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대학 Rotman 경영대 학장을 지내고 현재는 Martin Prosperity Institute 사장인 Roger L. Martin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9년 1-2월호에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효율성 추구의 대가>라는 글을 썼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효율성 추구가 어떤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글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실재하지 않는 가정에 기반한 경제학은 언제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질까? 심하게 말하면 가장 큰, 공인 사기꾼 집단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Part 1에 이어)

이와 같은 부작용을 사회는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경쟁우위의 기반이 되는데 있어 덜 관심을 받았던 복원력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복원력을 향해

복원력은 충격 후에 제 모양을 되찾기 위해 어려움으로부터 회복되는 능력이다. 기존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효율은 파괴할 것을 추구하는데 반해 복원력 있는 시스템은 다양성, 불필요한 중복, 느슨함 등을 특징으로 한다.

효율 추구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복원력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할 수 있다.

규모 제한

반독점 정책에서 1980년대 초반 이래로 효율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경향이 우세했다. 사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효율성 증대는 과도하게 커질 수 있는 합병자들에 대한 적합한 방어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효율성 추구의 이득이 소수의 강력한 주체에게 누적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향을 거스를 필요가 있다. 시장 지배는 그것이 유기적인 성장과 같은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수용되어서는 안된다. 스냅챗을 죽이기 의해 페이스북이 자신들이 인수한 인스타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허락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아마존이 다른 모든 판매상들을 죽이게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 십수년 전 인텔이 AMD를 쳐부수기 위해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할인을 해주었던 것은 좋지 않은 것이었다. 최근 퀄컴이 인텔과 비슷한 행동을 했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 반독점 정책은 그것이 효율성을 낮추게 된다고 할지라도 보다 역동적인 경쟁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마찰이 있도록 하라

시스템을 더 효율적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마찰을 제거해 왔다. 완벽한 클린룸을 만들려고 할 때 방안에 있는 모든 미생물을 제거하는 것처럼. 이러한 전략은 새로운 미생물이 들어와 무방비 상태인 주민들을 사정없이 파괴하기 전까지는 잘 작동한다.

위와 같은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 기업과 정부는 정기적인 면역요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에서 모든 마찰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시스템이 복원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장소에 생산적인 마찰을 도입해야 한다.

국제 무역에 대한 낮은 장벽을 순수하게 좋은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무역을 통해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는 했지만 파레토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정책입인자들은 소수 기업의 지배가 효율을 최대화하는 것일지라도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몇가지 무역 장벽들을 도입해야 한다. 프랑스의 소규모 제빵업체들은 강력한 규제를 통해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그 결과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프랑스 빵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 일본의 비관세장벽은 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일본시장에 침투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성장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마찰은 자본시장에도 필요하다. 미 규제당국의 현재 목표는 유동성을 최대화하고 거래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규제당국은 뉴욕증시가 다른 증시들을 합병하게도 하고 Intercontinental Exchange에 뉴욕증시가 합병되는 것도 허락했다. 이를 현실화하게 되면 부의 파레토 분포의 상위에 있는 억만장자 헤지펀드들이 소수의 더 큰 시장에서 거래하는 속도를 높일 것이고 그 결과 파레토 분포를 더 극단적이게 만들것이다. 미 규제당국은 유럽 최대증시인 런던증시와 독일증시 합병을 막았던 EU처럼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증시를 설립하려는 새로운 주체들 앞에 장벽을 세우는 일을 멈춰야 한다. 이런 장애물들은 기본의 거대 주체들의 권력을 공고히할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공공부문 연금펀드들이 주식 대출을 금지한다면 단기 매매와 이를 유발하는 변덕스러움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장기 자본 장려

보통주는 장기적이어야 한다. 주식이 일단 부여되면 개념적으로 회사는 그 자본을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구든 회사의 허가없이 주식 시장에서 지분을 살 수 있다. 이는 단기 투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장기자본은 회사가 장기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당신이 내게 100달러를 주면서 ‘10년 동안 원하는대로 사용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24시간 동안에 어떻게 사용할 지 말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100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농담처럼 얘기하듯 워렌버핏의 주식 보유 기간은 “영원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가치에 있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장기와 단기 투자에 정확히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 이것은 실수다. 보유 기간에 따라 권리에 차등을 둬야 한다. 이런 접근방식으로 보통주 보유자들에게 10년 동안의 보유기간 기준으로 하루당 한표를 부여할 수 있다. 10년동안 100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신은 365,000주 투표권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주식을 구매한다면 구입 당일 100표를 얻게 된다. 그리고 구매자가 장기보유를 하면 결과적으로 365,000표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구매자가 주식을 몇 달 정도만 보유하는 헤지 펀드라면 장기 투자자들의 이익은 전략에 따른 영향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주권을 할당하면 주식 장기보유자들에게 보상이 될 것이다. 한편 단기로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 주주권이 감소하기에 해지펀드가 해당 기업을 휘두르기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몇몇은 이렇게 하면 나쁜 경영자들이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경영이 만족스럽지 않은 투자자들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는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주주들이 경영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한 주주가 회사로 하여금 자산을 팔거나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거나 회사의 미래에 해가될 수 있는 다른 조치들을 취하게 하여 단기 자금을 모으고 싶을 때 그 주주는 해당 의제를 추진하기 위한 주주권을 얻기 위한 능력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라

효율성 추구 측면에서 반복적인 노동은 최소화되어야 할 비용으로 믿게 되었다. 기업들은 교육과 숙련기술 개발에 투자를 줄이고 임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들 사용하고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 스케쥴을 빡빡하게 관리하고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게 숙련기술이 필요치 않은 일자리를 설계한다. 이는 노동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노동은 생산적이 될 수 있는 자원이다. 현재의 경영 방식은 비용을 줄일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나가게 한다.

