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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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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초원위의양 2016. 3. 16. 20:38

악의문제와하나님의정의 

톰라이트 |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 2008-06-20


  사기, 절도, 살인, 성범죄, 테러, 전쟁 등과 같이 근래에 자주 접하게 되는 범죄 행위들을 통해 '악'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악, 특히 인간의 악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며,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일까? 톰 라이트의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악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과거에 악의 문제는 주로 철학적 사유를 통해 다뤄져왔다.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하는 믿음은 악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특징지었다. (1) 우리는 악이 우리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면 악을 무시한다. (2) 우리는 악이 정면에 등장할 때 깜짝 놀란다. (3)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숙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악에 반응한다. 세계 특정 지역들에 치우쳐 발생하고 있는 테러, 빈곤 등의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지만 이를 생각보다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가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우리 가까이에서 발생하게 되면 우리는 아주 깜짝 놀라 충격을 받고 당황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악에 대해 미숙하게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성문제의 경우 성매매 등의 행위는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아동 성도착 등의 문제에는 무척 분노한다. 악에 대한 미숙한 반응을 좀 더 가까이서 살피려면 나의 삶이나 상황에서 내가 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문해 보며 된다. 우리는 대개 남을 탓하면서 악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거나 악을 자신에게 투사하여 모든 일에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반응은 둘 다 올바른 반응은 아니다. 또 한 가지 반응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고정된 정체성이 없고 따라서 고정된 책임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악에 대해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은

  (1) 우리의 민주주의가 완전한 제도라는 인식의 결함을 인식하는 것 

  (2) 인간의 악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함을 인식하는 것 

  (3) 선과 악의 경계를 나누는 선은 우리 각 사람을 관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사상가들과 사회비평가들이 제시해 놓은 악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어떻게 통합할 것이며, 기독교적 비평을 제시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성숙한 방식으로 다루며, 그 가운데 창조자 구속자 하나님에 대한 더 ?고 현명한 신앙에 이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악은 반드시 철저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후 인류와 피조세계를 향해 복을 주시려는 본래 목적을 이룰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선언 하시고 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 자신이 큰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일이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의 반역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창세기 6,7장의 인간의 악함과 홍수, 창세기 11장의 인간의 교만,바벨탑, 그리고 언어의 혼잡에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창세기12장에서 아브라함의 부름으로 대응하셨다. 이사야 40-55장은 하나님이 정말 도덕적으로 전체 세계를 통치하시는가라는 문제의 초점을 더 세부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이곳은 여호와가 아직도 주권적인 창조주이시며 아직도 이스라엘과 언약관계 안에 계시며 무엇보다도 의로우시다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단순히 정상 상태를 벗어난 세상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애초에 만드셨던 생명과 가능성이 넘치는 피조세계를 영광스러운 완성과 결실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이 일을 하시는가? 한 종의 이미지를 한 이가 나타난다. 왕같은 인물이나 왕과는 다른 인물. 그는 이스라엘, 인격화된 이스라엘이다. 이 종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짊어짐으로써 이스라엘이 포로됨에서 풀려날 것이고 인류는 마침내 이사야 55장이 예언하는 새창조를 향해 나가게 된다.


  악의 문제애 대한 구약성경의 접근
(1) 악의 인격화된 힘인 사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악의 기원 자체는 신비로 남아 있다. 악이 등장할 때마다 사탄은 엄격한 제약 속에 갇혀 있다.
(2) 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에스겔14:14은 노아와 다니엘 욥을 이제껏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들로 꼽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완전하지는 않았다. 아브라함, 다윗도 죄를 저질렀다.
(3) 사람들이 행하는 악은 피조물의 노예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창조주에 대한 인간이 반역한 사건들의 영향은 물결처럼 퍼져 나가 피조세계 자체를 망가뜨려 놓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바로 잡으면 세상이 바로잡히게 된다.
(4) 구약성경은 절대로 철학자들이 원하는 그런 종류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설명되는 정적인 세계 질서의 그림을 제시하려하지 않는다. 많은 회의주의자는 종교인들이 하나님은 커다란 기계의 관리 책임자로서 그 기계가 잘 작동하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식의 단순한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짓고 있으나 성경의 어떤 부분에서도 그렇게 단순한 모습으로 쪼그라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모습 그대로 그들을 통해 일하시기로 하셨다.

