자는 선감학원에서의 인권유린 속에서도 살아 남았던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여전히 고통스러운 인생이야기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어렵게 듣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아픈 역사가 오롯이 담긴 책이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학원, 실제는 지옥같은 수용소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나쁜 짓을 할 것 같은 8~18세 소년들을 잡아다가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소년 감화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 잔인한 인권유린 시설을 해방 후에도 없애지 않은 채 군사독재 시절까지도 운영했습니다. 박정희 독재 시절엔 사회를 정화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납치하기도 하고, 미아보호소에서 막무가내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선감도로 끌려온 아이들은 강제노동과 폭력(성폭력)에 시달리며 죄수처럼 살았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기에 지옥같았던 수용소를 벗어나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수용소를 나와서도 아무런 기반 없이 혼자 힘으로 세상을 버텨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기억을 힘겹게 떠올리며 저자의 인터뷰에 응했을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책장 한장을 넘기는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수용소에서 그리고 이후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감히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삶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뒤늦게 비극적 역사를 알게 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선감학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에 기억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이 사건의 진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앞장서왔던 역사학자 정진각 소장은 처절하게 삶을 이어온 피해자들에게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정 소장의 노력만으로는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선감학원에 대해 알게 된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정 소장과 뜻을 모은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폭력 사건들 만큼 논의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나 경기도는 선감학원의 비극이 국가에 의한 폭력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이 없다.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 또한 거의 없었다. 정 소장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선감학원의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선감학원의 비극 대부분은 아직도 피해자들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20쪽)


선감학원을 거친 삶은 고통 그 자체

1963년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던 열 살 남짓 된 쌍둥이 형제 중 형은 이듬해 작은 꽃신 하나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왜 끌려왔는지도 모른 채. 관도 없이 묻혔던 형의 유골이 발굴되었을 때 유골을 받아든 사람은 가까스로 생존해 이제는 환갑이 넘은 쌍둥이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이 기억하는 선감학원은 굶주림과 지독한 매질이었습니다. 형이 죽은 후 동생은 운좋게 선감학원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이후의 삶도 그리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선감학원을 겪은 뒤에는 기를 펴고 살 수가 없었어요. 늘 불안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앞장설 일이 생겨도 나설 수가 없고, 사람 사귀는 것도 두렵고.”(47쪽)


동생은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막노동, 운전 등 평생을 성실히 일했지만 사글셋방에서 살고 가족도 없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당시에도 허드렛 일이라도 찾아 일해야 당장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파괴해버린 국가폭력 사건인데 가해자도 책임자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원망스럽습니다.

서울에 있는 삼촌 집에 가다가 남루한 옷차림을 이유로 경찰에 납치되듯 끌려갔던 한일영씨의 인생도 상상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어머니와 삼촌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경찰에게 잡혀 아동보호소에 들어간 후 선감도로 이송된 한일영씨 역시 강제 노동, 굶주림, 폭력을 겪으며 지옥같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동상이 걸려도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해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도 발을 자르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야 했던 삶…

선감학원에 수용된 지 3년 만에 한일영씨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웃 섬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섬 주민들은 선감도에서 탈출해 온 소년들을 겁박해 노예로 부렸습니다. 악귀와 같은 독재 정권 아래 국민들이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감도 주변 지역 주민들은 소년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탈출했던 이웃 섬에서 노예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한일영씨는 다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13살에 찾아가던 삼촌집에 18살이 되어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무원이 납치해 선감도로 보내기도

지금은 스님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곽은수씨는 부모와 형제가 있었음에도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에 실려 수원시청으로 끌려갔습니다. 곽은수씨는 공무원에게 납치되어 선감학원에 수용된 경우였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졌던 폭력입니다. 물리적 구타뿐만 아니라 선배들로부터 성폭행까지…그는 선감학원을 ‘약한 이는 고통속에서 죽거나 고통을 못이겨 도망치다 죽는 동물들의 세계’였다고 말합니다.

곽은수씨는 잡혀간 지 8년만에 선감도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탈출한 지 5년만에 선감학원을 찾아가 엄청난 매질을 당하고 성장증명서를 받아와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적응해 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다 절에서 만난 스님들의 도움을 통해 성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아보다 비장하게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이 곤두박질쳤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나를 잡아가지 않았다면! 그 생각이 안 떠나니까 속에서 뜨거운 게 막 올라와서 괴롭고, 그럴 때마다 찾아서 복수하고 싶고…다 용서하고 살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아니에요…너무 비참하잖아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죠. 지금도 꿈속에서 ‘기상’이라는 소리를 들어요. ‘제2반 인원보고’ 하고 소리 질러서 같이 자던 스님들 깨우기도 하고요. 공무원한테 붙잡혀 오는 꿈도 꾸고, 선착순 하는 꿈도 꾸고요. 국가에서 저지른 일이니, 국가로부터 사과라도 받아야겠어요.”(155쪽)


진실규명과 사과, 배상이 이뤄지기를

이분들 이외에도 인터뷰에 응한 선감학원 생존자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묻게 되고, 악독한 국가 아래서 시민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자문하게 되는 역사입니다. 저자는 선감도에 끌려온 소년들이 걸었을 길을 걸으며 길의 끝자락에 있는 박물관에서 작은 꽃신을 보며 선감학원의 진실을 확인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할 수 있는 것은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민선 기자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나서 후련해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포기하기 않고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이 책이 우리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선감학원이라는 잔혹한 국가폭력의 진상이 시민들에게 더욱 알려지고 진실이 규명되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배상이 이루어 지는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토론토 대학 Rotman 경영대 학장을 지내고 현재는 Martin Prospertiy Institute 사장인 Roger L. Martin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9년 1-2월호에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효율성 추구의 대가>라는 글을 썼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효율성 추구가 어떤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글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실재하지 않는 가정에 기반한 경제학은 언제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질까? 심하게 말하면 가장 큰 공인 사기꾼 집단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작 <국부론>에서 노동자 개인이 최종 제품까지 만드는 것보다는 분업이 기업을 보다 생산적이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년 후 데이비드 리카도는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에서 경쟁우위 이론을 주장했다. 자신들의 분야에 집중해 포르투갈 노동자는 와인을 만들고 영국 노동자는 옷을 만들어서 교역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주장이다.

이러한 통찰은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산업혁명은 낭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프로세스 혁신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을 조직화하는 방식이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생산성에 더 영향을 줄 수 있고 전문화가 기업이익을 창출한다는 개념들은 오늘날까지도 경영학 연구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미스와 리카도는 프레데릭 윈스로우 테일러의 선도자였다. 테일러는 경영도 과학이 될 수 있다고 주창했고 이는 W. 에드워드 데밍이 생산 과정에서 모든 낭비를 없애기 위해 고안된 총합 품질 관리 시스템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스미스, 리카도, 테일러, 데밍은 경영을 시간, 재료, 자본 등의 낭비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과학으로 변화시켰다. 효율성의 가치에 대한 신념은 결코 희미해진 적이 없다. 이는 더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WTO(World Trade Organization)같은 다자간 기구들에 스며들었다. 효율성 추구는 무역 및 외국 투자 자유화, 세금 부과 효율화, 탈규제, 민영화, 투명한 자본 시장, 균형 재정, 낭비 방지 정부 등을 통해 워싱턴 컨센서스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 세계 경영대학의 수업에서도 효율성 추구는 장려되었다.

낭비 제거는 합리적인 목표인 것처럼 들린다. 자원을 전에없이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를 왜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효율성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놀랍도록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초효율적인 기업들이 사회적 무질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까지 논의를 확장하고자 한다. 효율성으로부터 얻어지는 보상은 전문화의 정도가 높아지고 가장 효율적인 경쟁자들에게 시장 권력을 부여하는 효율성이 향상되어감에 따라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기업 환경은 극도로 위험이 높아진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이 지속불가능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해결책은 기업, 정부, 교육이 경쟁 우위의 좀 덜 즉각적 자원인 회복력에 강력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단기적인 이득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다 안정적이고 적합한 사업환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 

효율성에 대한 수그러들 줄 모르는 추구가 왜 위험한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먼저 경제 활동의 보상이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탐구해봐야 한다.