만약 우리가 장기적인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낮은 숙련기술, 최소 임금 임시직을 위한 일자리 대신에 보다 생산적이고 가치있는 일자리를 고안해보면 어떨까? MIT의 Zeynep Ton은 몇몇 할인판매상들이 보다 헌신적이고 지식을 갖춘 노동자들, 더 나은 고객서비스, 더 낮은 실수, 판매와 수익 증가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한 바 있다. 이러란 노력은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도록 했다. 핵심적이지만 반직관적인 전략의 한 요소는 직원들이 예상치 못했지만 가치있는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게 여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기업에만 있는게 아니다. 값싼 노동 모델은 더 넓은 의미의 경제에서 매우 비용이 큰 것이다. 회사가 노동 비용을 줄일 때 월마트와 같은 회사들은 단순히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납세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최근 의회 연구에서 월마트 직원 200명이 연방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여기에서 직원들 한 사람에 대해서 낮은 임금에 의해 필요하게 되는 수당을 위해 매년 2759달러가 지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000개 점포와 230만명의 직원을 가지고 회사가 자주 선전하는 노동 효율성은 가격표를 상당히 무겁게 만들고 있다.

복원력에 대해 가르치라

경영 교육은 오로지 효율성 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질을 측정하기 위한 단기 대용물을 도입하는 분석 기법들을 가르친다. 그 결과 졸업생들은 복원력이 크게 부족한 채 효율이 높기만 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세상으로 향한다.

경영대학장, 교수, 학생들은 아마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 과정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금융은 효율적인 재무 구조 추구를 가르친다. 효율적인 비용관리는 재무회계의 목적이다. 인사영역에선 효율적인 직원되기를 가르친다. 마케팅은 효율적인 목표선정과 세부 시장에의 효율적인 판매에 관한 것이다. 운영관리는 공장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대한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목표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은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시장 자본주의가 주주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이다. 비슷하게 이번 분기의 노동 비용 감소는 효율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올해 경영 환경 하에서 최적 자본 구조는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장기 산출물을 평가하는 단기적인 방법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단기적 조치들을 계속 장려하게 되면 관리자들은 그것들을 최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단기적 조치들이 효율이 높다고 판단되면 헤지펀드들은 회사를 통제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펀드들은 규제당국과 기관들에 의해 응원을 받을 것이고 이들의 행위들이 회사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미래 민주적 자본주의를 위해 경영 교육은 복원력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결론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현대 역사의 중심 주제는 폭정과 민주적 자본주의 사이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확실히 후자가 더 우세하다. 후쿠야마도 그랬듯 후자가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주장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민주적 자본주의를 뒷받침했던 경제적 효율성이 수반되는 이득을 분배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증거들을 우리는 매일 발견한다. 파레토 분포의 냉혹한 현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다수의 삶을 더 낫게 해줄 수 있다는 유권자들의 핵심 신조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할 수 있고 훨씬 덜 공평하다. 변화가 필요하다.

 

 

 

출처: Roger L. Martin(전 토론토 대학 Rotman경영대 학장, 현 Martin Prosperity Institute 사장),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HBR, 2019년 1-2월호.

봄꽃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4월. 꽃을 즐길 수 있는 주요 거리들엔 완연한 봄을 맞이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필자의 고향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부도로 가는 길도 주말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일 게 눈에 보입니다. 이 지역은 서울 근교에 있는데다 꽃구경도 하고, 바다내음도 맡고, 해산물 요리도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저도 고향집을 방문할 때면 가족들과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가는 길목 선감도라는 곳에 선감학원이라는 소년 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1982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지난 해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가 쓴 <소년들의 섬>이라는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았습니다. 평소 종종 다니던 곳에 이토록 잔혹한 국가폭력의 역사가 있었다니…가까운 주변에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인터넷 검색창에 선감도를 입력하니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선감도 수용소의 잊혀진 아픔을 기억해내고 진실을 밝히려 노력해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식민지 말기에 만들어져 1982년까지 운영되었던 선감학원은 4.3이나 5.18과 같은 국가폭력 사건들만큼 폭넓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민선 기자는 선감학원에서의 인권유린 속에서도 살아 남았던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여전히 고통스러운 인생이야기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어렵게 듣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아픈 역사가 오롯이 담긴 책이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학원, 실제는 지옥같은 수용소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나쁜 짓을 할 것 같은 8~18세 소년들을 잡아다가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소년 감화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 잔인한 인권유린 시설을 해방 후에도 없애지 않은 채 군사독재 시절까지도 운영했습니다. 박정희 독재 시절엔 사회를 정화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납치하기도 하고, 미아보호소에서 막무가내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선감도로 끌려온 아이들은 강제노동과 폭력(성폭력)에 시달리며 죄수처럼 살았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기에 지옥같았던 수용소를 벗어나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수용소를 나와서도 아무런 기반 없이 혼자 힘으로 세상을 버텨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기억을 힘겹게 떠올리며 저자의 인터뷰에 응했을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책장 한장을 넘기는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수용소에서 그리고 이후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감히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삶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뒤늦게 비극적 역사를 알게 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선감학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에 기억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이 사건의 진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앞장서왔던 역사학자 정진각 소장은 처절하게 삶을 이어온 피해자들에게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정 소장의 노력만으로는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선감학원에 대해 알게 된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정 소장과 뜻을 모은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폭력 사건들 만큼 논의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나 경기도는 선감학원의 비극이 국가에 의한 폭력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이 없다.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 또한 거의 없었다. 정 소장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선감학원의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선감학원의 비극 대부분은 아직도 피해자들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20쪽)


