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택배로 김장 보냈다."

매년 김장철이 되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께 받는 메시지입니다. 부모님께 메시지를 받은 다음 날엔 택배 기사님에게 "고객님의 택배를 안전하게 배송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현관 앞에 쌓인 김장박스 사진과 함께. 신속한 배송에 놀라면서도 그 무거운 김장박스를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에 올려다 놓으신 배송기사님께 미안한 맘이 들곤 합니다.

우리나라 택배는 정말 놀랍습니다. 왠만한 물건은 하루이틀이면 배송이 완료되고 온라인 쇼핑의 경우엔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에 상품을 받아볼 수도 있습니다. 이토록 편리한 서비스를 빈번하게 이용하면서도 그 과정에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김장이나 쌀 같이 무거운 물건을 배송받았을 때 배송기사님께 느끼는 미안함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책 표지ⓒ 보리


그런데 택배 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까대기>라는 만화책을 읽고 나서는 무거운 물건을 현관 앞까지 올려다 놓는 택배 기사님에 대한 미안함 이상의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너무나 편하게 이용하는 택배지만 그 편리함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다른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게다가 고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이상한 고용 형태와 택배 업계의 구조로 인해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택배 회사는 택배 지점들과 위탁계약을 맺고 택배 지점들은 택배 기사와 배송 영업을 위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택배 회사의 배송 서비스를 한 단계 거쳐 위탁 받은 택배 기사는 택배를 배송한 후 건 당 수수료를 받습니다.

택배 기사들 대부분은 개인사업자로 자신들이 소유한 차로 일합니다. 수수료 수입으로 얻은 수익금 중 기름값과 차량유지비, 부가세, 전화비, 식대, 지점 운영비 등을 제하고 나면 택배 노동자들의 수입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택배 회사가 정한 배송 및 분실/파손 정책과 명령에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나서 다쳐도 택배 기사 자신이 처리해야 하고 배송이 잘못되어도 계약 위반으로 기사가 책임져야 합니다. "개인사업자인데 개인사업자의 자율성은 없고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권리는 없는"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사정을 이종철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담담하게 알려줍니다. 

책에서는 또 다른 하청구조도 보여줍니다. 택배 회사는 운수 회사에게 택배 운송 하청을 줍니다. 운수 회사는 화물차 운전 기사들에게 일감을 주고 수수료와 번호판 대여료 등을 받아갑니다. 어떤 이유로 운임료 지급이 미뤄지게 되면 화물 기사들은 돈을 받을 때까지 자신의 돈으로 화물차를 운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화물 기사들은 화물차 운영과 생계를 위해 빚을 지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형 택배 회사의 출현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형 택배 회사는 택배 운송료를 낮추며 점유율을 높여갔고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했습니다. 건당 천원하던 배송 수수료는 절반 가까이 떨어져 기사들은 더 많은 택배를 배송해야 이전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운송해야 할 물량은 많아지고 배송은 빨라져야 하니 모든 업무에서 속도가 중요해졌습니다. 노동자의 안전과 보호는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 운송기사, 택배 기사, 까대기 알바 등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을 감수하면서도 위태로운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 환경을 이런 구조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시장에 맡겨 놓은 결과가 이렇다면 정부가 나서 택배 서비스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노동에 대해 한 번쯤은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역할을 생각하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도래하게 될 자동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걱정됩니다. 택배 산업 구조를 보면 자동화의 물결에 크게 타격을 입을 것 같아 보입니다. 이미 아마존은 물류창고에서 로봇을 활용하면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중국의 알리바바 역시 신규 물류센터에 로봇을 도입해 24시간 일하는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이 택배 산업에도 적용된다면?

물론 아마존의 경우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옮기던 직원들을 도입한 로봇을 관리하는 역할로 고용을 전환하였다고도 합니다만 로봇 기술이 지금보다 더 훌륭해진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아마존은 드론으로 배송하는 기술도 가열차게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화물운송에 가장 먼저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합니다.