성과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소득, 이익 등의 경제적 결과를 예측할 때 우리는 종종 개인 수준에서의 보상은 운에 따라 무작위적이라 가정하곤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보상은 우리가 하는 선택을 포함해 아주 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결과가 운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작위성은 단순한 가정이다.

만약 경제적 결과가 무작위적이라면 이것은 가우스(Gaussian) 분포를 따라야 한다. 그래프로 그리면 보상의 대부분은 평균에 가까울 것이고 양 끝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모습일 것이다. 사람의 키, 몸무게, 지능지수 등과 같은 인간의 특성들을 포함해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와 같은 패턴을 따르기 때문에 이 패턴은 정규분포라고도 부른다. 혹은 그래프 모양 때문에 종(bell) 곡선이라고도 부른다. 데이터가 추가되어 갈수록 전체는 점점 더 정규분포에 가깝게 된다. 가우스 분포가 인간 사회와 자연에서 아주 일반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영역에서도 그와 같은 분포를 따를 거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경제적 결과들이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개인 소득과 회사 성과가 대체로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라 기대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정한다. 산업을 생각하는 고전적 방식은 소수의 승자, 소수의 패자, 그리고 중간 정도의 많은 경쟁자들이 있을 것이라 정의한다. 이런 환경에서 효율성에 따른 이득은 다른 주체들도 그것을 채택함으로써 빠르게 사라지고 회사가 실패하면 다른 경쟁자들이 그것을 대체한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경쟁시스템은 반신뢰 정책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제대로 분배가 되지 못하게 하는 매우 크고 강력한 하나의 기업이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만약 결과가 무작위 분포를 따르고 경쟁 우위가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면 효율성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지속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 성과에서 무작위성 가정은 맞지 않는다. 현실에서 효율성은 소수의 행위자들에게 지속하는 경쟁우위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분포를 따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한 세기도 전에 20%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80%의 이탈리아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파레토 분포에선 발생빈도 대다수는 낮은 쪽에 몰려있고 끝부분으로 갈수록 그 높이는 점점 더 높아진다. 여기엔 의미 있는 중간층이란 게 없다. 분배는 안정적이지 않다. 가우스 분포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달리 파레토 분포에선 데이터 포인트가 추가되면 분배는 더 극단적이 된다.

파레토 분포의 각 결과들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앞서 가우스 분포를 나타낸다고 했던 사람의 키를 보면, 키 작은 어떤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키에 기여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키는 정규분포를 나타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를 팔로우할 때를 생각해보자. 보통 먼저는 팔로우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핀다. 팔로워가 얼마 없는 사람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매우 많은 팔로워를 가진 유명인은 즉각적으로 매력있는 후보자가 된다. 팔로워가 많을수록 효과는 더 커진다. 때문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결과는 파레토 분포를 나타낸다.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 팔로워 대부분을 차지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수의 팔로워만을 갖고 있다. 팔로워 중간값 150-200정도는 수 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사람에 비해 아주 작은 비율이다.

부의 분포도 위와 같다. 어느 시대든 세계에 있는 돈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당신이 가진 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고 당신이 버는 돈은 다른 사람이 버는 돈과 독립적이지 않다. 게다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벌기가 쉬워진다. 흔히 말하길 돈을 벌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미국인 상위 1%부자가 미국 부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하위 90%는 국가 부의 단 23%만을 차지한다. 가장 부유한 미국인은 가장 가난한 미국인보다 천억배 더 부자다. 반면 가장 큰 미국인은 가장 작은 사람보다 세 배가 좀 안되게 크다. 파레토 분포가 훨씬 더 폭넓게 퍼져있는지를 재확인해 주는 결과이다.

부의 지리적 분포에서도 비슷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부자들은 몇몇 지역에서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 1975년에 미국인 상위 5%부자의 21%가 가장 부유한 10개 도시에 거주했다. 2012년에 그 비율은 29%까지 상승했다. 소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966년에 일인당 평균 소득은 아이오와주 세다 래피드에서와 뉴욕시티에서 동일했다. 지금은 세다 래프드가 37% 수준으로 뒤쳐져 있다. 1978년에 디트로이트는 뉴욕시티와 비슷했지만 지금은 38%수준이다. 샌프란시스코는 1980년에 국가 평균보다 50% 더 소득이 높았는데 지금은 88%가 높다. 뉴욕시티는 1980년에 80%가 평균보다 높았고 지금은 172%가 높다.

사업 성과도 파레토 분포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산업 연합은 선진국들에서 점점 흔해진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이익이 소수의 기업들에 집중된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산업의 75%가 더 집중화되었다. 1978년엔 상위 100개 기업들이 공개된 기업들 전체 이익의 48%를 차지했었는데 2015년엔 그 수치가 84%까지 치솟았다. 소위 신경제의 성공이야기들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역학아래 놓여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우스 분포는 파레토 분포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효율 추구가 소위 단일문화의 역학을 따라 이 역학구조에 어떻게 들어맞았으며 권력과 자기 이익이 몇몇 주체들이 시스템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통합에의 압력

UCLA소속 Bill McKelvey 등의 복잡성 연구자들은 시스템적 압박이 성과를 파레토 분포로 이끄는 몇몇 요인들을 확인했다. 그것들 중에는 문제가 있는 시스템에 대한 압박과 그 참여자들 사이의 연결의 용이함이 있다. 복잡성 이론가들이 좋아하는 설명 중의 하나인 모래 쌓기를 생각해보자. 처음엔 모래를 한 알씩 쌓아서 무너지지 않게 수천 개의 모래알을 더할 수 있다. 이때 각 모래알들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모래알 하나를 더했을 때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 때 모래알 하나는 거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만약 중력이 없다면 모래산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모래산은 중력이 모래알들을 끌어당길 때에만 무너진다.

사업 성과에서 중력과 같은 것이 효율성이다. 미국 쓰레기 관리 산업을 보자. 미국 전역에 수천개의 작은 쓰레기 수거 회사들이 있었다. 각 회사들은 특정한 경로에서 쓰레기를 수집하는 하나 또는 몇 대의 트럭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회사들의 수익은 꽤 정상분포에 가까웠다. 몇몇의 큰 회사들이 더 높은 수익을, 몇몇의 약한 회사들이 낮은 수익을 내고 있었고 대부분은 평균적인 수익을 내고 있었다. WM(Waste Management)의 설립자 Wayne Huizenga는 이 사업의 비용구조를 살펴보다 트럭 보유와  유지 관리가 두 가지 큰 요소임을 알았다. 각 소규모 회사들은 몇 대의 트럭을 구입하고 수리 차고를 운영했다.

Huizenga는 주어진 지역에서 몇몇 경로를 얻게 되면 두 가지가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트럭 제조사들로부터 훨씬 더 큰 구입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차량을 더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개별적으로 있는 유지관리 시설 대신에 하나의 훨씬 더 효율적인 시설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일을 진행해 갈수록 효율성의 효과는 더 큰 효과를 내는 요인이 되어 갔다. Huizenga는 작은 회사들을 계속 매입하고 새로운 지역들로 확장하기 위해 자원들을 만들었다. 이는 WM을 더 크고 더 효율적인 회사로 만들어갔다. 이것은 모든 더 작은 회사들에게 경쟁적 압력으로 작용했고 WM이 자신들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 가격을 더 낮게 했다. 이러한 작은 규모 회사들은 수익이 줄거나 회사를 WM에 팔 수 있었다. Huizenga의 성공은 시스템에 대한 압력의 거대한 증가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모래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쓰레기 처리 산업은 빠르게 합병되어 갔다. WM은 지배적 우위를 가져 가장 높은 수익을 냈고 두 번째로 큰 회사인 Republic Service는 수익이 줄어들었다. 병합될 가능성이 있는 몇몇의 더 작은 회사들 역시 수익을 별로 내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회사들은 근근히 버틸 정도로만 운영되었다. 이 산업은 WM이 승자독식하는 파레토 분포를 갖도록 구조화되었다. WM은 2017년에 14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WM이 매우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것을 반대해야 할까? 고객들에게 유익하다면 WM이든 작은 회사들의 모임이든 뭐가 문제인가? 효율성의 지배 모델에는 갑작스런 실패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해 농업분야의 사례를 살펴보자.