선감학원을 거친 삶은 고통 그 자체

1963년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던 열 살 남짓 된 쌍둥이 형제 중 형은 이듬해 작은 꽃신 하나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왜 끌려왔는지도 모른 채. 관도 없이 묻혔던 형의 유골이 발굴되었을 때 유골을 받아든 사람은 가까스로 생존해 이제는 환갑이 넘은 쌍둥이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이 기억하는 선감학원은 굶주림과 지독한 매질이었습니다. 형이 죽은 후 동생은 운좋게 선감학원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이후의 삶도 그리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선감학원을 겪은 뒤에는 기를 펴고 살 수가 없었어요. 늘 불안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앞장설 일이 생겨도 나설 수가 없고, 사람 사귀는 것도 두렵고.”(47쪽)


동생은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막노동, 운전 등 평생을 성실히 일했지만 사글셋방에서 살고 가족도 없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당시에도 허드렛 일이라도 찾아 일해야 당장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파괴해버린 국가폭력 사건인데 가해자도 책임자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원망스럽습니다.

서울에 있는 삼촌 집에 가다가 남루한 옷차림을 이유로 경찰에 납치되듯 끌려갔던 한일영씨의 인생도 상상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어머니와 삼촌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경찰에게 잡혀 아동보호소에 들어간 후 선감도로 이송된 한일영씨 역시 강제 노동, 굶주림, 폭력을 겪으며 지옥같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동상이 걸려도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해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도 발을 자르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야 했던 삶…

선감학원에 수용된 지 3년 만에 한일영씨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웃 섬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섬 주민들은 선감도에서 탈출해 온 소년들을 겁박해 노예로 부렸습니다. 악귀와 같은 독재 정권 아래 국민들이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감도 주변 지역 주민들은 소년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탈출했던 이웃 섬에서 노예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한일영씨는 다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13살에 찾아가던 삼촌집에 18살이 되어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무원이 납치해 선감도로 보내기도

지금은 스님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곽은수씨는 부모와 형제가 있었음에도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에 실려 수원시청으로 끌려갔습니다. 곽은수씨는 공무원에게 납치되어 선감학원에 수용된 경우였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졌던 폭력입니다. 물리적 구타뿐만 아니라 선배들로부터 성폭행까지…그는 선감학원을 ‘약한 이는 고통속에서 죽거나 고통을 못이겨 도망치다 죽는 동물들의 세계’였다고 말합니다.

곽은수씨는 잡혀간 지 8년만에 선감도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탈출한 지 5년만에 선감학원을 찾아가 엄청난 매질을 당하고 성장증명서를 받아와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적응해 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다 절에서 만난 스님들의 도움을 통해 성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아보다 비장하게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이 곤두박질쳤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나를 잡아가지 않았다면! 그 생각이 안 떠나니까 속에서 뜨거운 게 막 올라와서 괴롭고, 그럴 때마다 찾아서 복수하고 싶고…다 용서하고 살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아니에요…너무 비참하잖아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죠. 지금도 꿈속에서 ‘기상’이라는 소리를 들어요. ‘제2반 인원보고’ 하고 소리 질러서 같이 자던 스님들 깨우기도 하고요. 공무원한테 붙잡혀 오는 꿈도 꾸고, 선착순 하는 꿈도 꾸고요. 국가에서 저지른 일이니, 국가로부터 사과라도 받아야겠어요.”(155쪽)


진실규명과 사과, 배상이 이뤄지기를

이분들 이외에도 인터뷰에 응한 선감학원 생존자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묻게 되고, 악독한 국가 아래서 시민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자문하게 되는 역사입니다. 저자는 선감도에 끌려온 소년들이 걸었을 길을 걸으며 길의 끝자락에 있는 박물관에서 작은 꽃신을 보며 선감학원의 진실을 확인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할 수 있는 것은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민선 기자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나서 후련해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포기하기 않고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이 책이 우리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선감학원이라는 잔혹한 국가폭력의 진상이 시민들에게 더욱 알려지고 진실이 규명되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배상이 이루어 지는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토론토 대학 Rotman 경영대 학장을 지내고 현재는 Martin Prospertiy Institute 사장인 Roger L. Martin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9년 1-2월호에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효율성 추구의 대가>라는 글을 썼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효율성 추구가 어떤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글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실재하지 않는 가정에 기반한 경제학은 언제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질까? 심하게 말하면 가장 큰 공인 사기꾼 집단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작 <국부론>에서 노동자 개인이 최종 제품까지 만드는 것보다는 분업이 기업을 보다 생산적이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년 후 데이비드 리카도는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에서 경쟁우위 이론을 주장했다. 자신들의 분야에 집중해 포르투갈 노동자는 와인을 만들고 영국 노동자는 옷을 만들어서 교역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주장이다.

