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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초원위의양 2016. 4. 1. 22:14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독일의 경제학자, 철학자)


  2008년 BBC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친 철학자를 뽑는 설문을 했는데 1위는 칼 마르크스였다. 


  그는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라는 의문을 최초로 제기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 부품이 되어버린 노동자의 삶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밝혀내고 싶어 했다.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는 헤겔(1770~1831 독일의 철학자)의 변증법에 푹 빠져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 인간도 자연도 사회도 그 어떤 것도 고정 불변이 아니라 정반합의 법칙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철학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변화 발전시키는 주체가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절대 정신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이에르바하(1804~1872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의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고 이끌어간다는 유물론을 받아들였다. 헤겔의 변증법에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더해서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갖게 된다. 과연 그는 자신이 던진 의문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1843년 독일 ?른, 라인신문(급진적 반정부 신문) 편집장 시절 마르크스는 그의 기사가 검열 당하는 현실을 맞게 된다. 마르크스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으나 무신론자에겐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언론계로 눈을 돌렸다. 그 때 마르크스가 정치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듯 하다. 기자로서 진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된다. 변증법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프로이센의 검열관들이 자신의 기사를 억압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마지막 라인 신문을 낼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라인신문은 끝내 폐간되고, 마르크스는 파리로 옮겨간다.


  1844년 카페 드 라 레장스(Cafe de La Regence). 파리로 옮겨온 그는 공산주의와 엥겔스(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1895, 독일의 경제학자, 저널리스트)를 만나게 된다. 엥겔스는 사회주의의 후원자, 공산주의의 후원자였다. 그는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 원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돈을 보냈다. 


  1800년대에는 아동들도 공장에서 노동을 했다. 학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생각이 많은 부분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둘은 평생의 동지가 된다. 마르크스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생각에 갇혀 비판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얘기에 흥미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엥겔스는 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즐거운 사람이었다. 파리에서의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확인하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변화하게 된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계급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혁명을 준비한다. 


1845년 벨기에 브뤼셀

  결국 마르크스는 1945년 브뤼셀로 가서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한다. 이곳에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을 원했다. 1848년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을 밝히는 선언문을 쓰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노동자가 잃을 것이라고는 단지 자신의 사슬뿐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그 개선 방향을 찾고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변화 가능한 것들을 연구했다. 위기도 있었고 탄압도 있었다. 


  1848년은 유럽에 혁명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에 참가하였다. 마르크스는 붉은 박사라는 별명과 인류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는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되지만, 잇다라 추방령이 내려진다. 1848년 독일 쾰른 으로 옮겨 신라인 신문을 발행하지만, 신라인 신문도 폐간된다. 결국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1849년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여 삶을 이어간다. 1855년에 마르크스의 아들 에드가가 폐렴으로 사망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비난을 아내로부터 많이 받았다. 궁핍한 생활은 이후 5년 동안 계속되었고 여섯 아이 중 세 아이를 잃는다. 마르크스는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고 항상 돈 문제에 시달렸다. 이후 엥겔스 덕분에 마르크스 가족은 작은 주택으로 이사하고, 그 이후 자본론의 집필을 시작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부론을 수백번 읽었다.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국부론이었다. 1867년 필생의 역작인 자본론 제 1권이 출간된다. 자본론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경제에 적용하여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이다. 


자본론


  자본론에서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상품이다. 상품은 인간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말한다. 쓸모가 있는지를 따지는 상품가치, 교환할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교환가치, 둘 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상품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평균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정의하였다. 즉 6시간 동안 6켤레의 신말을 만든다면 신발의 가치는 1노동시간이라는 것이다. 또 화폐를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봤다. 결국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화폐 물신성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아담스미스와 데이비스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이어받아서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전제하였지만, 아담 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자본론을 쓴 목적은 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항상 가난할까? 반대로 놀고 먹는 자본가들은 왜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가는 걸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 해답을 이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냄으로써 찾을 수 있었다. 


  자본론 1권은 자본이 어떻게 이윤을 남기는가에 대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늘이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빵공장에서 빵 한개를 만드는데 얼마의 노동시간이 드는지 계산해 보자.


밀가루 1kg을 1 노동시간이라 한다.

기계는 빵 만개를 만들면 수명이 다 한다

한 개를 만드는 데는 1 노동 시간이 든다

노동력도 1 노동시간이 든다

즉 빵 한개를 만드는 데는 3 노동시간이 든다

만약 1 노동시간을 천원이라고 하면 빵 한개는 3천원이 된다

노동자가 하루 평균 8시간을 일하면 모두 24노동시간이므로

그동안 만든 빵 여덟개의 가치는 총 24,000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기계나 원료는 그 가치가 그대로 인정되었는데 노동자에게 자본가는 일당으로 3천원밖에 안 준다. 나머지 5천원은 결국 자본가의 주머니속으로 들어간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잉여가치라 하였다. 


  그런데 왜 노동자는 싫다고 못하는가? 자본가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아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일하게 하면서 일당은 그대로 둔다. 결국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자본가들은 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만들어진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했다. 하지만 자본가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손으로 빵을 만들때 필요 노동 시간은 3시간. 하지만 기계를 들여 빵을 만들면 같은 개수의 빵을 만드는 데 1시간이면 된다. 이는 결국 필요 노동 시간은 줄어들고 잉여 노동 시간이 늘어나게 한다. 노동자의 임금은 날로 싸지고 자본가는 그만큼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생기게 된 이윤을 특별 잉여가치 또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최초로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했다. 착취현상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자본가의 이기심때문에 기계가 계속 노동을 대신하면 실업자가 증가한다고 했고, 일하려는 사람은 많아지기 때문에 임금은 더 낮아지고 이렇게 되면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으니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인 불황이 시작되고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했다. 즉,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한 과정이라 봤다. 봉건제 이후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사라지고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구조를 설명해 냈다. 


  1883년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편지를 쓴다. "나의 벗 엥겔스, 우리가 파리에서 꿈꾸었던 세계는 결국 오지 못할 것 같네. 삶의 마지막까지 통찰을 멈추지 않고 있네만 세상이 더는 날 원하지 않더군. 독불장군 같은 나를 변함없이 지지해줘서 고맙네. 이제 나에게 남은 열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싶네."


  1883년 3월 13일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가장 아끼는 의자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르크스 사후 1885년 엥겔스는 그의 유본을 모아서 자본론 2권 자본의 유통과정을 출간한다. 1894년 자본론 3권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을 다룬다.


출처: EBS다큐프라임-자본주의 4 세상을 바꾼 위대한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