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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을 바친 저녁만찬에 담긴 감동

초원위의양 2016. 3. 16. 21:01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 문학동네 | 2011-04-17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작가의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인 것 같다.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써 내려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 책은 이자크 디네센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금욕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교도 노자매와 프랑스의 실력있는 요리사 베베트의 이야기(바베트의 만찬), 연극의 여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던 여배우의 이야기(폭풍우), 천사를 사랑한 아랍 학자의 이야기(불멸의 이야기),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사실로 만들고자 했던 늙은 부자의 이야기(진주조개잡이), 행복한 신혼 부부의 이야기(반지)가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이들 이야기 중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길지 않은 이야기는 이자크 디네센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금욕적 삶을 지속해왔던 노 자매 마르티네와 필리파에게는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한 때의 추억일뿐이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그녀들은 노인이 되어 있다. 이자크 디네센은 이 금욕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 자매의 젊은 시절을 짧게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자매는 젊은 시절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들의 한적한 마을을 거쳐갔던 인상적인 남성 둘이 있었다. 한 명은 마르티네에게 반하지만 결국 그의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갔던 젊은 장교이고, 또 한 명은 필리파의 아름다운 노래에 반했던 프랑스의 유명 가수였다. 필리파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유명 가수와의 인연은 이 두 자매에게 새로운 인연을 선물한다. 유명 가수는 십여 년이 지난 후 프랑스에서 요리사로 있었던 바베트라는 여인을 이 자매들에게 보내게 된다. 바베트라는 여인은 참으로 헌신적으로 이 자매를 섬긴다. 두 자매가 살아왔던 삶의 규칙들을 존중하고 따라주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금새 이들의 삶에 잘 적응하게 된다. 그렇게 12년을 두 자매와 바베트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바베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복권이 1만 프랑에 당첨된 것이다. 두 자매는 바베트가 자신들을 떠나도 뭐라 할 말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베트는 이 두 자매와 그녀들의 작은 마을의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며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 이 부탁을 자매는 수락하여 바베트는 기쁘게 자신이 가진 실력을 다하여 저녁 만찬을 준비하게 된다. 바베트는 정통 프랑스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식재료 구입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바베트가 준비하는 식재료들은 이 두 자매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것들도 있었다. 특히 거북이가 그러했다. 두 자매는 바베트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는 것인지 걱정만 쌓인다. 시간이 얼추 지나자 바베트는 자신이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을 자매의 마을 사람들 몇몇과 옛 추억을 간직한 손님들이 초대된 자리에 펼쳐놓는다. 음식을 맛보는 내내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참으로 황홀해 하며 도저히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감동 속에서 식사를 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과거 쌓였던 앙금도 자연스레 풀리기도 한다. 이 만찬은 진정 화해와 감동의 시간을 제공했다. 조금은 경직되고 딱딱했던 두 자매와 그 이웃들은 이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 무언가 플리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식사를 마치고 바베트는 이 식사에 들어간 비용을 밝힌다. 자신이 가진 1만 프랑(복권 당첨금) 전부를 써서 이 한 끼의 저녁 만찬을 준비했던 것이다. 아 이럴수가. 무엇이 바베트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12년 동안 함께 하면서 서로를 더욱 깊이 알아갔던 교감 때문이었을까? 두 자매는 바베트의 또 다른 큰 헌신에 깊이 감동하며 앞으로 함께할 시간들을 더 기대하게 되었으리라.

 

  이자크 디네센은 진한 여운이 남도록 하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 생각한다. 글을 읽으면서 음식의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바베트의 만찬뿐만 아니라 이외의 다른 이야기들도 마치 내가 그 소설 속에 있는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참으로 매력적인 작가이다. 이 작가의 더 많은 글들이 한국에도 소개되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