이러한 통찰은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산업혁명은 낭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프로세스 혁신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을 조직화하는 방식이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생산성에 더 영향을 줄 수 있고 전문화가 기업이익을 창출한다는 개념들은 오늘날까지도 경영학 연구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미스와 리카도는 프레데릭 윈스로우 테일러의 선도자였다. 테일러는 경영도 과학이 될 수 있다고 주창했고 이는 W. 에드워드 데밍이 생산 과정에서 모든 낭비를 없애기 위해 고안된 총합 품질 관리 시스템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스미스, 리카도, 테일러, 데밍은 경영을 시간, 재료, 자본 등의 낭비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과학으로 변화시켰다. 효율성의 가치에 대한 신념은 결코 희미해진 적이 없다. 이는 더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WTO(World Trade Organization)같은 다자간 기구들에 스며들었다. 효율성 추구는 무역 및 외국 투자 자유화, 세금 부과 효율화, 탈규제, 민영화, 투명한 자본 시장, 균형 재정, 낭비 방지 정부 등을 통해 워싱턴 컨센서스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 세계 경영대학의 수업에서도 효율성 추구는 장려되었다.

낭비 제거는 합리적인 목표인 것처럼 들린다. 자원을 전에없이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를 왜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효율성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놀랍도록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초효율적인 기업들이 사회적 무질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까지 논의를 확장하고자 한다. 효율성으로부터 얻어지는 보상은 전문화의 정도가 높아지고 가장 효율적인 경쟁자들에게 시장 권력을 부여하는 효율성이 향상되어감에 따라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기업 환경은 극도로 위험이 높아진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이 지속불가능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해결책은 기업, 정부, 교육이 경쟁 우위의 좀 덜 즉각적 자원인 회복력에 강력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단기적인 이득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다 안정적이고 적합한 사업환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 

효율성에 대한 수그러들 줄 모르는 추구가 왜 위험한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먼저 경제 활동의 보상이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탐구해봐야 한다.

성과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소득, 이익 등의 경제적 결과를 예측할 때 우리는 종종 개인 수준에서의 보상은 운에 따라 무작위적이라 가정하곤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보상은 우리가 하는 선택을 포함해 아주 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결과가 운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작위성은 단순한 가정이다.

만약 경제적 결과가 무작위적이라면 이것은 가우스(Gaussian) 분포를 따라야 한다. 그래프로 그리면 보상의 대부분은 평균에 가까울 것이고 양 끝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모습일 것이다. 사람의 키, 몸무게, 지능지수 등과 같은 인간의 특성들을 포함해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와 같은 패턴을 따르기 때문에 이 패턴은 정규분포라고도 부른다. 혹은 그래프 모양 때문에 종(bell) 곡선이라고도 부른다. 데이터가 추가되어 갈수록 전체는 점점 더 정규분포에 가깝게 된다. 가우스 분포가 인간 사회와 자연에서 아주 일반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영역에서도 그와 같은 분포를 따를 거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경제적 결과들이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개인 소득과 회사 성과가 대체로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라 기대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정한다. 산업을 생각하는 고전적 방식은 소수의 승자, 소수의 패자, 그리고 중간 정도의 많은 경쟁자들이 있을 것이라 정의한다. 이런 환경에서 효율성에 따른 이득은 다른 주체들도 그것을 채택함으로써 빠르게 사라지고 회사가 실패하면 다른 경쟁자들이 그것을 대체한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경쟁시스템은 반신뢰 정책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제대로 분배가 되지 못하게 하는 매우 크고 강력한 하나의 기업이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만약 결과가 무작위 분포를 따르고 경쟁 우위가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면 효율성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지속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 성과에서 무작위성 가정은 맞지 않는다. 현실에서 효율성은 소수의 행위자들에게 지속하는 경쟁우위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분포를 따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한 세기도 전에 20%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80%의 이탈리아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파레토 분포에선 발생빈도 대다수는 낮은 쪽에 몰려있고 끝부분으로 갈수록 그 높이는 점점 더 높아진다. 여기엔 의미 있는 중간층이란 게 없다. 분배는 안정적이지 않다. 가우스 분포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달리 파레토 분포에선 데이터 포인트가 추가되면 분배는 더 극단적이 된다.

파레토 분포의 각 결과들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앞서 가우스 분포를 나타낸다고 했던 사람의 키를 보면, 키 작은 어떤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키에 기여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키는 정규분포를 나타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를 팔로우할 때를 생각해보자. 보통 먼저는 팔로우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핀다. 팔로워가 얼마 없는 사람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매우 많은 팔로워를 가진 유명인은 즉각적으로 매력있는 후보자가 된다. 팔로워가 많을수록 효과는 더 커진다. 때문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결과는 파레토 분포를 나타낸다.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 팔로워 대부분을 차지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수의 팔로워만을 갖고 있다. 팔로워 중간값 150-200정도는 수 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사람에 비해 아주 작은 비율이다.

부의 분포도 위와 같다. 어느 시대든 세계에 있는 돈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당신이 가진 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고 당신이 버는 돈은 다른 사람이 버는 돈과 독립적이지 않다. 게다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벌기가 쉬워진다. 흔히 말하길 돈을 벌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미국인 상위 1%부자가 미국 부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하위 90%는 국가 부의 단 23%만을 차지한다. 가장 부유한 미국인은 가장 가난한 미국인보다 천억배 더 부자다. 반면 가장 큰 미국인은 가장 작은 사람보다 세 배가 좀 안되게 크다. 파레토 분포가 훨씬 더 폭넓게 퍼져있는지를 재확인해 주는 결과이다.

