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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제대로 알아야 논쟁도 할 수 있다

초원위의양 2020. 7. 20. 20:32

1980년대 후반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영화에서 상상한 30년 후 미래의 모습(2015년)을 현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된 도구가 되는 타임머신은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다른 다양한 기술이나 제품들은 현실에서 이뤄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지문결제, 드론, 무인상점, 스마트 TV 등 상상이 이미 현실이 된 기술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호버보드, 하늘을 나는 자동차, 쓰레기를 이용한 에너지 변환 시스템 등도 아직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을 구현한 제품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호모 이마기쿠스(Homo imagicus)라는 별명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지금도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상상하는 미래는 기술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류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 사회 모든 부분에 대해 상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습니다. 그 중에서 “만인의 실질적 자유”를 꿈꾸며 기존의 통념을 거스르는 ‘기본소득’이라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재난은 소수의 꿈이었던 기본소득을 공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기본소득의 교과서

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경험해 본 적 없는 미래는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본소득이 “일, 노동, 여가, 소득, 가족, 사회, 국가 등등에 대해서 지난 몇천 년간 인류가 생각하고 믿어왔던 거의 모든 윤리적 과학적 통념에 근본적으로 모순”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본소득이 정치공간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요즘 <21세기 기본소득>을 읽으면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는 주제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 그리고 이해를 돕는 명쾌한 혜안들을 모아놓은 모종의 기록 보관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에서 기본적인 사실과 개념에 대해 자주 오류와 혼동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는 데 양쪽 진영 모두에게 유용할 것이다.”(16-17쪽)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인공지능, 자동화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과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플랫폼 노동 현실을 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일자리의 질이 예전처럼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술 발전이 소득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기본소득이라는 상상으로 인류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없이 현금을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철학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게으름을 조장할 것이다’,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등의 반론들이 나오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21세기 기본소득>에는 이와 같은 반론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개념 기본소득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기본소득에 담긴 주요한 논리부터, 기본소득과 유사한 사회복지 제도, 기본소득 이전의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기본소득의 제안과 여러 나라에서 있었던 찬반논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제안되었습니다. 1796년에 토머스 페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모든 이에게 돈을 지급하자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중략) 내가 제안하는 계획의 재원은 만인의 것인 자연적 상속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창출한 혹은 상속받은 그 어떤 소유물보다도 상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또한 만인에게 똑같이 지급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을 받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은 그 돈을 공동 기금에 다시 쾌척하면 될 일이다.”(180쪽)


무려 200여년 전부터 제안되었던 이 개념은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선에 기대는 구호에서 벗어나 제도적으로 최소소득을 보장하자는 합의는 이뤄졌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가 항상 논란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오고가는 갑론을박은 기본소득과 복지제도의 역사를 훑어보고 나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소모적 논쟁들로 보입니다.

기본소득, 정말 가능할까?

책의 후반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 제기되는 핵심적인 물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5장부터 7장까지는  기본소득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기본소득을 ‘경제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가?’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게으름에 빠질 것이라는 오래된 반론에 대해 저자들은 정의와 권리의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합니다. 자유를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면 자유의 수준을 가장 덜 가진 이들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교육, 돌봄, 공동체와 마을 활동 등 보다 폭넓은 의미의 생산적 활동이 확장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게으른 자들에게 과도하게 지급함으로써 발생하는 부당함의 크기가 아무런 돈도 받지 못한 채 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의 크기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다.”(250쪽)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들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는 실험들로는 기본소득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을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저자들 역시 명확하게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다만 다양한 재원마련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세금부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본소득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주려면 당연히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들은 후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실행하려 할 것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단계적 경험을 통해 혜택을 경험하게 해 증세에 대한 반감을 감소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나라에서 지급했던 국가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생각합니다.

인류는 존재하지 않던 유토피아를 실현해왔다

노동자와 경영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다양한 시민단체와 정당들. 이들은 기본소득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요?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되어 본 적이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의심과 우려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대중과 정치지도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선 분명한 비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책의 저자들이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의지를 가진 상상하는 이들이 마련해야 할 그림입니다.
 

“이는 그냥 백일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매력을 가진 사회 모델이어야 하며, 공정성에 있어서나 지속가능성에 있어서나 응당 철저함 검증을 거친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델은 명징한 언어와 뚜렷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하며,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안에 존재하는 공론장에서 논쟁을 거쳐야만 한다. 더 공정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숙의민주주의가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동하여 그것으로 현실의 권력 관계들을 길들일 수 있을 때뿐이다.”(472쪽)


만인에게 실질적 자유를 부여하자는 철학을 담고 있는 기본소득. 인류가 한 번도 실현해 본 적이 없는 어찌보면 유토피아적 상상인 제도를 우리 사회의 정치 공간에서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견 놀랍습니다. 이 책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해 제대로 알게되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정치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내놓은 주장은 과연 유토피아적인 것일까? 분명히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안한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수준으로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것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중략) 우리 사회의 제도적 틀이 가진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요소들 중 대부분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이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노예제 폐지,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 보편적 참정권, 무상의 보편 교육, 유럽 연합의 존재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기본소득이라는 유토피아가 다른 어떤 유토피아보다 더 두드러진 특징도 있다. 즉, 그것을 시행하게 되면 수많은 다른 유토피아적 변화들이 촉진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지구적으로나, 시장이 강요하는 경쟁력의 압력 아래에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실현되는 것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560-5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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