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한 바리스타의 커피에서 얻은 통찰 본문

경제 경영 혁신 직장 조직

한 바리스타의 커피에서 얻은 통찰

초원위의양 2016. 4. 1. 21:44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홈페이지 블로그에 글을 쓰는 Umair Haque라는 이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커피를 제공했던 한 바리스타의 행동을 통해 얻은 통찰에 대해 글을 썼다. 그는 "당신이 차기 스티브 잡스였다면..."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내용보다는 제목이 눈길 가도록 잘 붙인 것 같다. 그가 쓴 내용을 옮겨 보았다. 요즘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혹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필자가 말한 부분들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가 중점을 두어 말하는 것은 개개인에 특화된 서비스 제공, 다른 이들과의 더 긴밀한 혹은 진실된 관계 형성, 자발적인 참여 유도, 예기치 않은 시너지를 기대하는 것, 다른 문제 혹은 상황들에 더 잘 녹아들 수 있는 능력이다. 개인에게도, 기업들에게도, 혹은 다른 조직들에서도 찬찬히 고민해 볼 만한 주제들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차기 스티브 잡스라면?


by Umair Haque


  당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이야기 하나를 통해 답을 해보겠다.


  모든 작가들은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먼저 좋은 까페 하나를 찾으라. 그리고 나는 런던에 있는 작은 까페(Kaffeine, 내가 특권을 누려본 최고의 커피 공급업자)에서 내 노트북으로 다가가는 동안 작지만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며칠 후 바리스타인 James는 내가 들어와서 라떼 한잔을 주문한 후 한 시간 이상을 있을 것처럼 글을 쓰는데 커피는 다 마시지 않은 나를 봤다. 그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나는 에스프레소가 날 너무 흥분시켜서 다 마실 수는 없지만 언제나 조금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James는 전혀 망설임 없이 나에게 새 라떼를 즉시로 만들어 주었다. 내 이름을 따서 반 농담식으로 미니 플랫 화이트(flat white)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것이 하찮은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비스, 창조성, 혁신, 게임을 변화시키는, 동기부여, 리더십, 혹은 마법과도 같은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어떤 곳에서도 위와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까페 밖 어디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잠깐 동안 당신이 차기의 스티브 잡스라고 상상해 보자. 당신에게 도전 과제는 어떤 것들인가? 그것은 규모, 효율성, 단기 이익, 성장 등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어제의 문제이고 오늘날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당신 근면 성실한 매니저이든, 결정을 해야하는 경제학자이든, 유명 풋볼 선수이든, 한물 간 예술가이든,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어제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는 내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어진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과 같이 새로운 방법 혹은 원칙을 세워야만 한다.


특이성-개인 맞춤화


  규모는 해결된 문제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일과 같이 매우 큰 규모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은 규모를 크게하는 것의 반대이다. 우리는 인간의 삶에 차이를 만들어주는 규모를 작게 하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 각 사람의 인생은 모두 다 다르다. 인간의 관점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을 위해서는 동질성을 넘어서서 특이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스타벅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규격에 따라 당신의 커피를 만들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건 같은 자동차에 색깔만 다르게 입히는 것과 같다. Kaffeine에서 바리스타인 James가 나에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나라는 인간에게 작고 미묘하지만 정말 매우 다른 차이를 만들어주는 것을 아주 솜씨 좋게 즉시로 만들어 준 커피였다. 이것이 특이성이다.


사회성


  Kaffeine의 특별함을 통해 나는 약간은 특별해짐을 느낀다. 내가 그들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구혼 관습에서 좀 더 진전된 연애 단계와 닮아 있음은 확실했다. 


  이것을 생각해 보자. 처음보다 덜 영광스러워진 지금의 자본주의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불평은 좀처럼 없는 것 같다. "기다리세요. 우리는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진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아요" 당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보자. 뭔가 놀라운 것이 있는가? 당신이 집에 왔을 때 당신의 파트너 로봇이 수백만명의 다른 사람들에 관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단어로 읽고 있는 것과 같은 녹음된 이야기를 재미없게 읽어준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그것을 관계라 부르겠는가? 나는 그것을 얼빠진 멍청이, 가짜라고 부를 것 같다. 관계는 회사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좀비와 사람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이 관계라면 단지 "환영", "점검", "분석", "보상", "영감"이 아니라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요청하려 할 것이다.


자발성


  Kaffeine의 바리스타가 나에게 커피를 만들어 줄 때 뭐 딱 나만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은 수준에서 나에게 맞춰주도록 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James는 큰 보너스를 받는 것도 아니었고 회사로부터 보상이나 스톡옵션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James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성취에 대한 기쁨 혹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상과도 같은 도전에의 재미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가치 있는 고유한 어떤것을 추구할 수 있는 더 높은 수준의 보상을 추구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McStitution에서 가치 있는 팀원이 대본, 공식, 혹은 일상적인 업무처리 절차 없이 행동하는 것에 자유롭다는 생각은 당신이 Marmaduke라는 이름의 거대한 핑크색 고질라라고 생각하는 것과 거의 같다. 자 그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전세계 많은 인터넷 데이트 프로파일에서는 일정 수준의 자발성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만이아니라 틀에 박힌 형식은 한물 가거나 하품을 하게하는 대답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것 때문에 지난 달에 해어졌을지도 모른다. 자발성은 그 순간에 펼쳐지는 인간 잠재력의 발현이다. 당신이 만약 인간 잠재력에 불을 붙이고 싶다면 그것에 불?을 튀기는 것이 자발성이다.


