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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본문
지난 해 가을에 장하준 교수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해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책이 영어로 되어 있어서 번역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는데, 그의 유명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많은 책이 팔려나갔다. 사람들이 장하준의 이야기를 이 정도로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장하준은 역시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인 듯 하다. 서두가 길어진다.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장하준은 그의 전작들에서 다루었던 자유시장의 문제를 이번 책에서 더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기에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들은 기존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것들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장하준이 이야기 한 23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겠다.
1. 자유 시장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2. 기업의 경영 목표가 주주가치 극대화의 원칙을 따라서는 안된다. 주주가치 극대화가 결국엔 기업에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3.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생산성 차이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확률이 크다.
4. 그 당시의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인터넷으로 인한 혁신보다 세탁기와 같은 덜 혁신적으로 보이는 기술이 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5. 인간의 다양한 본성 중 이기심만을 가지고 출발했던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기본 가정이 잘못되었기에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6. 이전까지는 인플레이션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다 보니 완전고용이나 경제 성장 같은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7. 현재의 부자 나라들이 부자가 된 것은 자유시장 정책을 써서가 아니라 보호무역 주의로 인해 부유해진 것이다.
8. 초국적 자본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자본에도 국적이 있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본국에 주요 거점을 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 우리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둘 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탈산업화에 대한 환상을 걷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불평등이 매우 심한 나라이다. 미국의 높은 생활 수준은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11. 아프리카의 발전을 막았던 것은 자원, 환경, 민족성 등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처리할 만한 기술적, 제도적, 조직적 기술의 미확보였다.
12.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을 막기 위해 무능한 정부를 외치지만 정부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13.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 구조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 구조로 바꿔가는 것이 경제 성장을 위해 더 합리적인 것이다.
14.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가 터무니 없이 높다. 이러한 일방적 보수체계는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준다.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16.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누군가 나서서 조정하지 않아도 시장은 조화를 이룬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시장의 실패가 만연하고 있고 그로 인한 파급효과가 너무 크기에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17.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18. 민간 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업에 이익이 되면 국가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착각이다. 적절한 규제 없는 기업 활동은 그 나라에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구조 안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각 기업의 내부 계획과 정부의 다양한 계획들을 합쳐 놓은 고도의 계획 경제 하에 있다.
20.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21. 잘 설계된 복지정책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더 개방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
22. 금융 위기의 사례에서 깨달았듯이 금융 부문에는 적절한 규제를 통해 속도조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융 부문과 실물 경제가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야 한다.
23.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학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학 접근을 시도하고 그것을 통합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유시장에 대한 시각은 우리가 흔히 받아들여 왔던 상식과는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즉,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고 해도 된다.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고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너무 한 가지 측면만을 고려한 경제체제 속에 익숙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하준은 위의 주제들을 휘몰아치듯 이야기 한 후 책을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장하준의 이런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그의 제안들이 구체적 방법론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커다란 틀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결론에서 장하준은 세계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할 때 고려할 큰 원칙들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1) 자유 시장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 이윤 동기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적합한 제한을 둬야 한다. (2)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3) 인간이 이기심 없는 천사가 아닌 것은 맞지만, 우리는 인간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 즉, 물질적 부를 중요시하되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4) 사람들이 항상 받아 마땅한 보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기회의 평등과 더불어 적절한 결과의 평등도 보장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5)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탈산업화 지식 사회는 신화에 불과하고 제조업은 지금도 경제에 필수적이다. 기계 투자에 대한 가속 감가상각 등과 같이 세제를 바꾸고, 노동자 교육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사회간접자본 투자 같은 공공 투자 등의 정책 수단을 통해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6)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이 더 적절히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금융 거래세, 초국적 자본이동에 대한 제한, 기업 인수 합병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은 금융 산업의 속도를 늦춰서 금융이 실물 경제를 약화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도록 만드는 정책들이다. (7)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더 좋은 복지 국가, 더 나은 규제 시스템, 더 우월한 산업 정책 등이 필요하다. (8)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을 불공평할 정도로 우대해야 한다. 즉,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에 적합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공간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세계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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