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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자살률 1위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본문
“40분마다 1명, 하루 38명, 한해에 1만4천명이 자살하는 나라” 얼마 전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가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언급한 이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연말이다 크리스마스다 한창 들뜬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속수무책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서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없다
신영전 교수는 2018년 대한민국 자살 사망자 수를 보면서 “자살은 없다”고 썼습니다. 신 교수는 칼럼에서 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지목합니다. 타인의 자살을 함부로 비난하는 자들, 대책 없는 정부, “대학을 못 가면 살 가치가 없다”고 내뱉은 부모와 선생들, 민생을 외면한 국회의원들, 악한 검찰과 기업인들, 돈과 권력의 편이 된 종교지도자들 모두가 가해자라고 했습니다.
신 교수는 “그런 정치인, 기업인, 종교 지도자를 따르는자, 이런 폭력에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자, 쉽게 잊는 자, 무엇보다 아파하지 않는 자가 공범”이라고도 썼습니다. 속절없이 살기를 그만두는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기는 커녕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저 역시 공범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다 자살률 1위 사회를 다시 마주합니다.
자살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개인의 문제로만 보던 자살을 사회적 관점에서 분석한 에밀 뒤르켐의 오래된 책 <자살론>을 읽고 우리 사회의 자살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에밀 뒤르켐이 오래 전 분석했듯이 자살률은 사회 집단의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고유한 것이기에 우리 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드물게 2위)의 오명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자살론>에서 에밀 뒤르켐은 다양한 통계자료를 활용해 자살의 주된 원인이 정신질환에 있지도, 생물학적 요인에 있지도, 환경적 요인에 있지도 않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했습니다. 사회적 환경과 자살이 연관되어 있음을 증명하면서 “사회적 묵인과 무관심”이 취약한 조건에 있는 사회 구성원들을 자살로 이끈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유형을 크게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성 자살(아노미: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돈상태)로 구분하고 자살을 억제하는 데 사회공동체의 통합 혹은 결속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족, 종교, 정치 사회의 통합 정도에 따라 자살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살률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개인이 사소한 충격 상황에서도 자살하는 것은 사회가 그를 자살의 쉬운 먹잇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269쪽)
자살의 근본적 원인
아주 오래된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언급들을 보며 놀랍니다. 에밀 뒤르켐은 그 당시에도 산업사회에서는 “위기 상태와 아노미가 항구적이며 정상적”이라고 했습니다. <자살론>이 쓰였을 시대보다 시간이 갈수록 이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에밀 뒤르켐의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층에서부터 하층에 이르기까지 탐욕은 끝을 모르고 일어난다. 욕구 수준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보다 훨씬 멀리 있기 때문에 안정을 찾을 수 없다. 그와 같이 흥분된 상상에 비하면 현실은 너무나 무가치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현실을 버리게 된다. (중략) 새로운 것과 참신한 쾌락과 알려지지 않은 감각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지만, 이런 것들도 일단 익숙해지면 매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사소한 실패도 견디지 못하게 된다.”(330쪽)
에밀 뒤르켐이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개인들이 점점 더 고립되고, 타인과의 유대가 약해지거나 끊어지고, 사회 조직망 혹은 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살이 줄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국민들을 자살로 이끄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집단적인 힘으로 이어진다고 뒤르켐은 역설합니다.
<자살론>에선 사람들이 자살하는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1)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성격, 2)개인들이 결합하는 방식, 즉 사회 조직의 성격, 3)사회의 해부학적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집단생활의 기능에 혼란을 일으키는 국가 위기나 경제 위기 같은 일시적 사건들. 우리 사회의 자살률이 여러 해 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건 사회의 ‘공존성’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자살에서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뒤르켐은 사회구성원들이 유대감을 가질 때, 사회가 통합되고 결속될 때 자살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뒤르켐 당시엔 종교도, 정치도, 가족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들을 구하기 위해 정부에 사회안전망을 요구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는 개인들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확장되고 비대해졌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개인들은 그들을 규제하고 고정시키고 조직할 중심적인 힘을 찾지 못한 채 상호 간의 관계를 확립하지 못하고 수많은 액체의 미립자들처럼 굴러다닌다.”(526쪽)
뒤르켐은 사회의 결속을 위해 직업 집단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각 직업 집단에 속한 노동조합이라 할 수 있을텐데 우리 노동 현실을 보면 이 또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에밀 뒤르켐이 제안했던 직업 집단의 요건을 적어보니 이런 공동체가 인간사회에서 가능한 것인지 마음만 더 무거워집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 에밀 뒤르켐이 제안한 직업 집단의 요건
1)법적, 정치적으로 공공 생활의 한 기관으로 인정되고 사회적 역할을 하도록 구성될 것
2)보험, 구호, 연금 등 정부가 실패하는 부문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
3)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을 조정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임무를 맡을 것
“지나친 욕망이 한계를 넘어설 때마다 조합은 각 부분에 공정하게 돌아가야 할 몫을 결정해 줄 수 있다. 조합은 성원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불가피한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고 명령을 내릴 권위를 가질 것이다. 강자에게 힘의 사용을 절제하게 하고, 약자에게 끊임없는 저항을 자제하게 하면서 양자 모두에게 상호간의 의무와 전체의 이익을 상기시키고 경우에 따라 생산을 억제하여 병적인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규제함으로써 조합은 욕망을 조정하고 나아가서 그 한계를 정해 줄 수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종류의 도덕적 규율을 확립할 수 있다. 이것이 없이는 모든 과학적 발견과 경제적 진보는 오직 불만만 낳을 뿐이다.”(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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