부의 지리적 분포에서도 비슷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부자들은 몇몇 지역에서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 1975년에 미국인 상위 5%부자의 21%가 가장 부유한 10개 도시에 거주했다. 2012년에 그 비율은 29%까지 상승했다. 소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966년에 일인당 평균 소득은 아이오와주 세다 래피드에서와 뉴욕시티에서 동일했다. 지금은 세다 래프드가 37% 수준으로 뒤쳐져 있다. 1978년에 디트로이트는 뉴욕시티와 비슷했지만 지금은 38%수준이다. 샌프란시스코는 1980년에 국가 평균보다 50% 더 소득이 높았는데 지금은 88%가 높다. 뉴욕시티는 1980년에 80%가 평균보다 높았고 지금은 172%가 높다.

사업 성과도 파레토 분포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산업 연합은 선진국들에서 점점 흔해진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이익이 소수의 기업들에 집중된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산업의 75%가 더 집중화되었다. 1978년엔 상위 100개 기업들이 공개된 기업들 전체 이익의 48%를 차지했었는데 2015년엔 그 수치가 84%까지 치솟았다. 소위 신경제의 성공이야기들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역학아래 놓여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우스 분포는 파레토 분포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효율 추구가 소위 단일문화의 역학을 따라 이 역학구조에 어떻게 들어맞았으며 권력과 자기 이익이 몇몇 주체들이 시스템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통합에의 압력

UCLA소속 Bill McKelvey 등의 복잡성 연구자들은 시스템적 압박이 성과를 파레토 분포로 이끄는 몇몇 요인들을 확인했다. 그것들 중에는 문제가 있는 시스템에 대한 압박과 그 참여자들 사이의 연결의 용이함이 있다. 복잡성 이론가들이 좋아하는 설명 중의 하나인 모래 쌓기를 생각해보자. 처음엔 모래를 한 알씩 쌓아서 무너지지 않게 수천 개의 모래알을 더할 수 있다. 이때 각 모래알들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모래알 하나를 더했을 때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 때 모래알 하나는 거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만약 중력이 없다면 모래산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모래산은 중력이 모래알들을 끌어당길 때에만 무너진다.

사업 성과에서 중력과 같은 것이 효율성이다. 미국 쓰레기 관리 산업을 보자. 미국 전역에 수천개의 작은 쓰레기 수거 회사들이 있었다. 각 회사들은 특정한 경로에서 쓰레기를 수집하는 하나 또는 몇 대의 트럭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회사들의 수익은 꽤 정상분포에 가까웠다. 몇몇의 큰 회사들이 더 높은 수익을, 몇몇의 약한 회사들이 낮은 수익을 내고 있었고 대부분은 평균적인 수익을 내고 있었다. WM(Waste Management)의 설립자 Wayne Huizenga는 이 사업의 비용구조를 살펴보다 트럭 보유와  유지 관리가 두 가지 큰 요소임을 알았다. 각 소규모 회사들은 몇 대의 트럭을 구입하고 수리 차고를 운영했다.

Huizenga는 주어진 지역에서 몇몇 경로를 얻게 되면 두 가지가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트럭 제조사들로부터 훨씬 더 큰 구입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차량을 더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개별적으로 있는 유지관리 시설 대신에 하나의 훨씬 더 효율적인 시설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일을 진행해 갈수록 효율성의 효과는 더 큰 효과를 내는 요인이 되어 갔다. Huizenga는 작은 회사들을 계속 매입하고 새로운 지역들로 확장하기 위해 자원들을 만들었다. 이는 WM을 더 크고 더 효율적인 회사로 만들어갔다. 이것은 모든 더 작은 회사들에게 경쟁적 압력으로 작용했고 WM이 자신들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 가격을 더 낮게 했다. 이러한 작은 규모 회사들은 수익이 줄거나 회사를 WM에 팔 수 있었다. Huizenga의 성공은 시스템에 대한 압력의 거대한 증가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모래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쓰레기 처리 산업은 빠르게 합병되어 갔다. WM은 지배적 우위를 가져 가장 높은 수익을 냈고 두 번째로 큰 회사인 Republic Service는 수익이 줄어들었다. 병합될 가능성이 있는 몇몇의 더 작은 회사들 역시 수익을 별로 내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회사들은 근근히 버틸 정도로만 운영되었다. 이 산업은 WM이 승자독식하는 파레토 분포를 갖도록 구조화되었다. WM은 2017년에 14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WM이 매우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것을 반대해야 할까? 고객들에게 유익하다면 WM이든 작은 회사들의 모임이든 뭐가 문제인가? 효율성의 지배 모델에는 갑작스런 실패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해 농업분야의 사례를 살펴보자.

단일 문화의 문제

아몬드는 미국 여러지역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선 다른 지역들에서보다 더 잘랐다. 효율적인 생산 관점에서 규모의 경제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Central Valley는 아몬드 생산에 최적임이 확인되었고 오늘날엔 세계 아몬드 생산의 80%가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생물학자들이 단일문화라고 부르는 고전적인 모델이다.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는 하나의 공장, 하나의 산업을 지배하는 하나의 기업, 모든 시스템을 지배하는 하나의 소프트웨어.

그러한 효율성은 가격에 달려있다. 아몬드 산업은 불필요한 중복을 피해 설계되었고 그 과정에서 중복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을 잃었다. 한 번의 극단적인 지역 날씨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전세계 생산을 거의 쓸어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통합에는 연쇄 효과가 있다. 아몬드 나무들이 같은 토양과 같은 날씨에서 자라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꽃들은 모두 짧은 기간 동안에 모두 수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전역으로부터 벌집을 실어와야 했다. 동시에 꿀벌 유행병은 꿀벌들의 작업으로 수분이 필요한 식물들에 관한 문제를 일으켰다. 각 지역으로부터 이송된 벌집들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단일문화 수분으로 인해 벌들의 저항성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유행병이 생기게 되었다.

