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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 하는가? 본문
참으로 오래 된 책이 최근에 번역 출판되었다. 출판된 지 16년이나 되어서 소개되는 책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들 인간사에 필요한 이야기인지라 늦게라도 한국에 출판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는 현재 한국의 많은 인간 관계들이 풀려져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어가면서 드는 느낌은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 같았다. 피해자 덫이 무엇인지 설명한 후 그 덫에 빠지게 되는 다섯 가지 심리적 요소에 대해 차례로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피해자 덫에서 빠져나와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 관계로 나아가는 10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딱딱한 흐름의 글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여지들을 많이 남겨주고 있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상황과 그 대처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 덫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덫이란 '난 피해자야'라는 생각 때문에 상처를 받고 다시 상처를 주면서 관계를 망치는 인간관계의 악순환을 말한다" 라고 저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은 특별한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생각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양 극단의 중간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상황들이 참으로 많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이 어쩌면 특별히 상태가 좋지 않은 인간 군상들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각 사례들을 바탕으로 조금씩만 더 진지하게 우리들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만도 않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 때 피해자의 덫에 빠지게 되기 쉽다. 이러한 덫으로 인간들을 이끄는 강한 심리적 요인들을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두려움, 분노, 슬픔, 죄의식, 거짓힘이 그 다섯 가지 요인들이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들은 모두 양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중요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통제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용해 나갈 것인가이다 라는 것이 저자들이 주장하는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두려움은 싸우기와 도망치기라는 두 가지 반응을 낳는다. 피해자 덫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힐책과 비난으로 서로 싸우게 된다. 바람직하지 않은 반응이다. 이와 반대로 도망치기라는 반응에서는 침묵과 거부로 관계를 단절시켜 가게 된다. 두 가지 반응 모두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게 되는 부정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빠져나와서 두려움이 바른 방향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을 대면하여 그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두려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두려움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은 없지만 '해독제'는 있을 수 있다. 이 해독제는 바로 '용기'이다. 결국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쉽지는 않겠지만 해독제를 손에 넣은 이상 시도해 볼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우리에게 부여된 셈이다.
분노 역시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기도 하면서 혼란, 비난, 공격, 복수를 낳기도 한다. 이 역시 건설적이면서도 파괴적이다. 통제되지 못한 분노는 문제의 근원도 자기 자신도 볼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히 통제된 분노는 개인의 힘을 키워줄 수 있다. 분노 아래에는 대개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수치심은 자아 존중감을 한없이 무너뜨리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다. 결국 자아존중감을 높일 수 있는 노력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수치심 위에 굳건히 세워진 분노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눈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 상황이 진정 분노할 만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함으로써 분노에 대한 개인의 느낌을 정리하도록 도와 준다.
인생을 살며 슬픔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슬픔이 한 자리에 머무르게 될 때 자신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소중한 관계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슬픔은 자신에 대한 기대가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할 때 혹은 타인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거나 부족할 때 깊어지는 경향이 있다. 슬픔은 지나가는 과정이어야 하지 그것이 계속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슬픔의 머무름을 막기 위해서는 지나치거나 부족한 기대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혼자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외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면과 받아들임이 이어져야 한다.
죄의식은 특이하게도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통제되지 못하면 사랑은 사라지고 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돌변하게 된다. 죄의식에 빠지는 경우는 남을 통제하기 위해 죄의식을 사용할 때와 남을 기쁘게 하려고 스스로를 죄의식에 가둘 때이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일체감에 가치를 두게 된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두려움이 있기에 죄의식에 빠진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통제되지 않은 죄의식은 완벽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죄의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두려움에 기초한 일체감이 아니라 상처도 있고 아픔도 있는 현실적인 일체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죄의식을 통제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된다.
자신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그 힘을 오해하게 되어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너무 크게 혹은 너무 작게 행동하면서 거짓힘을 사용한다. 이러한 경우 어떤 상황에서 억누르기로 시작해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폭발하고 결국엔 후회에 이르는 파괴적 순환에 빠지게 될 우려가 크다. 이렇게 스스로가 가진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숨겨진 패배감 때문이다. 이 패배감을 다루는 것은 실패에 대한 건강한 시각에서 시작된다. 실패는 삶의 한 부분임을 깊이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핵심이 되는 것은 균형이다. 힘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 동시에 정당한 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인생에선 실패와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균형잡힌 태도로 남을 대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매 순간에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와 같은 상황이 찾아왔을 때 어떠한 태도와 관점을 유지하며 대처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예전에 공부했던 교과서를 펼쳐볼 때가 종종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의 살아감에 있어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된 다섯 가지 심리적 요소들은 삶의 기본을 다루는 교과서와도 같은 것들이다. 살아가며 만나는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는 점검 시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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