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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중년 수업: 나이에 지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 본문
세상 모든 이들은 늙는다. 나도 역시 늙어가고 있다. 아직은 젊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도 머지 않은 미래에 이 울타리에서 생겨나게 될 것이리라. 아니, 마음은 그 울타리에 계속 있으려하고 실제로 있을수도 있겠지만 몸은 진실로 젊음이라는 것에 속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음이라는 말 혹은 그 시절이 나에게 선사해주는 활기찬 이미지로 인해 그와 반대되는 나이듦 혹은 늙음이라는 것에 한없는 쓸쓸함을 느끼곤 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여유를 허락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왠지 모르게 점점 퇴물이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더 큰 것 같다. 특히 매일 같이 내 옆을 스쳐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르기도 한다. 노인이 되어 가면서 살아가는 의미 혹은 즐거움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중년 수업이라는 책은 어찌보면 암울에 가까운 이런 나의 노년에 대한 생각에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진짜 재미 있는 인생은 중년이후 혹은 은퇴후에 시작된다고 쓰고 있다. 처음엔 저자도 늙었으니 노인이 된 저자가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려고 쓴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노년의 삶에 대해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게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음을 알게되었다. 문장이 아주 간결하고 길이도 짧아 아주 가볍고도 편안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서문에서부터 중년 혹은 더 나아가 노년에 대한 기대감을 갖도록 하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앞으로 당신은 지금껏 맛보지 못한 알짜배기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당신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얼마나 가슴벅찬 말들인가! 목차에 있는 소제목들 하나하나가 왠지 모를 기대감에 차게 만든다. 책의 목차를 보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여섯 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겠다. 중년 혹은 그 이상의 노년의 삶에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가져볼 여섯 단어는 바로 나이, 멋, 걱정, 혼자, 지금, 집착이다.
나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1년이란 시간 동안 경험한 모든 것을 하나의 숫자로 축약해 놓은 압축파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안에는 사랑과 증오, 성공과 실패, 즐거움과 슬픔, 환희와 고통, 모든 인간사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안에는 시간이 허락해 준 지혜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나이일진대 이상하게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그리 기분좋은 일은 아닌 듯하고 즐겁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 나이듦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나이 듦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들에 주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창 잘 나갈때의 자신의 모습, 지위를 잃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앞으로 펼쳐지게 될 자유로운 시간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에 대한 관점을 달리해 보자.
멋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나이를 잊게 해 주는 무엇이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꽤나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멋은 젊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발현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름 준수한 외모와 나름 잘 갖춰진 몸의 근육들, 그리고 그로 인해 나름 잘 어울리게 되는 옷들. 이러한 것들이 내가 멋이라 생각하는 것들인 듯 하니 나이가 들어 외양적 젊음이 사라지게 되면 나는 나를 멋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생각했던 멋은 저자가 말하는 멋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멋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이가 멋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멋이 나이를 잊게 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나이는 중년, 노년일지라도 세월이 허락한 풍미가 흘러나오는 멋을 지니고 있다면 나이는 금새 잊혀질 것 같다. 방송매체에 나오는 배우들만 봐도 나이듦이 허락하는 멋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은퇴후 가장 걱정이 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역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돈이 아닐까 싶다. 돈이 넉넉치 않으면 분명 은퇴 후의 삶은 비참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금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그 또한 비참한 일이라 생각한다. 실제적으로는 은퇴 후 자금에 대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계산은 해 두는 편이 걱정을 덜어내면서도 은퇴 후 삶의 어려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들 중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바로 혼자됨에 익숙해지라는 제안이다. 난 기본적으로 혼자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혼자됨이라는 것은 고독 혹은 외로움과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독립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한 평생을 함께 해 왔던 아내 혹은 남편과는 별개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년으로 갈수록 부부간의 거리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는 아직 나이 어린 나에게도 인상이 깊게 다가온다. 관계에서의 거리란 아주 가까운 부부에게서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 전체에 걸쳐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관계의 핵심이 아닐까?
아마도 지금을 제대로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에는 특히나 미래를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시도때도 없이 방송되는 광고들을 통해 거의 무의식적인 압박을 받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미래라고 하는 아직 내 것이 아닌 시간을 위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을 저당잡히며 살아가는 인생이 우리네 현대인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연습을 해 보자. 아마도 인생이 조금은 더 윤기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착을 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저자가 말하는 것 중 내가 종종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몸에 대한 생각이다. 난 어쩌면 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젊은 몸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체중을 재가며 몸에 조금 살이 붙었다 싶으면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운동을 과하게 하기도 하면서 몸을 관리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을 써가는 시간 말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몸의 변화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시원하게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집착을 버리는 지름길이란 생각이 든다. 몸에 더해 노년이 되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 싶다. 죽음이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은 집착에서 해방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짧은 호흡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의외로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을 상당히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요즘처럼 노화에 대한 강박적 압력을 받고 있는 우리네 세대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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