택배 회사의 중앙 물류센터, 물류센터에서 지점을 오가는 간선 화물차, 지점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 기사,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노동을 하는 까대기 알바 노동자. 택배 산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로봇을 활용하는 자동화 기술에 매우 적합해 보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엔 이 노동들이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택배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여러 단계의 하청 구조와 고된 노동 속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엔 이들 중 상당수는 실업의 위협에 놓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택배 산업 구조를 보면서 최근 기술 혁신인지, 착취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여객운송 산업에서의 갈등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금의 택배 산업 구조와 그 안에서의 노동환경과 노동자에 대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데 만화책 한 권 들고 앉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괜한 걱정을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최근 지속되는 기술혁신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다보니 택배 산업에 미칠 영향까지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집니다.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요즘엔 일터에서도 스마트폰은 일상이다. 이름처럼 일터도 ‘스마트’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은 일터에서의 의사소통에 비중있는 역할을 한다. 특히 그룹대화가 가능한 메신저 어플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 단체대화방은 일터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된 소통도구가 되었다. 스마트폰 안에 카카오톡 단톡방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처음엔 친한 동료들 몇몇이 단톡방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식사모임 의견수렴, 회사 소식 공유, 상사나 주변사람 욕 등을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초대한 업무용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조직구성원들 모두에게 공지사항을 전하거나 업무 지시를 하기엔 아주 편리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업무용 단톡방을 처음엔 그리 탐탁해하지 않았다. 단톡방에서 수시로 이뤄지는 업무지시는 조직장 입장에선 편할지 몰라도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구성원 입장에선 부담이었다. 처음 단톡방에 초대되었을 때 나는 전체 공지만 확인하고 바로 단톡방을 나왔다. 내가 단체 대화방을 나왔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상사는 조용히 나를 불러서 왜 그랬냐고 물었다.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업무지시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상사에게 말했었다. 상관도 없는 팀원들까지 업무지시를 왜 공유해야 하느냐 항의를 했었다. 상사는 단톡방에 한마디 업무지시를 하면 끝이지만 지시를 받는 사람들은 매번 단톡방을 주목해야 한다. 언제 내게 지시가 내려올 지 알 수 없기에 수시로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하지만 이런 나의 저항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구성원 모두가 있는 단톡방의 편리함을 나역시 거부할 수 없었다. 공지나 업무 지시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어려운 과제의 경우 구성원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혼자서 처리하는 것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협력할 수도 있었다. 모호한 업무 지시에 구성원들의 의견이 더해지면서 해야할 일이 명확해지기도 했다.

결국 이런 편리함 때문에 회사에서 사용하는 단톡방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조직장도 포함된 조직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업무용 단톡방에다 조직장을 빼고 운영되는 조직구성원들의 실무를 위한 단톡방, 기존에 있던 마음 맞는 동료들과의 단톡방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단톡방을 보유한 부자가 되었다.

업무용 단톡방에는 각종 경조사 공지, 업무상 필요한 정보 공유, 상사의 업무 지시, 업무 결과에 대한 공유, 회식 일정 및 메뉴 투표 등의 이야기가 주로 오간다. 가장 작은 조직단위가 최소 십여 명, 많게는 이십 여명 이상으로 구성된 회사 특성 상 모든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단톡방은 꽤 효율적인 도구다. 사실 업무시간 이외에 업무지시만 없다면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

처음 업무용 단톡방을 만들었던 상사도 업무 시간에만 활용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 일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급할 때는 업무 시간 이외에도 업무용 단톡방엔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오곤 한다. 불만은 있지만 조직을 떠날 마음이 아닌 이상, 그리고 아주 늦은 시간에 회사에 와서 일하라는 업무 지시가 아닌 이상 단톡방의 메시지들을 읽고 넘기곤 한다. 그래도 업무용 단톡방은 존재 자체가 은근한 스트레스다.

그런데 지난 해 말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어 급히 수술을 하고 몇 개월 동안 회사를 쉬어야 했다. 휴직을 하기 전 담당하고 있던 업무들은 동료들에게 인계했다. 한창 하기 싫었던 잡무들을 동료들에게 떠맡기려니 미안하기도 했으나 잠시 동안은 귀찮은 일들에서 벗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공들이던 프로젝트를 다른 이에게 넘겨줄 때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미안함, 시원함, 아쉬움이 섞인 감정을 뒤로 하고 잠시 일을 쉬고 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 있음에도 그동안 스트레스가 되었던 단톡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휴직을 할 땐 회사일은 홀가분하게 툴툴 털어버리고 잊고 있다가 건강을 회복한 후 돌아갈 거라 생각했었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몇 개월 후에는 회사로 돌아가야 하기에 마음 편히 회사일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휴직 중임에도 업무용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하고 있던 일에 대한 감각을 잃을까 불안해져서 단톡방 대화라도 따라가며 진행되던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어떤 새로운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지 수시로 지켜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론 회사에서 자리를 비운 동안에 나라는 존재가 잊혀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한다. 내가 하던 일들을 인계받은 동료들이 하고 있기에 회사에 돌아가면 다시 그 일을 하게 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물론 휴직 전에 하던 일이 정말 하기 싫었다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일이었던 것을 그 동료가 나보다 더 잘 하고 있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있다.