 

(1) 복음서들은 교만이 극에 달한 세상의 정치적 권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2) 복음서들은 이스라엘 자체의 부패에 대해 이야기한다.
(3) 복음서들은 인간의 수준을 초월하는 더 깊고 어두운 힘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4) 예수님 이야기 속에서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각 지도자들의 실패한 모습들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5) 복음서의 이야기들은 악의 순환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중요한 정치적 악으로서 세상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치러오고 있는 권력투쟁의 결과이고, 인간과 사회의 구조 배후에서 고소하는 어둠의 힘들, 창조 자체를 악하다고 고소하면서 창조주가 구속하시고자 하는 피조세계를 파괴하려고 계속 시도하는 힘들의 결과이다. 

  복음서의 주제들
(1)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향하여 세상의 빛이 되라는 자신의 부름을 따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와 자비를 그들의 삶속에 구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경고하셨다.
(2)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소명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시고 고통과 부정함과 질병과 어리석음과 반역과 죄악을 짊어지셨다.
(3) 예수님은 정치적 영역과 신학적 영역에서 이스라엘의 실패와 죄의 직접적인 결과들을 떠안으셨다.

  악의 정복에 대한 초기그리스도인들의 관점
(1)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죄에 대해 유죄를 선언하셨고 형벌을 선고하시고 집행하셨다. 악에대한 철저한 거부가 나타났다.
(2) 신약 저자들은 악이 최악의 일을 저지른 후에 소진되어 가는 표지들을 다양하게 보고한다.
  이것에 대한 결과는 예수님의 부활이다. 이는 옛 창조에 속한 악 위에 떨어진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 오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행위이다.

 

  악이 없어진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이원론(악한 축과 선한 축으로 보는 관점)또는 진보주의(세상은 점점 나아질 것이다)적 관점을 취하곤 하지만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주목해야 한다. 이곳은 아름다움과 치유가 있는 공동체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미래 새계엔 죽음이 없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실재하는 물리적 세계일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전까지 우리가 따라야 하는 실천들
(1) 기도: 지금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는 성령의 새로운 삶은 물러나 앉아서 느슨하고 태평스러운 사적인 영성으로 영적 위안을 즐기는 삶이 아니라 기도의 신비 속에서 끊임없는 싸움이 진행되는 삶이다.
(2) 거룩함: 인간의 삶을 손상하는 것, 특히 분노와 적대감과 성적인 부도덕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3) 정치와 제국: 하나님이 인간 권세자들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롭고 자비로운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악을 견제하게 하시려는 의도였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권위가 되었든 지배 권위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 권위가 하나님이 주신 과업을 깨닫고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4) 형법체계: 전체 공동체가 함께 악이 무엇인지를 밝혀 이름 붙이며 그 악을 올바로 다루도록 노력하게 한다. 이 방법은 범죄자를 주위의 당황한 눈길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와 피해자를 가족들과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으고 벌어진 일을 공개적으로 았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함께 나아갈 길을 찾고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것이다.
(5) 국제관계 속 분쟁들: 합법적 권위개념을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 권위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주권아래 있음) 국제 관계 영역까지 확장해야 한다.

 

  미로슬라브 볼프에 따르면 악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직면해야 하고 그 후 나에게 깊은 아픔과 상처를 입힌 사람을 껴안는 포용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배제가 뒤따른다. 용서는 포용이 아니다. 용서는 또한 개인적 혹은 도덕적 무관심과도 다르다. 용서는 결코 악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악을 이중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다. 먼저 용서는 단호한 태도로 악에 이름을 붙이고 악을 치욕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 없이는 용서할 일 자체가 없다. 그 다음으로 용서는 똑같이 단호한 태도로 악이 처리된 후에 죄를 범한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재개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용서는 우리가 이후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악으로 하여금 결정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채무, 형사적 정의와 형벌, 전쟁과 국제 분쟁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힘들지만 다양한 측면으로 용서를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각각의 영역에는 악에 이름을 붙이고 악에 저항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고 동시에 용서와 화해와 보상과 회복을 추구하며 일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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