단일 문화의 문제

아몬드는 미국 여러지역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선 다른 지역들에서보다 더 잘랐다. 효율적인 생산 관점에서 규모의 경제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Central Valley는 아몬드 생산에 최적임이 확인되었고 오늘날엔 세계 아몬드 생산의 80%가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생물학자들이 단일문화라고 부르는 고전적인 모델이다.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는 하나의 공장, 하나의 산업을 지배하는 하나의 기업, 모든 시스템을 지배하는 하나의 소프트웨어.

그러한 효율성은 가격에 달려있다. 아몬드 산업은 불필요한 중복을 피해 설계되었고 그 과정에서 중복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을 잃었다. 한 번의 극단적인 지역 날씨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전세계 생산을 거의 쓸어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통합에는 연쇄 효과가 있다. 아몬드 나무들이 같은 토양과 같은 날씨에서 자라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꽃들은 모두 짧은 기간 동안에 모두 수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전역으로부터 벌집을 실어와야 했다. 동시에 꿀벌 유행병은 꿀벌들의 작업으로 수분이 필요한 식물들에 관한 문제를 일으켰다. 각 지역으로부터 이송된 벌집들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단일문화 수분으로 인해 벌들의 저항성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유행병이 생기게 되었다.

권력과 사리 추구

효율추구 시스템에선 가장 효율적인 주체가 가장 큰 권력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시스템이 효율적이 되어갈수록 효율적인 주체가 시스템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될 때 전체 사회 가치를 장기적으로 극대화하도록 하기 위해 효율의 목적이 사라진다. 대신에 가장 큰 중간 가치를 지배적인 주체에게 전해주는 것이 효율성이라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자본시장에서 볼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의사결정권자들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주체와 공동 노력을 한다. 기관투자자들은 고위 임원들에게 주식 기반 보상을 주는 것을 지지한다. 임원들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급여지불액을 줄이고 연구개발 예산 및 자본지출을 줄이려는 조치를 취한다. 자본지출 감소는 현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주식 가격을 올리게 된다. 이 투자자들과 임원들은 단기 이익 실현을 위해 자신들 주식을 팔게 되고 이는 거의 주식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이득은 비용에 달려있다. 가장 명백한 피해자는 회사의 치솟는 재산 때문에 해고된 직원들이다. 장기 투자자도 회사의 미래가 위태롭게 되기에 손해다. 회사가 제품 개선에 투자를 줄임으로써 위협이 될 수 있는 제품 품질 측면에서 고객들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다.

주주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은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들간의 경쟁이 보상을 줄 것이라 주장한다. 새로운 기업들이 해고된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고 고객들이 그들의 제품을 구입하면 주주들은 더 많은 보상을 가져다주는 투자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장이 매우 역동적이어야 하고 소수에 의해 지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은 몇몇 부문에서는 타당하다. 항공산업이 그렇다. 항공산업의 주 자산인 비행기와 게이트는 상대적으로 얻거나 폐기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면 새로운 업체가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시작하거나 반도체 공장을 만들거나 통신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경쟁우위가 네트워크 효과로 묶여 있어 기존의 주체들에게 우위를 부여하는 신 경제 시스템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역으로 새롭게 진입하기가 가장 어렵다.) 때때로 권력은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지배적인 주체의 목을 조르는 제약을 풀어주는 정치적 조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연금 펀드 산업에선 지배적인 내부자의 지독한 권력 남용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론상으로 펀드 매니저들은 장기 투자 결정의 품질에서 경쟁력을 얻어야 한다. 미국 내 75개 연금펀드 자산의 50%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25개 연금펀드들 중 19개는 정부가 만들고 규제하는 독점이다. 연금 고객들은 공급사를 선택할 수 없다. 만약 텍사스에서 교사로 일한다면 정부는 정부기관인 텍사스 교사 퇴직 시스템이 퇴직 자산을 관리하도록 지시한다. 때문에 펀드매니저는 명백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다. 이들은 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헤지펀드에 유익이 되는 방식으로 투자하도록 하는 유인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난 10년에만 미국 최대 연금펀드 고위 임원들은 헤지펀드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철저한 감시를 벗어날 수 있고 뇌물이 항상 노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금 펀드 매니저들은 자신들 돈으로는 갈 수 없는 호화여행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투자 은행이나 헤지펀드와 같이 수익성이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특히 서서히 퍼지는 연금펀드 사례는 단기매매 헤지펀드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펀드 매니저들은 자신들의 수익율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비교적 적당한 수익을 올린다. 이러한 사례는 트레이더들에게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장기간을 관리해야 할 기업 리더들의 능력에 타협함으로써 헤지펀드가 자본 시장에서 불안정함을 만들게 한다. 헤지 펀드와 연금펀드 매니저들은 이익을 얻는 동안 연금가입자들은 손실을 겪는다.

경쟁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결과가 진짜로 무작위적으로 나오는 매우 역동적인 시장에서만 장기적으로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경쟁 자체가 작동하는 방식은 단기효율 추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 위와는 반대다. 몇몇의 주체에게만 아주 견고한 우위를 부여한다. 이와 같은 주체들이 시장을 점유하게 되면서 시장 권력을 획득하고 이는 이들이 이익을 창출하기 보다는 이익을 추출해감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가치를 얻기가 더 쉽게 만든다.

Part 2에 계속

출처: Roger L. Martin(전 토론토 대학 Rotman경영대 학장, 현 Martin Prosperity Institute 사장),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HBR, 2019년 1-2월호.

1년에 채 10권이 되지 않는 1인당 독서량(13세이상) 통계를 언급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라는 기사들은 매년 되풀이됩니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저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책을 진짜 안읽네. 큰일이네.’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우리는 왜 독서량이 적다고 걱정할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도 문제는 없지만 독서가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헤르만 헤세는 <독서의 기술>에서 “삶으로 이끌어 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책이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3색볼펜 읽기 공부법>을 쓴 사이토 다카시에게 독서는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폭넓게 수용하는 행위”이며 “여전히 유효한 공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앤 라모트는 <쓰기의 감각>에서 책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책을 읽어오면서 저 역시 독서가 유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독서의 유익을 말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책을 수십 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독서가와 작가들은 가장 기본적인 지식 습득에서부터 자아발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독서가 유익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토야마 레히토라는 작가는 정말 실제적인 독서의 유익과 독서 방법을 제안합니다.
 

책 표지ⓒ 가나출판사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후 여러 기업들을 거치며 성공한 삶을 살아온 저자는 <하버드 비즈니스 독서법>이라는 책으로 자신의 독서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그는 당면한 문제 해결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 독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히 실용적 독서법의 극단에 있는 읽기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고, 독서 자체보다는 독서를 통해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가에 목적을 둔 독서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땐 뭔가 속물적인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읽기만 하는 독서의 함정”이라는 문구에 끌림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독서가 무조건 실천으로 옮겨져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유용한 지식을 얻었다’거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만족스럽네’ 정도로만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하토야마씨가 말하는 독서방식도 참고해 볼 만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를 빈번하게 만나는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하고 실용적인 독서법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혹은 빨리 읽고 아무런 변화나 성과가 없는 것보다는 “한 페이지 또는 한 줄만 읽었더라도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실용적 독서라면 굳이 꺼려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과제 해결’에 책을 읽는 목적을 둔 저자가 하는 말들은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독서량이 아니라 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독서의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에 대한 자기 의견을 가져야 한다.’ 등의 문구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정해진 답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사회적 배경이 모두 비슷하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자기 의견을 가지는 것보다 상대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논의나 대립보다는 결국 평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41-42쪽)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본 이유를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급변하는 세계 비즈니스 환경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새겨들을 만한 조언입니다.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겐 저자가 제안하는 과제 해결을 위한 실천형 독서가 시급히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중요한 문장이나 부분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책의 내용을 지금 자신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하라고 저자는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때문에 저자는 속독이니 다독이니 하는 기술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물론 저자의 독서법은 모든 종류의 책에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독자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즈니스 환경, 즉 경제나 경영관련 실용도서를 이렇게 읽자는 제안입니다.