동시발생-예기치 않은 시너지


  경영 이론의 일반적인 오해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최고의 사람들을 개싸움과 같이 서로 맞서 싸우게 하라. 그러면 경쟁의 놀라운 힘이 열정의 역사 상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해방할 것이다. 이러한 경영 스타일을 실행하는 조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 생각에 공격성에 대한 속박되지 않는 고양은 정신 이상적 사회로 가는 고속열차인 것 같다. 투자 은행의 경우를 보라.


  사실 지속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내는 조직을 구별되게 하는 것은 팀웍과 협력이다. 이러한 것들은 정말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다시 말하는 것조차 입이 아프다. 팀의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릴 때다. 그리고 칼 융이 동시 발생(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의 묘한 교차)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Kaffeine에서 나는 고객 이상의 팀원과 같은 무엇인가가 되었던 것 같다. 그 바리스타는 똑같고 형식적인 맥커피를 무미건조하게 제공하기 위해 나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약간의 카페인을 필요로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진짜 인간적인 측면에서 나에게 유익이 되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나와 함께 일했다. 나는 내 책을 끝마치기 위해 한 모금이 필요했다. 그 순간에 우리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 놀란 소비자와 무관심한 생산자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같은 팀으로서 동조되었다.


용해도(solubility)


  평범한 장면에 숨겨진 가장 큰 교훈은 명물을 만드는 것은 같은 오래 된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된 문제를 가지고 격론하는 것을 너무 자주 접한다. 수익성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수익성이 적은 것이 이사회에서 더 강도 높고 열띠게 논의 된다. 하지만 사실 수익은 더 높아진 적이 없다. 수익은 해결된 문제이다. 우리는 회사를 어떻게 하면 수익을 갖게 할 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떤 도전도 맞이하지 않은 분투하는 기업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약간의 책을 읽고, 몇몇의 멘토와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경험도 좀 하고, 일련의 평범한 교훈들을 적용해 보려고 하는 당신에게는 운명이 당신에게 미소지으며 수익성의 약속된 땅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미시적인수준에서도 거시적인 수준에서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회의를 어떻게 진행할 지 알고 있지만 많은 사무노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효과적으로 진행되는 회의는 매우 드물다. 거시적으로는 경제적 측면의 생산성을 살펴 보자. 이쪽이냐 저쪽이냐 여전히 열띤 논쟁이 일기는 하지만 수익성처럼 생산성도 어느 정도 해결된 문제이다. 더 빠르고 영민한, 아니 완전 빠른 로봇들로 인해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은 더 적어진다. 이것이 생산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적 번영에 있어서는 그리 작잘한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도 고충을 겪게 될 것이다.


  놀랍게도 James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였다. 어느 누구도 내가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완벽한 커피를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트리플 벤티와 같은 것을 만들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나만을 위한 커피를 만듦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나는 내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과제로서 수익성, 규모, 효율성, 생산성 등과 같은 오래 전 해결된 문제들을 계속해서 풀려고 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인간 조직의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미친듯이 똑같이 작동한다. 크게는 기후 변화, 화성 탐사, 세계 금융 시스템의 재설계에서부터 작게는 내게 완벽했던 커피와 같은 세계 곳곳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면밀히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에는 어렵고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받아들이자. 이러한 특성을 용해도라고 부를 수 있다. 당신은 우리 정치 정당들이 1980년대에 했었던 것과 거의 같은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 불용해성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동일한 예전의 문제에 집착하는 대신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흐릿한 미래를 단호히 살펴보면서 그것을 개척해 나가자.


  물론 나의 커피에 크림 거품을 올려 놓는 것으로 번영의 미래를 읽으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의 명물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라는 질문에는 오늘의 개척자로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어서 가서 나를 화형에 처하라. 하지만 나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비전을 가진 리더보다 소박한 바리스타가 훨씬 더 앞서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이단적 생각을 계속할 것이다. 당신은 어제의 문제들을 계속해서 푸는 것으로 내일에 다가갈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미친 짓을 기억하라. "똑 같은 것을 계속해서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


  그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자. 스티브는 펩시콜라의 CEO였던 John Sculley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당신 인생의 나머지를 설탕물을 파는 데 보내시겠소 아니면 나와 같이 세상을 바꿔보시겠소?" 바리스타 James의 이야기를 스티브 잡스의 질문으로 바꿔본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당신은 당신의 남은 일생을 똑 같은 트리플 벤티 소이 빈 라떼치노를 만들면서 보내시겠습니까? 아니면 미래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명물을 만들고 싶습니까?"


출처: http://hb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