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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재미없는 모든 중년 남자들에게

초원위의양 2016. 3. 16. 22:01

남자의 물건 

김정운 | 21세기북스 | 2012-02-07


 나는 이 책을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년 남자들에게 부시시한 파마 머리를 한 말 많은 한 남자가 풀어내는 발랄한 편지라 말하고 싶다. 저자인 김정운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답답하게 정체된 듯 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한국 남자들의 불안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불안함의 원인은 자신들의 존재가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존재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확실한 적을 만듦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자신의 존재 확인 방법이 한국 사회의 남자들에게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 진단이 거대한 정치 경제적 구조 문제 때문이라고 하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또 다른 존재 확인 방법은 '이야기'다. 한국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군대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김정운 교수는 이러한 이야기 말고 무엇인가 특화된 풍요로운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이러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적 지위가 서서히 사라지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줄 무엇인가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남자들의 불안은 더 심화된다고 진단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야 아직 그러한 나이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곁에서 은퇴한 혹은 은퇴를 바라보는 선배들을 보고 있자면 대부분 그들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도대체 이들은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일런지 정말 걱정스럽다. 저자는 이런 남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번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즉, 이야기가 담겨진 남자들의 물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는 거다.


  김정운이 선택한 10명의 사람들은 이어령, 신영복, 안성기, 차범근, 조영남,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김문수, 문재인이다. 김 교수는 이들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쉽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그들의 물건을 매개로 인터뷰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저자가 전해 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열 사람 모두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고 '아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하고 다시보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 말했던 존재 확인과 이 선정된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물론 이 유명한 남자들도 나름대로의 불안을 겪으며 살아왔겠지만 어찌되었든 이들은 유명인사들이고 성공한 사람들 아닐까? 이들의 삶에서 자신들의 존재확인을 위한 물건들이 혹은 그 이야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과는 그리 큰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 열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는 그냥 일반 잡지들이나 매체들을 통해 나올 수 있는 단순한 인터뷰 기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저자와 약간의 친분이나 안면이 있다면 그게 좀 특별하다고나 할까? 이 책을 돈주고 사서 읽었으면 많이 아까울뻔 했다.


  차라리 열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에 앞서 김정운 교수가 남자들, 구체적으로는 중년 남성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질 수 있는 설레임, 터치에 숨겨진 심리, 밀려가며 살아온 남성들의 삶,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움이라는 감정, 마음을 정기적으로 들여다봄에 대해, 불안에 대한 자세 등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가는 김 교수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괜시리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랍시고 유명인들을 인터뷰해서 아까운 책 분량을 날려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자신이 잘 하는 심리 분야에서 좀 더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상세히 풀어놔주었으면 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이런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나에게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말이 없고, 이야기할 거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살다보니 아내로부터 '당신 참 말 많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묵하고 가끔씩 한 마디씩 던지는 남자가 멋있는 남자라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꾸미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나가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야기가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기에 이야기가 따라오는 것이다. 이야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지. 이런 측면에서 김정운이라는 사람은 열 명의 유명인들에게 자신들의 존재의 일부를 말해주는 약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불안은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감히 결론내리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들의 존재를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 이를 통해 그들의 존재가 확인되고 불안이 가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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