저자의 독서법은 네 가지 문구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 ‘지금 필요한 10권의 책’, ‘이 책들을 눈에 띄는 가까운 곳에’, 그리고 ‘실천’. 즉 자신이 당면한 과제를 늘 떠올릴 수 있고, 주의가 분산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책의 권수를 10권 이내로 줄여 그것들에서 얻은 통찰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저자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영세계에 있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토야마식 독서법에서 제가 얻은 교훈 한가지는 ‘책 처분’에 관한 것입니다. 실상은 한번 들춰보지도 않을 책으로 책장을 채워두지 말라고 저자는 제안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책장을 정리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읽을 것 같은 생각에 만지작거리고 다시 책장에 꽂기를 반복하다 먼지만 소복하게 쌓인 책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실천거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읽지 않을 책 처분!
 

“그냥 종이일 뿐이잖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절대로 다시 보지 않을 테고, 공간만 아깝지. 만약 다시 봐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사면 되지 않아?”(67쪽)


그렇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사면 됩니다. 왠지 이번에는 책장에 쌓여가며 제게 부담을 주고 있는 책들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없는 책들은 과감하게 처분하고 새로운 책들을 친구로 들일 것입니다.

실용과 실천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저자에게도 독서하는 방식에 변화는 찾아옵니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끊임 없이 마주할 때는 그와 관련된 실용적인 책들을 읽었으나, 이후엔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독서,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 시대의 흐름을 읽기 위한 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역시 업무상 문제 해결 목적 이외에는 애독가들이 말해왔던 것과 같은 독서의 유익을 누려왔던 독서가입니다.

이 책의 제목만 보고서 언뜻 흔한 자기계발서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어쩌면 피해왔을지도 모르는 극단적으로 실용적인 독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역시 책은 어떤 면에서 보나 우리에게 유익을 건네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 걱정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어떤 책, 어떤 목적이라도 좋으니 책을 읽어봅시다!

[OECD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자당 연간 노동 시간 자료를 보니 대한민국은 여전히 최상위권! 역시 노동의 나라인가!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일하느라(실제로 일하는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고 한편에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고. 걍 간단하게 사람들 더 뽑고 월급 조금씩 나눠서 주면 좋겠구만...이기적인 심성을 가진 인간들이 고렇게는 못하겠지? 암튼 일하는 시간을 마냥 늘린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절대 아님은 진리라 생각한다. Steve Glaveski(Collective Campus 설립자)씨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1일 6시간 노동을 제안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럴 날이 올랑가 모르겠지만 이 방향이 옳아 보인다. 인공지능, 로봇 등이 주인공이 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더 옳은 방향인 것 같다.]

일일 8시간 노동은 19세기 사회주의로부터 기원했다. 기업들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상한선 없는 노동을 요구할 수 있던 때였고 산업혁명은 6살짜리 어린이들도 탄광에서 일하도록 했다. 미국 노동조합들은 주 40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했고 결국 1938년 Fair Labor Standards Act의 일부로 주 40시간 노동이 비준되었다.

그 때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 일, 놀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노동의 본질도 알고리즘적 일에서부터 혁신적 사고, 문제 해결, 창의성을 요구하는 체험적인 일로까지 커다란 부분에서 변화되고 있다.

조직심리학자이자 오리지널스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Adam Grant는 “복잡하고 창의적인 일들이 많아질수록 노동하는 시간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1일 8시간 노동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Grant는 또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리더들도 1일 8시간 노동이 현재와는 맞지 않는 것 같을지라도 과거에 놀라울 정도로 고착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체험적 일은 사람들에게 1975년 헝가리출신 미국인 Mihaly Csikszentmihalyi가 창안한 몰입(flow)이라는 심리적 상태에 이를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떤 활동에 완전히 몰두하는 것이다. 몰입에 대해 맥킨지에서도 10년 동안 연구를 했는데 고위 임원들은 몰입 상태에 있을 때 생산성이 5배는 더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Advanced Brain Monitoring의 과학자들도 몰입이 초보 사수를 전문가 수준으로 훈련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현대적 조직이 생산성을 악화시킨다

직원들이 하루 동안 이메일을 하는데 평균 6시간을 사용한다는 Adobe사의 연구에서와 같이 오늘날 많은 조직들은 효용성, 반응성, 회의참석에 대해 반생산적 기대를 가짐으로써 업무 흐름을 방해한다. 또 다른 연구에선 평균적인 직원들이 하루에 이메일을 74번 확인하고 스마트폰은 2,617번을 터치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직원들은 지속적인 방해와 초반응성 상태에 있다.

Basecamp 설립자이자 ‘미칠정도로 일할 필요는 없다’의 저자인 Jason Fried는 프로그래밍과 글쓰기와 같은 창의적인 일을 위해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직원들에게 자신의 업무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을 가졌던 게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오랫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보통 직원들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기본 한 시간 회의. 대개는 업무시간 내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느라.

-메신저, 컴퓨터 및 스마트폰의 알림 등으로 인한 빈번한 주의 산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위해 불필요하게 합의를 구하는 일들

-끊임없는 메일함 비우기. 이는 자신의 목적보다 다른 사람의 목적을 우선하는 행동의 상징이다.

-출장(때론 장거리). 전화로도 충분할 수 있는데.

-업무의 빈번한 변경. 그 결과 인지 전환의 고통을 겪음. 작은 일들에도 피곤을 느끼게 됨

-가치가 거의 다 된 일들에도 오랜 시간을 낭비함

-기본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들

Grant는 말한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들에서 집중되지 않은 8시간보다는 집중된 6시간 동안에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 Cal Newport도 Grant와 같은 맥락으로 말한다. “매일 방해받지 않고 서너시간을 연속으로 일하면 생산성과 우리의 삶에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Fried도 하루에 절반 정도를 몰입한다고 한다. “하루에 네 시간의 몰입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거기에 더 시간을 투입한다고 해서 그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더 오래 있을수록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업무 로드를 유지하기 위해 5시 넘어서까지 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업무로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더 짧고 더 생산적인 하루를 만드는 방법

나는 호주 멜번에 있는 혁신기업 Collective Campus에 속한 나의 팀과 함께 2주 동안 1일 6시간 업무 실험을 했다. 1일 업무 시간이 짧아지자 업무시작 몇 시간 동안 우리 팀은 효과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방해를 줄이고, 훨씬 더 신중한 수준으로 일하기 위해 강제로라도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유지되었고 어떤 경우엔 업무의 양과 질이 향상되기도 했다. 팀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있다 했고 휴식, 가족, 친구, 다른 시도들을 위해 더 시간을 사용했다고 보고했다.

LinkedIn에 우리 실험을 올리자 한 지인이 댓글을 남겼다. “이론 상으론 멋져요. 하지만 난 6시간 동안 내 모든 업무를 끝낼 수가 없는 걸요!” 모든 업무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그럴 것이다. 파레토(Pareto) 원리를 참고한다면 당신 업무의 약 20%가 가치의 약 80%를 만들어 낸다. 이는 높은 가치가 있는 업무들에 집중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제한된 자원을 가진 소규모 팀의 관리자라면 다음에 제시된 생산성 기법을 반추해보라. 그리고 리더로서 당신의 임무는 환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것임을 기억하라.

우선순위 정하기: 파레토의 법칙을 기억하자. 직원들의 강점과 팀의 목표를 함께 고려하려 높은 가치를 가진 일에 집중하라.

잘라내기: 가치를 더하지 못하는 일들은 줄이거나 없앤다. 기본 회의시간을 60분에서 30분으로 줄이기, 스마트폰 알림 꺼놓기, 이메일 확인은 한꺼번에 하기 등으로 시작하자.

자동화: 단계를 밟아가는 일이라면 자동화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당신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외부조달: 만약 자동화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를 위임하거나 외부에서 조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당 만원 정도 드는 일에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실험: 필요없는 분석과 잘못된 것들에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 관리자들은 효과적인 실험, 측정, 적응을 통해 둘 다를 피할 수 있다.