때문에 내가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단톡방에 오갈 때면 한 두 마디 거들게 된다. 어찌보면 휴직을 하고 있어도 조직구성원들에게 나의 존재와 역할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며 간청인 것 같기도 하다. 휴직을 하기 전엔 동료들의 물음이 귀찮기도 했는데, 내 일을 인계받은 동료가 단톡방에다 내게 질문을 하면 이젠 그 물음이 반갑기도 하다.

일터를 떠나 있음에도 업무용 단톡방을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회사라는 존재의 구속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입사 초기엔 ‘이 회사 아니면 회사가 없나?’라는 말도 주저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새 회사에서 중간 정도의 위치가 되어 아래로는 도약하는 후배들, 위로는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선배들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회사에서 전문성과 역량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선후배 중간에 끼어 나의 위치와 역할이 불안해지는 시기이기도 한것 같다. 이런 때에 회사에서 자리를 비우고 있기에 일을 쉬고 있음에도 일이 쉬어지지 않는다. 휴직 기간이 좀 더 길어지면 이와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까? 아마도 기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회사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 업무용 단톡방에서도 발을 빼지 못할 것 같다.

밤 아홉 시가 조금 지났을 때 무심히 스마트폰을 들었는데 때마침 카카오톡 어플 오른쪽 모퉁이에 빨간색 숫자 1이 생겼다. 이내 빨간 숫자는 2, 3, 4...계속 늘어갔다. 어플을 열어보니 회사 그룹 카톡방에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회사에 남아 일을 하고 있던 후배 직원 하나가 쓴 일을 잘 마쳤다는 메시지가 대화의 시작이었다.

야근을 성실히 수행한 후배 직원에게 담당 상사는 고생했다는 메시지를 바로 남겼다. 그리고 이후엔 대부분 엄지척 이모티콘들이 이어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야근한 직원을 응원하는 이모티콘들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보낸 이모티콘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평소 야근을 지양하는 신념을 유지하며 10여 년 이상을 일해 온 내게 밤 늦은 시간 ‘야근을 잘했어요~’라는 메시지는 영 탐탁치 않기 때문이다.

밤 늦은 시간 회사 동료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 받은 몇 개의 대화 목록을 보면서 연장노동(일명 야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야근을 하고 싶은 노동자가 있을까?

있을 수 있다. 1일 8시간인 법정 노동시간 이후에 일을 했을 때 연장 노동에 대한 임금이 추가로 주어질 경우 자신이 누릴 여가시간보다 추가로 받는 월급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을 할 것이다. 시간이냐 돈이냐,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지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것이므로 돈을 위해 야근을 한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곳은 연장노동을 해도 추가로 주어지는 수당이 없다. 단, 관리자가 공식적으로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경우 추가 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공식적 연장 노동은 대개 주말이나 밤새서 일할 때만 인정을 해준다. 평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건 회사에 봉사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는 직원들에게 평일 연장 노동 시간을 고려해 월급이 책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평소 야근할 것을 고려해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추가로 월급을 더 주는 그런 회사가 정말 있을까? 난 회사의 이런 주장은 무시하라고 하고 싶다. 회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나같이 딱 8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는 직원들한테는 하지도 않은 노동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 된다. 회사가 바보인가? 아니면 그 말을 믿는 노동자가 바보인가? 아니면 참 착한 회사인가?

아무튼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일하는 직장에선 평일에 8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노동자에겐 손해다. 뭐? 일에 미친 사람은 평일 연장 노동도 즐긴다고? 맞다. 미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그런 이들이 몇몇 있지만 주로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그렇지 않나 싶다. 달갑지는 않지만 이 경우도 야근을 하고 싶은 노동자가 있다는 편에 넣어두겠다.

손해보는 야근을 왜 하는 걸까?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동자들은 대체로 관리자가 일을 시키기 때문에 야근을 한다. 즉, 회사가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관리자들은 명시적으로 야근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냥 하루 8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양의 일을 요구할 뿐이다. 프로젝트 일정 상 시급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그나마 괜찮은 관리자를 만났다면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이 건은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야. OO가 오늘까지 이 일을 해주면 프로젝트 전체에 큰 기여를 하게 될거야. 힘들기는 하겠지만 며칠만 고생하자.”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 내가 회사에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야근을 할까? 뭐 그런 노동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강압적 지시든, 은근한 설득이든 관리자의 지시에 노동자들은 대체로 따를 수 밖에 없다. 회사는 관리자의 손에 인사평가라는 무기를 쥐어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눈에 띄게 훌륭한, 누가 뭐라할 수 없는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평가자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좋은 점수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사평가에는 주관이 상당히 개입되는데 이 인사평가 결과가 승진과 연봉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제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관리자의 업무 지시에 속으로는 불평하고 투덜대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상사의 지시를 따르곤 한다. 대체로 회사에는 고만고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 관리자의 눈에 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앞서 회사 단체 대화방에 야근 결과를 알리는 것처럼 암묵적 경쟁 상태에 놓인 노동자는 관리자와 동료들에게 자신의 노고를 호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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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동자의 순응적 야근이 미치는 영향