권력과 사리 추구

효율추구 시스템에선 가장 효율적인 주체가 가장 큰 권력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시스템이 효율적이 되어갈수록 효율적인 주체가 시스템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될 때 전체 사회 가치를 장기적으로 극대화하도록 하기 위해 효율의 목적이 사라진다. 대신에 가장 큰 중간 가치를 지배적인 주체에게 전해주는 것이 효율성이라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자본시장에서 볼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의사결정권자들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주체와 공동 노력을 한다. 기관투자자들은 고위 임원들에게 주식 기반 보상을 주는 것을 지지한다. 임원들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급여지불액을 줄이고 연구개발 예산 및 자본지출을 줄이려는 조치를 취한다. 자본지출 감소는 현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주식 가격을 올리게 된다. 이 투자자들과 임원들은 단기 이익 실현을 위해 자신들 주식을 팔게 되고 이는 거의 주식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이득은 비용에 달려있다. 가장 명백한 피해자는 회사의 치솟는 재산 때문에 해고된 직원들이다. 장기 투자자도 회사의 미래가 위태롭게 되기에 손해다. 회사가 제품 개선에 투자를 줄임으로써 위협이 될 수 있는 제품 품질 측면에서 고객들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다.

주주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은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들간의 경쟁이 보상을 줄 것이라 주장한다. 새로운 기업들이 해고된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고 고객들이 그들의 제품을 구입하면 주주들은 더 많은 보상을 가져다주는 투자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장이 매우 역동적이어야 하고 소수에 의해 지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은 몇몇 부문에서는 타당하다. 항공산업이 그렇다. 항공산업의 주 자산인 비행기와 게이트는 상대적으로 얻거나 폐기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면 새로운 업체가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시작하거나 반도체 공장을 만들거나 통신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경쟁우위가 네트워크 효과로 묶여 있어 기존의 주체들에게 우위를 부여하는 신 경제 시스템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역으로 새롭게 진입하기가 가장 어렵다.) 때때로 권력은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지배적인 주체의 목을 조르는 제약을 풀어주는 정치적 조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연금 펀드 산업에선 지배적인 내부자의 지독한 권력 남용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론상으로 펀드 매니저들은 장기 투자 결정의 품질에서 경쟁력을 얻어야 한다. 미국 내 75개 연금펀드 자산의 50%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25개 연금펀드들 중 19개는 정부가 만들고 규제하는 독점이다. 연금 고객들은 공급사를 선택할 수 없다. 만약 텍사스에서 교사로 일한다면 정부는 정부기관인 텍사스 교사 퇴직 시스템이 퇴직 자산을 관리하도록 지시한다. 때문에 펀드매니저는 명백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다. 이들은 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헤지펀드에 유익이 되는 방식으로 투자하도록 하는 유인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난 10년에만 미국 최대 연금펀드 고위 임원들은 헤지펀드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철저한 감시를 벗어날 수 있고 뇌물이 항상 노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금 펀드 매니저들은 자신들 돈으로는 갈 수 없는 호화여행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투자 은행이나 헤지펀드와 같이 수익성이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특히 서서히 퍼지는 연금펀드 사례는 단기매매 헤지펀드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펀드 매니저들은 자신들의 수익율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비교적 적당한 수익을 올린다. 이러한 사례는 트레이더들에게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장기간을 관리해야 할 기업 리더들의 능력에 타협함으로써 헤지펀드가 자본 시장에서 불안정함을 만들게 한다. 헤지 펀드와 연금펀드 매니저들은 이익을 얻는 동안 연금가입자들은 손실을 겪는다.

경쟁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결과가 진짜로 무작위적으로 나오는 매우 역동적인 시장에서만 장기적으로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경쟁 자체가 작동하는 방식은 단기효율 추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 위와는 반대다. 몇몇의 주체에게만 아주 견고한 우위를 부여한다. 이와 같은 주체들이 시장을 점유하게 되면서 시장 권력을 획득하고 이는 이들이 이익을 창출하기 보다는 이익을 추출해감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가치를 얻기가 더 쉽게 만든다.

Part 2에 계속

출처: Roger L. Martin(전 토론토 대학 Rotman경영대 학장, 현 Martin Prosperity Institute 사장), The high price of efficiency, HBR, 2019년 1-2월호.

1년에 채 10권이 되지 않는 1인당 독서량(13세이상) 통계를 언급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라는 기사들은 매년 되풀이됩니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저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책을 진짜 안읽네. 큰일이네.’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우리는 왜 독서량이 적다고 걱정할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도 문제는 없지만 독서가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헤르만 헤세는 <독서의 기술>에서 “삶으로 이끌어 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책이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3색볼펜 읽기 공부법>을 쓴 사이토 다카시에게 독서는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폭넓게 수용하는 행위”이며 “여전히 유효한 공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앤 라모트는 <쓰기의 감각>에서 책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책을 읽어오면서 저 역시 독서가 유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독서의 유익을 말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책을 수십 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독서가와 작가들은 가장 기본적인 지식 습득에서부터 자아발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독서가 유익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토야마 레히토라는 작가는 정말 실제적인 독서의 유익과 독서 방법을 제안합니다.
 