실행: 엔진 시동에 필요한 무엇이든 하라! 스케쥴러에 대강의 계획을 세우고, 한 번에 한 가지씩, 가장 어려운 것을 먼저 하라. 자연 그대로의 리듬에 귀을 기울여보고 짧은 휴식들 사이에 약 25분 단위로 일하는 시간을 나눌 수 있게 타이머를 사용하는 Pomodoro 기법도 활용해 보라.

현실적인 기대치를 설정하라

직원들이 반응대기 상태에 있지 않고 몰입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짤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이 기분에 따라 방해받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팀에는 단순한 규칙이 있다. 만약 팀원 중 누군가가 헤드폰을 끼고 있다면 절대 기다릴 수 없을 만큼의 중요한 일(이런 경우는 좀처럼 없다)이 아니면 그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미 육군 일반직원들에게 5일 동안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도록 했더니 일터에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감이 있다고 느껴져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했다는 캘리포니아대학 Gloria Mark의 연구결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직원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어떤 것은 싸울 가치가 있다

몰입할 수 있는 일하는 분위기 조성과 1일 근무시간 단축 실험을 통해 이것이 생산성과 성과를 높일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스트레스 수준도 낮출 수 있고 직원 보유율도 나아지고 직원들이 일터 밖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들은 디지털 혁명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일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즉각적이고 훨씬 더 비용이 덜 드는 변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실험에서 통찰을 얻었어도 우리 회사에선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선 싸워 얻을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싸울 가치가 있다.

출처: Steve Glaveski(Collective Campus 설립자), The case for the 6-hour workday, HBR 2018.12.11.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8년 9-10월호에 Design Thinking 기법에 대한 글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일종의 혁신 방법론 중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혁신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기법들이 기본적인 원리는 유사한 것 같다. 다양한 기법들을 배워나가다보면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버지니아 대학 Darden 경영대 교수 Jeanne Liedtka가 쓴 글을 내맘대로 번역한 것이다. 양이 많아서 두 개로 나눠 올려본다.]
 


 

 

[아이디어 생성]

 

혁신가들은 고객 수요를 이해한 후 그들이 확인했던 기준을 만족시키는 특정한 해결책을 확인하고 가려내는 활동으로 이동한다.

 

발생

 

첫째 단계는 누가 참여할 것이고, 어떤 도전과제가 주어질 것인지, 어떻게 구조화된 의사소통을 할 것인지를 주의 깊게 계획하고 잠재적 해결책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몇몇의 개별적인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디자인 기준을 이용한 후 참여자들은 차이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타협하기보다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것들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참여자들을 모은다.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소아과 병원인 텍사스 Children’s Health System은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사업 모델을 재구상하기 위해 DT를 적용했다. 발견 단계 동안에 의사들은 가장 중요했던 것이 의료적 개입이라는 자신들의 편견을 내려놓았다. 의사들은 만약 댈러스 지역 사람들이 의료 지식을 찾을 시간이나 능력이 없고 강한 지원 네트워크가 없다면 의료적 개입이 홀로 작동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했다. 또한 의사들은 병원이 지역 공동체의 문제들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그래서 Children’s Health는 병원 너머까지도 뻗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보건 생태계를 함께 디자인하기 의해 지역사회 협력자들을 초청했다. 작게 시작하고 하나의 조건을 다루도록 하기 위해 일단 천식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팀이 꾸려졌다.

 

병원 행정직원, 내과의사, 간호사, 사회운동가, 환자 부모, 댈러스 교육당국 직원, 주택당국, YMCA, 종교기관 등이 함께 모였다. 먼저 혁신추진팀은 발견 단계에서 얻은 것들을 공유했다. 다음으로 각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기관이 아이들의 문제에 대응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역량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포스트잇에 적도록 했다. 각 참여자들은 작은 그룹을 만들고 각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고 공통된 주제들을 그룹화했다. 그리고 어린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상적인 경험이 어떤 것일지를 그려보았다.

 

변화의 동력은 성공적인 실행방안의 기회들을 크게 향상시키는 이와 같은 대화들 속에서 나온다. (훌륭한 아이디어들은 그것을 실행할 헌신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사장되곤 한다.) Children’s Health에선 프로젝트에 초청된 협력자들이 공동체가 행동하도록 충격요법을 쓰고 새로운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그들 기관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도록 했다. 주택당국 대표들은 평가요소에 아이들의 건강 문제와 관련있는 것을 반영해 건축코드를 바꾸도록 했다. 지역 소아과의사들은 표준 천식 처방을 채택했고 천식있는 아이의 부모들은 가정 방문을 통해 다른 가족들에게 집중적인 교육을 하는 동료 상담사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표현, 발화

 

통상적으로 새로운 활동들은 여러 가지 경쟁적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낸다. 혁신가들은 자신들의 내재된 가정을 드러내고 질문을 한다. 관리자들은 과도한 낙관주의, 확증 편향, 첫번째 해결책에의 고정과 같은 편견들로 인해 이러한 활동을 잘 하지 않는다. 가정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 무엇이 작동할지 안할지에 대한 논의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자신만의 이해를 옹호하는 각 개인들로 인해 막히게 된다.

 

이에 비해 DT는 적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위한 세계에 관해 사실이어야 하는 것을 요청하는 논의의 틀을 제공한다. 애리조나에 있는 Whiteriver 인디언 보호병원의 젊은 직원이었던 Marliza Rivera는 때론 6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병원 응급실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이 팀의 초기 컨셉은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적용했던 전자접수대를 차용했다. 하지만 DT를 통해 아이디어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자신들의 가정에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그들의 주요 환자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많은 아파치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볼티모어 도심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Whiteriver에선 그렇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 아이디어는 고려에서 제외했다.

 

아이디어 생성 단계의 마지막에서 혁신가들은 철저한 사고를 통해 아이디어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것이다. 아이디어들 기저에 있는 가정들은 주의깊게 고려될 것이고 성공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아이디어들은 그것을 시장에 출시할 책임을 지기 위해 준비될 실행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용자 경험 평가]

 

회사들은 시제품 제작을 상당히 개발된 제품이나 서비스의 세밀한 조정 단계로 여긴다. 하지만 DT에선 시제품 제작은 최종단계 제품 훨씬 이전에 수행된다. 개발되는 단계별로 반복적으로 사용자 경험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완전한 재설계와 같이 아주 극단적인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사전 경험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사전경험이 새로움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더 정확하게 한다는 것이 나타난다. 이는 DT에서 제안된 사용자 경험의 본질적 특성을 포착하게 할 기초적이고 저비용인 시제품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시제품 제작이 아닐 수 있다. DT에서의 시제품은 스타트업들이 고객들과 평가하는 최소 실행가능 제품보다 훨씬 더 거친 경우가 많다. 이 물건들에선 충실함이 부족하지만 사용자들에 노출된 후 알게된 것들에 대한 대응으로 용이하게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유연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불완전함은 상호작용을 이끈다.

 

이와 같은 시제품은 다양한 형식을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Kaiser Permanente에선 새로운 진료소 건축을 위한 레이아웃을 평가할 때 벽을 표현하기 위해 천장에 침대보를 걸어놓았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을 환자 역할을 하는 직원들과 상호작용하도록 초청해 더 나은 치료를 위해 공간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제안하도록 했다. 가정에서 건강에 취약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입원율을 낮추기 위해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Monash Health에선 이 새로운 접근방식을 병원 행정직원들 및 정부 정책입안자들이 그려볼 수 있도록 디지털 시제품을 만들지 않고 세부적인 스토리보드를 이용했다.

 

실행하면서 배움

 

현장 실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아이디어가 작동할 수 있게 하는데 팔요한 변화들을 확인하는데 기본적 방법이다. 이는 또한 직원들과 고객들이 가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Monash Health에서 일하는 Keith Stockman과 의과 교수인 Don Campbell은 입원 가능성이 높은 환자와 전화로 자주 연락하는 전문가 이웃의 역할을 하는 원격의료 안내원 역할을 하는 사람을 고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주의 깊게 선정된 건강정보 이해능력과 공감 훈련을 받고 지원시스템과 전문상담가의 결정에 의해 지원을 받는 이 저임금 고용자들이 가정에서 위험에 노출된 환자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들의 제안에 회의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들의 동료들은 복잡한 문제를 가진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건강 전문가 이외의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것에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할을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은 비용이 너무 비싸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혁신팀은 이를 가지고 논쟁하기보다는 동료들의 의견에 관심을 보이고 그 가정을 평가하는 실험 디자인에 동료들을 참여시켰다. 300명 정도의 환자들로부터 결과가 나왔는데 독립적인 상담가와의 협력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이 압도적이었고 병원 침상 이용률과 응급실 방문 횟수가 감소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회의적인 우려는 해소되었다.