상사의 지시를 밤 늦게까지 이행해서 칭찬을 받는 사람이 생기면 주위 동료들도 이젠 쉽게 야근을 거부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회사가 오랜 세월 노동자들을 통제해 온 방식이다. 내가 있는 회사에서도 이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효과가 있다. 물론 나처럼 관리자에게 법정 노동시간 등을 운운하며 8시간만 일하고 “퇴근하겠습니다”를 외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이런 사람들은 인사평가자의 눈밖에 나기 쉽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하는 8시간 동안 좀 더 집중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회사에 오래 있으면서 상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동료보다 가시적인 혹은 정량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점수를 쌓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이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겉으로 동료라 말하지만 실제론 내 점수 아래에 두어야 할 경쟁자가 된다.

회사에 오래 있는 직원은 나처럼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 하기도 한다. 자신은 나처럼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나? 그러나 인사평가 결과를 받아들고 웃는 것은 상사의 지시를 잘 따라 야근하는 직원 쪽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량적 성과에서 앞선다고 해도 평가자의 정성적 선호를 넘어서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렇게 각 개인을 경쟁상대로 몰아가는 방식의 조직 관리가 겉으로는 좋은 성과(회사가 원하는 성과)로 이어질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조직원들 간의 미묘한 경쟁으로 인해 협력에 금이 가게 되고 조직원들 간의 갈등이 생겨나 생산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회사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회사 내에서 개인의 보상과 연계된 인사평가라는 오래된 무기가 21세기 조직에서도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면 노동자들의 연대가 얼마나 약한 고리인지 확인하게 된다.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회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조직원들이 다같이 선을 정해 합의하면 무리한 일정 단축에 대응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 각각의 사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상은 실현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욕심을 내는 사람, 조직 내에서 더 큰 직책을 맡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 생계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 등은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어 아주 약한 고리다. 상황이 이러하니 억압적 구조 하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회사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밖에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억눌린 상황에서도 ‘송곳’처럼 억압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왔다.

조직원에게 점수를 매기고 일렬로 세워 등급을 매기는 구조에서도, 정량적 성과지표가 반영되지 않는 제도 하에서도 손해를 일부 감수하고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주어진 1일 노동시간 안에 집중력을 발휘해 주어진 업무를 상식 선에서 성실히 수행한다. 물론 가시적인 성과도 다른 이들에 비해 좋은 경우가 많다. 만약 당신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절대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처음엔 관리자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퇴근하겠지만 1년, 2년, 3년...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일하면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OO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는 사람이지’라는 평판을 얻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 한 두명이 있다면 이런 변화를 떠 빨리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그 일당들의 대국민 사기극을 파헤친 12년간의 탐사보도!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 원작>

“강은 누구의 것인가?”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가 쓴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을 읽기 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물음이었습니다. 강 주변에서 강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강의 주인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공공자원으로서 강이 있는 나라 모든 국민들의 것일까요?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자연마저도 누군가가 소유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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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에서 정수근 시민기자가 말했듯 “강은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강은 스스로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다양한 생명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라는 것도 다시금 환기합니다.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에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자연의 선물, 강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으려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탐욕스럽고도 뻔뻔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주변에 손에 잡힐 만한 물건들은 치우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다가 열받아서 주변 뭔가를 집어 던질 수 있습니다. 또 깨질만한 것들은 읽는 자리에서 멀리 두십시오. 역시나 분노로 탁자를 내리쳐 물건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혈압이 높으신 분들도 이 책을 펼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병세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부자되세요’ 대통령을 뽑은 비용과 그가 남긴 부채