책 표지ⓒ 가나출판사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후 여러 기업들을 거치며 성공한 삶을 살아온 저자는 <하버드 비즈니스 독서법>이라는 책으로 자신의 독서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그는 당면한 문제 해결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 독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히 실용적 독서법의 극단에 있는 읽기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고, 독서 자체보다는 독서를 통해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가에 목적을 둔 독서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땐 뭔가 속물적인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읽기만 하는 독서의 함정”이라는 문구에 끌림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독서가 무조건 실천으로 옮겨져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유용한 지식을 얻었다’거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만족스럽네’ 정도로만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하토야마씨가 말하는 독서방식도 참고해 볼 만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를 빈번하게 만나는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하고 실용적인 독서법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혹은 빨리 읽고 아무런 변화나 성과가 없는 것보다는 “한 페이지 또는 한 줄만 읽었더라도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실용적 독서라면 굳이 꺼려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과제 해결’에 책을 읽는 목적을 둔 저자가 하는 말들은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독서량이 아니라 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독서의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에 대한 자기 의견을 가져야 한다.’ 등의 문구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정해진 답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사회적 배경이 모두 비슷하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자기 의견을 가지는 것보다 상대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논의나 대립보다는 결국 평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41-42쪽)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본 이유를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급변하는 세계 비즈니스 환경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새겨들을 만한 조언입니다.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겐 저자가 제안하는 과제 해결을 위한 실천형 독서가 시급히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중요한 문장이나 부분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책의 내용을 지금 자신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하라고 저자는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때문에 저자는 속독이니 다독이니 하는 기술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물론 저자의 독서법은 모든 종류의 책에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독자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즈니스 환경, 즉 경제나 경영관련 실용도서를 이렇게 읽자는 제안입니다.

저자의 독서법은 네 가지 문구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 ‘지금 필요한 10권의 책’, ‘이 책들을 눈에 띄는 가까운 곳에’, 그리고 ‘실천’. 즉 자신이 당면한 과제를 늘 떠올릴 수 있고, 주의가 분산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책의 권수를 10권 이내로 줄여 그것들에서 얻은 통찰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저자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영세계에 있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토야마식 독서법에서 제가 얻은 교훈 한가지는 ‘책 처분’에 관한 것입니다. 실상은 한번 들춰보지도 않을 책으로 책장을 채워두지 말라고 저자는 제안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책장을 정리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읽을 것 같은 생각에 만지작거리고 다시 책장에 꽂기를 반복하다 먼지만 소복하게 쌓인 책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실천거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읽지 않을 책 처분!
 

“그냥 종이일 뿐이잖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절대로 다시 보지 않을 테고, 공간만 아깝지. 만약 다시 봐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사면 되지 않아?”(67쪽)


그렇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사면 됩니다. 왠지 이번에는 책장에 쌓여가며 제게 부담을 주고 있는 책들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없는 책들은 과감하게 처분하고 새로운 책들을 친구로 들일 것입니다.

실용과 실천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저자에게도 독서하는 방식에 변화는 찾아옵니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끊임 없이 마주할 때는 그와 관련된 실용적인 책들을 읽었으나, 이후엔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독서,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 시대의 흐름을 읽기 위한 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역시 업무상 문제 해결 목적 이외에는 애독가들이 말해왔던 것과 같은 독서의 유익을 누려왔던 독서가입니다.

이 책의 제목만 보고서 언뜻 흔한 자기계발서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어쩌면 피해왔을지도 모르는 극단적으로 실용적인 독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역시 책은 어떤 면에서 보나 우리에게 유익을 건네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 걱정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어떤 책, 어떤 목적이라도 좋으니 책을 읽어봅시다!

[OECD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자당 연간 노동 시간 자료를 보니 대한민국은 여전히 최상위권! 역시 노동의 나라인가!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일하느라(실제로 일하는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고 한편에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고. 걍 간단하게 사람들 더 뽑고 월급 조금씩 나눠서 주면 좋겠구만...이기적인 심성을 가진 인간들이 고렇게는 못하겠지? 암튼 일하는 시간을 마냥 늘린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절대 아님은 진리라 생각한다. Steve Glaveski(Collective Campus 설립자)씨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1일 6시간 노동을 제안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럴 날이 올랑가 모르겠지만 이 방향이 옳아 보인다. 인공지능, 로봇 등이 주인공이 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더 옳은 방향인 것 같다.]

일일 8시간 노동은 19세기 사회주의로부터 기원했다. 기업들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상한선 없는 노동을 요구할 수 있던 때였고 산업혁명은 6살짜리 어린이들도 탄광에서 일하도록 했다. 미국 노동조합들은 주 40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했고 결국 1938년 Fair Labor Standards Act의 일부로 주 40시간 노동이 비준되었다.

그 때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 일, 놀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노동의 본질도 알고리즘적 일에서부터 혁신적 사고, 문제 해결, 창의성을 요구하는 체험적인 일로까지 커다란 부분에서 변화되고 있다.

조직심리학자이자 오리지널스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Adam Grant는 “복잡하고 창의적인 일들이 많아질수록 노동하는 시간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1일 8시간 노동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Grant는 또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리더들도 1일 8시간 노동이 현재와는 맞지 않는 것 같을지라도 과거에 놀라울 정도로 고착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체험적 일은 사람들에게 1975년 헝가리출신 미국인 Mihaly Csikszentmihalyi가 창안한 몰입(flow)이라는 심리적 상태에 이를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떤 활동에 완전히 몰두하는 것이다. 몰입에 대해 맥킨지에서도 10년 동안 연구를 했는데 고위 임원들은 몰입 상태에 있을 때 생산성이 5배는 더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Advanced Brain Monitoring의 과학자들도 몰입이 초보 사수를 전문가 수준으로 훈련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현대적 조직이 생산성을 악화시킨다

직원들이 하루 동안 이메일을 하는데 평균 6시간을 사용한다는 Adobe사의 연구에서와 같이 오늘날 많은 조직들은 효용성, 반응성, 회의참석에 대해 반생산적 기대를 가짐으로써 업무 흐름을 방해한다. 또 다른 연구에선 평균적인 직원들이 하루에 이메일을 74번 확인하고 스마트폰은 2,617번을 터치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직원들은 지속적인 방해와 초반응성 상태에 있다.