 

결론

 

DT의 구조는 연구에서 출시까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준다. 고객경험에의 깊은 참여는 데이터를 만들어주고, 이것이 통찰로 이어지며, 통찰은 해결책을 생각하는데 필요한 디자인 기준에 팀이 동의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한 해결책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정을 살펴보고 더 혁신하고 실제 제품 출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초도 시제품으로 아이디어를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더 뛰어난 해결책에 이르기 위해 직면하는 도전에 대응하고 비용과 위험을 낮추며 직원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창의성을 좌절시키는 인간의 편견을 없앤다. 다양한 관점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인 조직에서 DT는 참여, 대화, 배움을 강조한다. 문제정의와 해결책 도출에 고객과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킴으로써 DT는 변화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얻게한다. 혁신 프로세스를 구조함함으로써 DT는 혁신가들이 협력하고 매 단계에서 결과를 내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동의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DT는 일터에서의 정치를 극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혁신가들, 그들의 핵심 이해관계자들과 실행자들의 경험을 만들간다. DT는 일터에서의 사회적 기술이다.

 

출처: Jeanne Liedtka(버지니아대학 Darden 경영대 교수), Why Design Thinking works, HBR 2018년 9-10월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8년 9-10월호에 Design Thinking 기법에 대한 글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일종의 혁신 방법론 중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혁신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기법들이 기본적인 원리는 유사한 것 같다. 다양한 기법들을 배워나가다보면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버지니아 대학 Darden 경영대 교수 Jeanne Liedtka가 쓴 글을 내맘대로 번역한 것이다. 양이 많아서 두 개로 나눠 올려본다.]

 일을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은 때때로 커다란 개선을 이끈다. 1980년대 제조업에선 간반 카드나 품질 분임조 등과 같이 기존의 방식보다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는 도구들을 결합하여 종합품질 관리를 했다. 업무 프로세스에 적용했던 이런 도구들과 통찰의 결합은 일종의 ‘사회적 기술’이다.

DT(Design Thinking)은 사람들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열정을 끌어내고, 프로세스를 혁신하는데 잠재력을 가진 또 하나의 사회적 도구이다. 많은 리더들이 DT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DT가 사람들의 편견이나 특정한 행동 규범에의 고착을 극복하게 하는 미묘한 방식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혁신의 길에 놓여 있는 다양한 인간 경향성을 살펴보고 어떤 방식으로 DT 도구가 사람들을 그러한 경향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여러 조직들이 혁신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이러한 노력들이 종종 어긋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혁신에의 도전]

혁신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우수한 해결책, 변화에 따르는 낮은 위험 및 비용, 실행자들의 수용이 모두 필요하다. 여러 해 동안 경영자들은 이를 위한 유용한 전술들을 개발해 왔지만 이것들을 적용하려고 하면 새로운 장애물과 트레이드 오프해야할 상황을 빈번하게 만나곤 한다.

우수한 해결책

문제를 명백하고 통상적인 방식으로 정의하면 해결책도 그렇게 된다. 좀 더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보다 흥미를 일으키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어떤 팀은 문제가 뭔지 찾는데 온통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관리자들은 물어야 하는 물음이 무엇인지 찾을 시간을 가질만큼 인내심이 없을 수도 있다.

사용자에 초점을 맞춘 기준에 따르는 해결책이 훨씬 낫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시장조사를 통해 이러한 기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고객들이 원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해결책을 내는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라는 것도 더 나은 해결책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분열을 일으키는 토론으로 악화될 수 있어 이를 관리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위험과 비용 낮추기

혁신에서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다. 때문에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한다. 이 때 문제는 너무 많은 아이디어는 초점과 자원을 흐리게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혁신가들은 나쁜 아이디어는 과감히 쳐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통상적인 아이디어보다 창의적이어서 더 위험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버리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성원들의 수용

조직 구성원들의 지지가 없다면 혁신은 성공할 수 없다.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 구성원들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킬 때의 문제는 혼돈과 불일치를 만들 것이란 점이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긴장관계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효율은 조직의 바깥에서의 변화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불안정한 환경에서 변화는 성공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효율, 합리성, 중앙 통제에 열심인 분기별 목표를 맞춰야만 하는 리더를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이 모든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행동적 장애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반생산적인 편견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여기에 DT가 안성맞춤이다.

[구조의 미]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들은 DT가 너무 구조화되어 있고 선형적이라고 불평한다. 그런 사람들에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혁신팀의 관리자들은 디자이너가 아니며 고객 대면 연구를 하지도 고객들의 관점에 깊이 침참하지도 이해관계자들과 공동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지도 실험을 고안하거나 실행하지도 않는다. 구조와 선형성은 관리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고 적응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Intuit에서 혁신디자인 리더였다가 지금은 페이스북의 디자인 제품 부서장으로 있는 Kaaren Hanson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사람들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많은 구조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것은 습관이고 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주 명확한 안내가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잘 조직화된 과정은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 문제를 알아내려고 매달리거나 참을성 없게 건너뛰려는 경향을 제한할 수 있다. 또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동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회를 잡기보다는 실수를 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사람들은 실패할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에 대해서는 행동하기보다는 행동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행동이 없이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심리적 안전감이 중요하다. 안전감을 제공하는 DT의 규정된 형식은 혁신가들이 고객요구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평가하는데 확실히 도움을 줄 것이다.

DT는 대체로 7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각 단계는 다음 단계의 산출물을 내는 명확한 결과를 내는데 이는 실행가능한 혁신에 이를 때까지 수행된다. 더 깊은 레벨에선 실행자들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고객 경험을 이해하고 만들어내도록 구조화되기는 하지만 DT의 각 활동은 혁신가들 스스로의경험을 근본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고객 발견]

DT의 발견 프로세스는 ‘되어야 할 일’을 확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방법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고객을 찾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조사하는데 집중한다. 이 탐색 단계는 세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험

전통적으로 고객연구는 개인적인 것이 개입되지 않는 활동이었다. 고객 선호에 대한 기존 이론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대표집단, 설문조사, 고객행동 데이터 등을 검토하고 요구사항에 대한 간섭요소들을 추출해냈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간섭도 많아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미 데이터가 반영하는 만들어진 요구사항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편견이 반영된 데이터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표현되지 않은 요구를 인지하지 못한다.

DT는 다르게 접근한다. 혁신가들이 고객들의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숨겨진 필요를 확인한다.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성인을 돕는 영국의 자선단체인 Kingwood Trust사례를 살펴보자. 디자인 팀원인 Katie Gaudion은 자폐증으로 말을 하지 않는 Pete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Katie가 Pete의 집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가죽소파를 뜯는다든지 벽에 패인 부분을 문지른다든지 하는 이상행동에 열중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Pete의 행동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런 행동들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문제를 정의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스스로 물었다. Pete의 행동이 파괴적 충동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녀의 개인적 관점을 제쳐두고 그녀는 Pete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그의 활동들이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는 Pete의 소파를 단순히 해진 소파가 아니라 뜯는 재미가 있는 천으로 감싸진 물체로 인식하게 되었죠.” “벽에 귀를 대고 거기서 들려오는 음악의 진동을 느끼면서 저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패인 자국을 문지르는 동안 제 귀가 간질거린다는 것을 느꼈어요. 손상된 벽이 아니라 그것은 즐겁고 긴장이 완화되는 청각 및 촉각적 경험이라 인식하게 되었어요.”

Katie가 한 Pete의 세계 체험은 Pete의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장애를 겪는 사람으로써만 인식되어 왔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되지 않는 편견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 경험을 통해 Katie는 거주자의 장애와 안전만을 단순히 디자인하는 대신 거주자들의 강점과 즐거움을 위해 혁신 팀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이가를 자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일반인들이 자폐증 환자들과 보다 충만하고 즐거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거 공간, 정원, 새로운 활동들의 창안을 이끌었다.

