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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초원위의양 2016.03.13 23:49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스캇펙 | 비전과리더십 | 2007-08-30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목적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주의할 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악이라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상태인지 밝힘으로써 독자들에게 악의 문제에 대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 쓰여졌다. 악 또는 악함이란 단어를 보면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는가? 나의 경우엔 피하고 싶은, 분노, 파괴적인 등의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스캇 펙은 인간의 악함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해석하고 있는지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는 강박증에 대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어찌보면 뒤에서 다뤄지는 다른 예들보다 쉽게 치료되는 듯해 보이지만 그 치료의 과정이 2년 여가 걸렸다는 것을 보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제대로 다뤄져 본 적이 없는 악의 심리학이라는 측면을 깊이 고려하고 있는데,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악을 생명을 거스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러한 관점에서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악을 있는 그대로, 그 무시무시한 실체 그대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악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든 실제 사례는 너무나도 끔찍하여 정말 이런 일이,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자녀를 둔 부모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경우 문제의 진짜 원인은 자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 가정, 학교, 사회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 인간의 악과 죄의 문제를 논의하면서 인간 악의 가장 본질적인 심리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나르시시즘임을 언급한다. 과연 나르시시즘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저자 자신도 대답할 수 없는 듯 하다. 단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악한 사람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특유의 나르시시즘은 특별히 의지에 타격을 주는 나르시시즘인 것 같다는 것이다. 악함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명확하게 이것이 뿌리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태이다.

 

  무의식 중에 악해져 버리는 사람들도 있을까? 악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한 후 저자는 일상적인 삶에 묻혀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는 악을 살펴 본다. 일상에 묻혀 있는 악이 얼마나 미묘한 것이며 교활함을 갖추게 될 수 있는지를 섬뜩한 부모의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도저히 쉽게 분간해 낼 수 없는 인간의 행동들, 이것을 악이라 규정할 수 있을지 애매모호한 경우를 소개하고 있는데, 나 역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점차 안개가 걷히면서 앞이 보이는 것처럼 악의 실재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후 저자는 악의 실체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하도록 하는 논의를 이어간다. 자신의 환자 중 완전히 실패한 사례를 통해 악에 대한 어떤 이해에 도달하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환자에게서 악의 실체를 느끼게 되면서 3년이 넘는 기간을 치료하면서도 그 환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이 적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싶었을런지도 모른다. 저자가 치료에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것이 악인가라는 진단을 내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론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필요하겠고, 쉽게 결론에 이르러서도 안 되지만 초기의 혼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롭기도 하지만 거북해질 수 있는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다. 흔히 입에 담기도 꺼려지는 귀신들림, 마귀, 축사 등의 단어가 나오면서 악에 대한 논의가 계속된다. 귀신 들림의 실체와 그 치료 사례들이 소개 되고 있는데, 굉장히 낯설고 꺼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에서나 접할 법한 이야기들이 실제 사례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귀신들림과 축사에 대해서 과학적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연구에는 늘 저항이 있기 마련이지만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사탄의 존재와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지적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학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집단 악의 문제는 나에게 가장 흥미를 끄는 주제였다.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 그리고 그 집단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더 큰 집단에서 나타나는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다음의 아주 인상깊은 문장으로 이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인간 악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리와 그들을 뚜렷하게 분리할 수 있을지 회의가 찾아온다. 어쩌면 우리가 연구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본성일지도 모르는 까닭에서다" 악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방해가 되는 두려움이 바로 이런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단은 전문화되어 있어 악이 발현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집단에서는 집단이 전문화 될수록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은 도덕적 책임을 집단의 다른 부분에 전가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쉬어진다. 저자는 대학살을 은폐한 사례를 통해 거대한 집단 차원의 거짓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은폐의 첫 동기는 두려움이고, 또 하나의 가능성은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만성 스트레스의 문제이다. 만성 스트레스는 퇴행과 감정의 마비를 야기하는 방어기제를 발동시킬 수 있다. 스트레스는 말하자면 선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 상태가 지속되면 악해지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 같다. 또한 스트레스는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게으름이 만연하도록 한다. 집단에서의 나르시시즘 또한 악을 행하는 집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실패한 집단의 경우가 가장 악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전문 집단은 어쩔 수 없이 자기 강화적인 집단 특성을 띄고, 더 나르시시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문 집단은 융통성, 희생양 찾기, 책임의식에 대한 무감각과 같은 문제에 빠질 수 있다. 전문 집단의 잠재적 위험을 인식해야 하고 그것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베트남 전 당시의 전문집단으로서 군대를 예로 들어 집단 악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간다. 전시 상태는 군인들에게 심리적 만족뿐만 아니라 경제적 보상을 허락할 수 있다. 즉 군인들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일 수 있다. 인간은 체질 상 자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갈구하도록 되어 있다. 그 당시 미군은 베트남에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이는 학살이라는 악의 형태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더 큰 집단인 1968년의 미국사회로 논의를 확대한다. 미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이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를 제시하면서 거대한 사회 전체가 악을 행하는 것에 무감각적으로 동의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베트남에서 미군은 현실감을 상실하였는데, 이것은 게으름과 나르시시즘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거대한 집단에서 구성원 전체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악한 일임을 모르는 무지와 배움에 대한 게으름, 그리고 오만에 있다.

 

  어떻게 하면 집단 악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지적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의 극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개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이 된다. 개인들에게 악의 본질과 예방 원리를 가르쳐야 하고 자신의 도덕적 판단권을 지도자에게 더 넘기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 없는 성찰과 자신의 정화가 필요하다. 이는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개인이 속하고 있는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집단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악함이 얼마나 많은가! 작게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개인 및 소기업으로부터 크게는 협력업체들에게 부담을 강요하고 착취하는 대기업, 인권을 무시하고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쥐고 주무를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악을 행하고 있는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아주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적용이 되는 원인이라 생각된다. 이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집단 악의 문제를 해결 혹은 예방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책임을 지도자에게서 되찾아 오는 것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이 왜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악을 연구하지 못하는 원인은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도덕적 판단의 위험 때문이기도 하다. 악은 하나의 도덕적 판단이기도 해야하고 과학적 판단이기도 해야 한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저자는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는 판단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것이 치료를 위함이라면 괜찮지만 자기의 자존심 때문이라면 판단은 없어야 한다. 또한 과학의 권위 아래 도덕적 판단을 묻어 두는 것은 위험하다. 과학에도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권위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까지는 각자가 다 과학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끝으로 저자는 모호해 보일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악이란 사랑에 의해서만 정복될 수 있다' '사랑의 길이란 반대되는 것들에 대한 역동적 균형의 길이며,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고통스러우면서도 창조적인 긴장의 길이고, 극단적이면서도 더 빠지기 쉬운 행동 노선들 사이의 쉽지 않은 줄타기 곡예 길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랑의 첫번째 작업이 자기 정화라는 것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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