Basecamp 설립자이자 ‘미칠정도로 일할 필요는 없다’의 저자인 Jason Fried는 프로그래밍과 글쓰기와 같은 창의적인 일을 위해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직원들에게 자신의 업무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을 가졌던 게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오랫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보통 직원들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기본 한 시간 회의. 대개는 업무시간 내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느라.

-메신저, 컴퓨터 및 스마트폰의 알림 등으로 인한 빈번한 주의 산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위해 불필요하게 합의를 구하는 일들

-끊임없는 메일함 비우기. 이는 자신의 목적보다 다른 사람의 목적을 우선하는 행동의 상징이다.

-출장(때론 장거리). 전화로도 충분할 수 있는데.

-업무의 빈번한 변경. 그 결과 인지 전환의 고통을 겪음. 작은 일들에도 피곤을 느끼게 됨

-가치가 거의 다 된 일들에도 오랜 시간을 낭비함

-기본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들

Grant는 말한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들에서 집중되지 않은 8시간보다는 집중된 6시간 동안에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 Cal Newport도 Grant와 같은 맥락으로 말한다. “매일 방해받지 않고 서너시간을 연속으로 일하면 생산성과 우리의 삶에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Fried도 하루에 절반 정도를 몰입한다고 한다. “하루에 네 시간의 몰입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거기에 더 시간을 투입한다고 해서 그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더 오래 있을수록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업무 로드를 유지하기 위해 5시 넘어서까지 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업무로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더 짧고 더 생산적인 하루를 만드는 방법

나는 호주 멜번에 있는 혁신기업 Collective Campus에 속한 나의 팀과 함께 2주 동안 1일 6시간 업무 실험을 했다. 1일 업무 시간이 짧아지자 업무시작 몇 시간 동안 우리 팀은 효과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방해를 줄이고, 훨씬 더 신중한 수준으로 일하기 위해 강제로라도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유지되었고 어떤 경우엔 업무의 양과 질이 향상되기도 했다. 팀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있다 했고 휴식, 가족, 친구, 다른 시도들을 위해 더 시간을 사용했다고 보고했다.

LinkedIn에 우리 실험을 올리자 한 지인이 댓글을 남겼다. “이론 상으론 멋져요. 하지만 난 6시간 동안 내 모든 업무를 끝낼 수가 없는 걸요!” 모든 업무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그럴 것이다. 파레토(Pareto) 원리를 참고한다면 당신 업무의 약 20%가 가치의 약 80%를 만들어 낸다. 이는 높은 가치가 있는 업무들에 집중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제한된 자원을 가진 소규모 팀의 관리자라면 다음에 제시된 생산성 기법을 반추해보라. 그리고 리더로서 당신의 임무는 환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것임을 기억하라.

우선순위 정하기: 파레토의 법칙을 기억하자. 직원들의 강점과 팀의 목표를 함께 고려하려 높은 가치를 가진 일에 집중하라.

잘라내기: 가치를 더하지 못하는 일들은 줄이거나 없앤다. 기본 회의시간을 60분에서 30분으로 줄이기, 스마트폰 알림 꺼놓기, 이메일 확인은 한꺼번에 하기 등으로 시작하자.

자동화: 단계를 밟아가는 일이라면 자동화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당신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외부조달: 만약 자동화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를 위임하거나 외부에서 조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당 만원 정도 드는 일에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실험: 필요없는 분석과 잘못된 것들에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 관리자들은 효과적인 실험, 측정, 적응을 통해 둘 다를 피할 수 있다.

실행: 엔진 시동에 필요한 무엇이든 하라! 스케쥴러에 대강의 계획을 세우고, 한 번에 한 가지씩, 가장 어려운 것을 먼저 하라. 자연 그대로의 리듬에 귀을 기울여보고 짧은 휴식들 사이에 약 25분 단위로 일하는 시간을 나눌 수 있게 타이머를 사용하는 Pomodoro 기법도 활용해 보라.

현실적인 기대치를 설정하라

직원들이 반응대기 상태에 있지 않고 몰입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짤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이 기분에 따라 방해받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팀에는 단순한 규칙이 있다. 만약 팀원 중 누군가가 헤드폰을 끼고 있다면 절대 기다릴 수 없을 만큼의 중요한 일(이런 경우는 좀처럼 없다)이 아니면 그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미 육군 일반직원들에게 5일 동안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도록 했더니 일터에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감이 있다고 느껴져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했다는 캘리포니아대학 Gloria Mark의 연구결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직원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어떤 것은 싸울 가치가 있다

몰입할 수 있는 일하는 분위기 조성과 1일 근무시간 단축 실험을 통해 이것이 생산성과 성과를 높일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스트레스 수준도 낮출 수 있고 직원 보유율도 나아지고 직원들이 일터 밖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들은 디지털 혁명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일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즉각적이고 훨씬 더 비용이 덜 드는 변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실험에서 통찰을 얻었어도 우리 회사에선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선 싸워 얻을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싸울 가치가 있다.

출처: Steve Glaveski(Collective Campus 설립자), The case for the 6-hour workday, HBR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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