의미 부여

사용자 경험을 깊이 체험하는 건 더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한 날 재료를 제공한다. 하지만 수집된 정성적 데이터에서 패턴과 의미를 찾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조사 결과에 대한 초기 열정은 엄청난 정보의 양과 더 깊은 통찰을 찾는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사그라들곤 한다.

깊은 체험으로 만들어진 지식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미술관 전시(Gallery Walk)라고 부르는 DT활동이다. 혁신팀이 발견 단계에서 수집한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선정하고 이것을 커다란 포스터에 적는다. 여기에는 인터뷰한 사람의 사진과 인용, 그들의 관점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 포스터들을 전시한 후 핵심 이해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새로운 디자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이터들을 포스트잇에 쓰게 한다. 이해관계자들을 소그룹으로 나눠서 이 포스트잇 메모들을 공유하고 결합하고 주제에 따라 분류해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광산을 만들게 한다. 이 과정은 혁신가들이 자신의 편견 혹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하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는 공통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상호작용할 수 있은 협력자들의 능력을 이용하게 해주고 공유된 통찰에 함께 이르게 하고 서로에게 도전이 되게 한다. 

정렬

발견의 마지막 단계는 어떤 것이 가능한지, 디자인이 잘 되게 하기 위한 일은 무엇인지 등을 묻고 토론하는 일련의 워크숍과 세미나이다. 현재 상태의 제약들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상적인 혁신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특징들을 보다 협력적이고 창의적인 논의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탐구 정신을 확립하는 것은 현재상태의 불만족 사항을 깊이 연구하고 팀을 혁신 프로세스를 통해 합의에 보다 용이하게 도달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 아이디어들을 골라내고 디자인 기준에 맞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호주 멜번에 있는 Monash Health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약물 과다복용 및 자살 시도와 같은 환자들의 빈번한 재발에 오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근본원인을 찾기 위해 의사들은 특정 환자의 전체 치료과정 경험을 추적했다. 톰이라는 환자는 처음 방문에서부터 재발이 있을 때까지 총 세 명의 의사를 만났고, 70차례 면담, 13명의 사례관리자, 18번의 이관을 경험했다. 팀원들은 여러차례 워크샵에서 의사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톰의 현재 돌봄이 의사들이 헬스케어에 몸담게 하는 이유의 사례가 되었는가? 사람들이 의사와 간호사가 되도록 한 동기들을 토론하게 되면서 톰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의료행위에보다 톰이라는 인간에 대한 의무감에 더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하나의 결론에 입을 모았다. 기존의 최고 모범사례보다는 환자의 필요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치료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결론이었다. 이 과정을 실행한 후 환자 재발률이 60%까지 감소했다.

다음회에 계속...

‘왜 사는가?’라는 물음. 보편적인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사람들은 신학, 철학, 예술 등을 통해 인간의 존재 이유를 탐구해 왔습니다. 여전히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답은 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사람들은 여전히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법륜스님은 ‘사람이 왜 사는 걸까요?’라는 물음에 ‘풀이 자라는 데, 토끼가 자라는 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람도 그냥 사는 것이다. 왜 사느냐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보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김상용 시인도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에서 “왜 사냐 건 웃지요”라며 답이 없는 물음에 웃음으로 대답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태도와도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공허함을 느낄 때, 소중한 무엇 혹은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열망하던 것을 얻고 난 후에도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용도가 다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노인들에게, 열정은 넘치지만 열정을 쏟아부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에게도 왜 사는가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솟아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고민 속에 괴로워하다 끝모를 우울에 빠져 상담가를 찾거나 심한 경우엔 병원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예기치 않게 병에 걸리고 나니 삶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전보다 더 많이 찾아보게 됩니다. 투병하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살면서 저자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어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을 맞게 되는 때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데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책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살면서 저자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어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을 맞게 되는 때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데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얻은 결론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수감자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수감자들은 처음엔 지독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에 대한 혐오와 무감각 상태에 이릅니다. 박사 자신도 옆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것이 일상이 되어 시체를 바라보면서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무뎌지지 않으면 극심한 환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수용소라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버텨내는 수감자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수용소의 체험을 기술했습니다. 지적인 활동을 통해 감수성을 키워왔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들, 수용소 안에서도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사람들 등은 도처에 고통이 만연한 수용소에서도 내면을 지켜나갔다고 저자는 썼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사소한 행복들은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니었음은 당연합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상황에 지배당해 이와 같은 사소한 행복들을 느낄 여유는 없었습니다. 대체로 수감자들은 운명에 지배당한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를 기피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보며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은 주변 환경에 지배당해 아무런 정신적 자유를 갖지 못하는지, 수용소와 같은 환경에서 인간은 자기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것인지’ 의문을 품습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수용소에서도 타인을 위로하거나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음을 확인하면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고 결론내립니다. 어찌보면 매우 희박한 사례를 가지고 내린 결론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상황에만 지배되지는 않는다는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중략)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도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본문 인용)

 

이와 같은 결론을 언뜻 보면 사회 구조적인 실패로 인한 개인의 실패를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혹은 의지 없음으로 돌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상황에 놓인 인간이 반드시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체험을 통해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인간의 내적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살아가는 이유를 어떻게 찾을까

 

저자에 따르면 사람이 삶에서 겪게되는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인간의 내적 자율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데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본문 인용)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빅터 프랭클 박사의 접근 방식도 기본적으로 법륜 스님이나 김상용 시인의 태도와 유사합니다. 저자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사랑하는 이,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의 체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로고테라피라는 기법을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인간이 존재하는 동력을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봤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책임감”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선, 진리, 아름다움 등을 체험, 자연과 문화를 체험,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3)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본문 발췌 인용)

다만 주의할 점은 시련에 대한 관점입니다. 시련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의미를 발견하고자 굳이 시련을 겪을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단지 시련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가 관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공허감, 육체적/정신적 고통, 삶의 유용성을 상실한 느낌 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관점으로 인간 존재를 정의합니다. 즉 인간이 ‘고통을 성취로, 죄를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삶을 수 있고, 일시적인 삶에서도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관점에 동의합니다.

 

“인간은 조건 지어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본문 인용)

‘왜 살아야 하지?’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강제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아직 이루지 못했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간직하고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 박사의 조언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요? 저자는 우리의 삶을 영화에 비유했습니다. 저도 요즘 겪는 시련을 영화에서 고통스런 한 장면을 지나고 있는 것이겠구나 여겨보려 합니다.

 

“영화는 수천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장면에 다 뜻이 있고 의미가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부분, 개별적인 장면들을 보지 않고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본문인용)

얼마 전까지만해도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르던 <별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별다른 걱정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에 4-5cm정도인 용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몇 달 뒤 용종을 떼내기 위해 대장내시경을 예약하고 속을 비운 후 병원에 갔습니다. ‘약 들어갑니다’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저를 보며 간호사는 담당의사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담당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담당의사는 걱정스런 얼굴로 이건 그냥 용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99%정도 ‘암’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네??? 매년 건강검진을 해도 지극히 정상이었고, 매일 운동도 하는 내가 암이라구요? 전혀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이왕 이렇게 된거 빨리 수술일정을 잡는게 어떻겠냐 물었습니다. 충격을 받을 겨를도 없이 암 담담의사와 상담 후 수술일정을 잡고 이틑 날 암이 생긴 부위를 잘라냈습니다.

대장암 3기. 다행히 암세포가 다른 장기까지 옮겨가진 않았지만 혈관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 흔적이 있어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고 있습니다. 살면서 이런 중병에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매우 건강한 편이었기에 수술 후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상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니, 내가 왜?’였던 것 같습니다.

