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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장발장의 반전 인생과 그의 선택 본문
장발장의 이야기는 영화나 아이들을 위한 짧막한 이야기책을 통해서 참 많이들었다. 또 레 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과 그것을 또 영화화했던 작품을 통해서 장발장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에 훌륭한 고전으로 소개되는 책을 읽을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벨기에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다가 빅토르 위고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다. 워털루 전투, 나폴레옹, 웰링턴 등이 언급되면서 빅토르 위고라는 작가까지 소개되는 여행 기사를 보며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친숙한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자는 생각에 레 미제라블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분량은 어찌할 것인가!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도전하는 셈 치고 첫 권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를 알고 있으니 쉽게 쉽게 읽힐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과 지명 등이 생소해 몇 번씩 되돌아가 읽어봐야 했고, 빅토르 위고의 서술 방식에도 익숙해져야 했기에 생각보다 읽는 속도가 나질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위기가 몇 차례 찾아왔으나 레 미제라블을 장발장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에 위기를 넘기고 계속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는 동안에도 지명과 사람들의 이름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빅토르 위고의 표현방식에 익숙해 진 것 같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어색함과 낯설음은 첫 번째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레 미제라블 1권에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은 샤를 프랑수아 비앵브뉘 미리엘, 갓 출소한 비참한 모습의 장발장, 팡틴과 코제트, 마들렌과 자베르이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 징역형을 받고 수감도중 여러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장발장이 성당의 자비로운 사제를 만나 감화되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알고 있던 내겐 이 인물들에 관한 세세한 설명은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장발장이 왜 빵을 훔치게 되었는지, 주교는 은식기와 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지, 아름답던 여인 팡틴은 어쩌다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자베르는 어째서 그렇게 지독히도 끈질긴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읽고 나니 비로소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원저를 읽는 재미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아주 즐겁게 책을 읽었다.
미리엘 주교의 타인을 향한 섬김과 봉사, 그리고 검소하고 청빈한 모습은 교회의 목사들이 흥청망청 해 대고 범죄도 스스럼 없이 저지르는 이 시대에 무척이나 그리운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장발장이라는 출소자이지 재범자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 정도로 감화를 주었겠다 싶다. 빅토르 위고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장발장이 도둑질을 한 것이 비록 범죄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을 그토록 나락으로 떨어뜨릴 정도의 형벌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 같다. 단 한번의 작은 실수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도록 해선 안되지 않겠는가? 팡틴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개인과 사회가 공동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란 점을 강조하는 듯 하다. 현재 한국 사회가 빅토르 위고가 묘사했던 시기만큼이나 위험한 수준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이 행한 한 번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 사회구조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이며 이것을 유지하려 애쓰는 권력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이들도 이 구조적 악의 중심에 있는 것이리라.
이후 변화된 장발장은 훌륭한 아이디어로 기업을 일구고 많은 시민들의 지지 속에 시장이 된다. 이름도 과거의 장발장을 버리고 마들렌이라 불리게 된다. 충성된 경관 자베르는 마들렌의 정체에 의심을 품고 계속해서 눈여겨 본다. 어느 날 비참에 빠져가는 팡틴의 사정을 알게 된 마들렌 시장은 그녀를 돌보고 맡겨진 아이 코제트를 그녀에게 데려다 주려 노력한다. 그런데 마들렌 시장의 정체를 밝히려는 자베르의 노력이 실패하는가 싶었는데 장발장은 그로 인해 큰 고뇌에 빠진다. 마들렌이 장발장이라는 것을 확신하던 자베르의 수사는 장발장이 잡히는 사건으로 인해 종결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변화된 장발장은 자신으로 오해 받는 한 죄수의 삶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그의 재판장에 가서 진실을 밝히고 만다. 위고는 장발장의 고뇌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그 심리 묘사를 읽어가면서는 마치 내가 성공한 기업가이자 정치가인 마들렌이 된 것 마냥 너무나 괴로웠다. 아마도 내가 장발장이었다면 그 한 명의 죄인의 인생은 괴롭기는 하지만 그대로 접어두고 지금 하고 있는 훌륭한 일들을 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 같다. 도저히 지금의 선행, 의로움, 매우 많은 타인을 위한 삶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고, 그것들이 한 사람의 가치보다 크다고 합리화하며 마들렌으로 살아갔을 것 같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첫 권이 내게 준 인상은 깊다. 아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야기의 인물들의 세세한 삶과 행동, 그리고 심리 변화 등을 알게되니 그들의 입장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팡틴과 코제트의 가엾은 사정을 보게 될 때에나 장발장이 한 사람의 가치와 여러 사람을 위한 더 큰 행복 그리고 자신의 안위 사이에서 엄처나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읽을 때는 나의 가슴도 함께 일렁이는 것을 경험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사람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와 그 삶의 사정과 과거 그리고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 정도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인물이 있을 때에 조차도 그의 인생을 들여다 보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변화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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