“국민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 국민들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자극해 표를 얻은 그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국민들이 반대하자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재정사업을 추진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반대 의견을 내는 시민단체를 파렴치한 단체로 몰아 제압했고, 엄청난 홍보비로 언론을 제어했으며, 사업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교수는 각종 연구용역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환경영향 평가 등도 법을 교묘하게 피해 졸속으로 진행하고, 사업 예산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렇게 4대강 사업은 22조 원이라는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며 강행되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이 완료된 후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흐르는 강을 막아 악화된 강의 수질은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 같았던 대통령을 뽑아 치른 비용은 4대강 사업 예산만 22조 원입니다. 게다가 4대강 주변 공원 조성 및 유지, 부실시공된 16개 댐 보수, 바닥보호공 보수, 녹조 제거 작업 등을 포함해 매년 6천억~1조원 가량의 세금이 4대강 유지관리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이 세금을 복지에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의 말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국립대학 학생들을 공짜로 학교에 다니게 하면 1년에 2조원이 듭니다. 30조원이면 15년을 무료로 가르칠 수 있는 돈이죠. 전체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무료로 하면 1년에 7조 원입니다. 최근에 아동 수당을 1인당 월 10만 원씩 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 돈이 연간 3조원입니다. 고등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면 1년에 2500억 원이면 됩니다. 4대강에 투입된 30조원을 복지에 사용했다면 국민들이 많은 혜택을 누렸을 겁니다.”(165쪽)


죄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

4대강 사업은 이명박의 오만과 탐욕으로 덧칠된 사기극이었다고 김병기 기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학자, 정치인, 관료, 재벌, 검찰, 법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부역자들이 있었기에 이 사기극이 가능했다고 밝힙니다. 특히 언론은 국가의 재정사업을 검증하기는커녕 홍보비를 받아먹으며 사기극을 포장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책은 국민 모두가 읽으며 아파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부역 언론인들이 반드시 읽고 반성하면 좋겠습니다.

김병기 기자 등 저항자들은 12년간 ‘대국민 사기극’을 추적하며 주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묻습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김철문 전 청와대 행정관, 정종환 전 국토해야부 장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심명필 인하대 명예교수,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등을 끈질기게 찾아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해 책임있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기극에 부역한 대가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뻔뻔하게 4대강 사업을 찬양하는 이도 있었고, 부역의 결과로 얻은 연구용역 참여실적으로 더 잘나가는 교수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현 정부가 반드시 해야할 과제를 김병기 기자가 잘 표현해주었습니다.
 

“환부를 도려내듯이, 썩은 부역자들의 죗값을 물어야 한다. 고름을 짜내듯이, 영혼을 팔아 호가호위하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상식을 세워야 한다. 적어도 그들이 지난 과오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의 아픔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10-11쪽)


또 다른 4대강 사업을 방지하려면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확인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예산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되지 않았으며, 이 거대한 사기극에 대해 처벌받은 이도 없습니다. 김병기 기자가 책에서 강조했듯 청문회라도 열어서 책임이 있는 이들을 철저하게 밝혀내고 처벌해야 합니다. 책임자 확인 및 처벌과 함께 또 다른 사기극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책에 소개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법률에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는 막대한 손실을 낸 예산 낭비 사업에 대해 처벌하는 일명 ‘링컨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공공재정 허위 부정청구 등 방지법’을 통해 국가 재정을 옳지 않게 사용한 행위에 대해 처벌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가장 필요한 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사업 이후로 소요되는 국가 예산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좋겠습니다. 국민들 각자가 우리들 세금이 어떻게 버려질 수 있는지 뼈아프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라는 채널을 통해 4대강 사업의 실체를 밝혔던 ‘4대강 독립군’들의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 대다수에게 사기극의 실체를 알리기에는 오마이뉴스라는 채널은 한정적입니다. 흐르는 강을 가로막았던 보를 열었을 때 살아나는 금강을 생생하게 보여줬던 사실들을 주요 공중파를 활용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4대강 주요 보 혹은 댐들을 개방할 것인지, 더 나아가 철거할 것인지 논의가 계속될 것인데 이 때에도 명확한 사실이 국민들에게 공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4대강 사업은 언제든지 다시 출현해 국민들의 세금을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흘려보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4대강 사업 저항자들의 12년 간의 분투도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책을 덮으며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저항한 최병성 목사(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이라는 괴물은 탐욕이 꿈틀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살고 있다.”(162쪽)

어느 날 길을 잃고 밖에서 거닐다

구조된 고양이 한 마리

 

돌봐줄 누군가를 기다리다

결국 넌 우리 집으로 왔지

 

깨끗한 마음으로 살라며

우리집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

하양이

 

밖에 나갔다 오면 현관까지 달려나와

냐양 냐양 나를 반겨주는 너

 

한 집에서 너와 함께 지내다 보니

집 밖에 있는 야옹이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야옹이들아

잘들 살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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