고통 중에 발견한 위로의 책

뭔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아파해주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어야 했기에 의도치 않게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위로가 되는 책은 없을까 찾아보다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말 그대로 ‘나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제게 저자인 앤 라모트는 ‘삶에서 뭔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고통스러울 때 어디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린거지?’라고 묻고 있는 제게 “왜? 라는 질문이 쓸모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말이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가능한 한 삶을 즐기고, 버틴다”고 했습니다. 답이 없는 물음을 반복하기 보다는 고통을 버티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자는“우리는 악몽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일이 끔찍하지 않은 척, 고통스럽지 않은 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나쁜 일들을 예쁜 희망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소리없이 찾아온 질병을 견뎌야 하는 제게 고통스러울 땐 충분히 고통스러워해도 된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와 비슷하게 몸이 아파 고생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큰 고통 앞에선?

돌봐주는 가족이 있고,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면 몸이 아픈 것은 견딜 만한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만약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고통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된다면? 이런 고통과 상실감 앞에서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테러,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를 사례로 들며 살아가는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저자의 물음에 우리 국민들이 겪어 온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최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철거되었다는 소식에 유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사 후 간절히 원했던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우리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또 여전히 고통속에 있을 유가족들에게 ‘잊지않겠습니다’라는 말 말고 내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됩니다.

“고통과 마주한 우리 대부분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는 커다란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들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 옆에 앉아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같이 느낀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고’생각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며, ‘우리’가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그저 견디며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본문 인용)


앤 라모트의 이 말에서 ‘기억’이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합니다. 참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구축이라는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고통의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유가족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는 없을 것이지만, 마련된 공간 속에서 그 시간을 버텨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문득,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질병, 참사 등을 겪지 않아도 삶이 버거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가 희미해져 버릴 때 한없이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무엇에서, 어디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할 지 모른 채 그저 하루가 또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음을 앤 라모트는 말합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마음이나 존재, 인격을 충만하게 해주는 진실만이 우리를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이 좋은 성적이나 일자리를 얻으려고, 가장 좋은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려고, 몸무게를 줄이려고 열심히 쳇바퀴만 돌렸던 까닭은 바로 이래서다.”(본문 인용)


인생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묻게 되는 시기를 한번 쯤은 반드시 겪게 될텐데 이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앤 라모트는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을 제안합니다.

자기 내면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기만의 슬픔이나 상처에 빠져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에 눈을 돌려볼 것을 제안합니다. 나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보고, 미술, 음악 등 창의적인 활동을 해 보고, 자연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고, 때로는 달콤한 간식 먹기에 집중해 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 존재를 충만하게 해 주는 진실을 '지금 하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아이의 웃음, 엄마와 함께 나눈 일상적인 대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지난 봄 심었던 씨앗에서 튼 작은 싹.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슬픈 날도 주고, 기쁜 날도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가 당신에게 가장 큰 의미다. 의미는 집중하기, 주목하기, 관심 갖기에 있다. (중략) 내가 있는 그 자리, 그 순간에 벌어지는 것들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주는 것, 그 속에서 나와 함께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간직하는 것.”(본문 인용)


저 개인적으로는 몸이 아파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 보고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가 써놓은 이야기들을 통해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몸의 고통을 버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조금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끊임 없이 일어나는 사회적 참사와 그 당사자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회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

‘나쁜 날들’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어떤’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가는 데 조금의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를 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재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책은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버티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조금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기를…

쓰기의 감각

작가
앤 라모트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발매
2018.09.17.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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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책 한권 내보는 게 꿈이다.”

동료들과 회식을 하다가 이런 소망을 종종 듣곤 합니다. 하지만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던 분들에게서 책을 냈다는 소식을 아직까지 듣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분들은 막연하게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할 뿐 실제로 글을 쓰지 않기(혹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글을 쓴다고 해도 그것이 책이라는 완성된 형태로 나오려면 누군가(편집자)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까지 도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가의 꿈은 대부분 회식자리에서의 꿈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한편, 수줍게 책을 건네며 이번에 책을 냈다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이분은 책을 내는 것을 딱히 꿈꾸지는 않았지만 일기쓰듯 인터넷에 올렸던 글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 소망 중 하나인 책 쓰기가 이렇게 이뤄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글쓰기 혹은 책 출판이라는 꿈을 향한 여정의 첫 갈림길은 뭐가 되었든 글을 쓰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무엇이라도 써야 꿈을 이룰 가능성이 단 1%라도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노트를 펼치거나 컴퓨터를 앞에 두고 있으면 한없이 막막하기만 하죠.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 강좌를 들을 수도 있고 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수많은 글쓰기 책들 중에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글쓰기 기술이나 기법을 알려주는 책들보다는 일단 쓰기 시작할 수 있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용기를 주는 책이 좋습니다. 이런 면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겐 앤 라모트가 쓴 글쓰기 조언집 <쓰기의 감각>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 뭐가 좋은데요?

저자가 글쓰기와 책, 그리고 작가되기에 대해 쓴 내용들을 읽다보면 글쓰기와 책의 매력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됩니다. 앤 라모트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유익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글을 쓰고 읽다보면 삶에서 탐험할 거리가 많아지고, 자신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글쓰기와 읽기를 통해 한마디로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입니다.
 

“이토록 작고 평평하고 딱딱한 사각형 종이에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그 세계들은 때로 당신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위로와 평안을 주기도 하고, 당신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책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가르쳐 준다. 공동체나 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책은 당신이 실제로 겪어보지 못하는 많은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57쪽)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소소한 체험들이 글로 모여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글쓰기가 그리고 작가가 되는 것이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앤 라모트는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글쓰기 조언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지금 당장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바라겠지만, 어쩌면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책이 출판될 가능성이나 그것으로 재정적인 안정을 얻을 확률, 마음의 평화나 심지어 기쁨을 얻을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게다가 “아무리 글쓰기에 능숙해지고 책과 이야기와 기사를 많이 발표한 작가가 된다 하더라도, 글 쓰는 일이 그들이 바라는 것을 모두 충족시켜 주지 않을 거”(35쪽)라고.

글쓰기가 인생에 유익한 것은 분명하지만 작가로 사는 삶은 상상하는 것만큼 밝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사실 첫머리부터 유명한 작가의 글쓰기 비법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스러울 수 있는 조언이지만 현실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솔직한 말이라서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쓰기 비법

사실 저자가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는 이 책의 원 제목 Bird by Bird에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앤 라모트의 오빠는 새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했는데 마감 하루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오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앤 라모트에겐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63쪽)


너무나도 당연한 조언이긴 합니다만 앤 라모트에게 글쓰기는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조차 “실제로 내가 무엇이라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말로 조잡한 초고를 쓰는 것뿐이다.”(67쪽)라고 말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글감으로 삼아 엉망인 것 같아보여도 일단 한 번 써 보는 것.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글쓰기 비법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사소한 글감에는 학창시절 점심 도시락, 유명 작가들에 대한 질투심, 누군가와의 전화 통화, 만났던 사람, 만남에서 했던 이야기, 반전 있는 대사, 멋진 말 등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내가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15분만에 포기하지 말 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받아 적어 볼 것을 앤 라모트는 제안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글을 쓰고 읽는 이유

글을 쓰려고 할 때 위와 같은 구체적인 조언에 더해 앤 라모트와 같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자에게 글 혹은 책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유방암에 걸려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책을 썼습니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법을 배우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성취감이 따라와 또 글을 썼습니다.
 

“작가가 되는 일이 엄청난 만족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어떤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책을 출간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서 그것이 여전히 거기 있는지 확인한다. 비록 글 쓰는 시간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지만, 나는 마음 깊이 비밀스러운 성취감을 품고 산다.”(323쪽)


글을 쓴다는 것. 쉽게, 자연스럽게 되기는 어렵지만 매력적인 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설사 책이라는 완성된 형태로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글을 쓰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에 무엇인가를 쓴다는 건 언제나 깨어 있고 사유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앤 라모트는 글쓰기를 통해서 인생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글쓰기를 인간에게 풍요와 생기를 줄 수 있는 성직과도 같은 일이라고까지 여깁니다. 게다가 글쓰기는 보다 깊은 읽기의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눈으로 글을 읽기 시작한다는 것은 글쓰기가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삶과 사람, 그리고 세상을 보는데 있어 새로운 ‘눈’ 여러 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 웃음 짓게 만들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따라서 손뼉을 친다. 거듭거듭 짓눌리는 대신 말이다.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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