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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게 해 주는 교과서 - 한국전쟁 본문
헬조선. 한 나라의 국민들이 자신의 나라를 부르는 데 이토록 처참한 표현을 사용하는 나라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이 나라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이지?’ 라는 물음이 끊이지 않는 요즘의 현실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나라를 지옥과 같은 상황으로 이끌어 온 사건들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한국전쟁이다. 어찌보면 한국전쟁이라는 말도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반공주의 교육체제 하에서 교육받아온 한국인들은 대체로 한국전쟁이라는 말보다는 6.25가 친근할 것이다. 이 표현은 주로 전쟁의 시작에 초점을 맞추고 그 책임이 온전히 북한에 있다는 것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는 전쟁이 시작된 국내/국외적 배경이나 원인, 그리고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었던 사건 및 전쟁의 결과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표현이다. 이 책 ‘전쟁과 사회’는 한국전쟁을 반공주의 혹은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권의 측면에서 다시 조명해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한국사회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전쟁을 현대 한국사회를 형성시킨 주된 원인으로 보고 한국전쟁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전쟁을 재해석하려고 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국가권력과 정치집단의 구조적인 무책임을 밝히고 있으며, 만성적 안보위기상황 하에서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위축과 구조화된 국가폭력, 약자 배재의 체제를 여러 사료들을 제시하며 설득력있게 서술하고 있다. 기존의 한국전쟁 연구서들과는 달리 전쟁기간 중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것이 이후 한국의 만성적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로 이어져 왔는지를 지적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한국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5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결, 냉전체제 형성기의 국제정치, 미국의 국내정치, 소련과 중국의 상호관게, 북한의 국내정치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즉 우리는 아직 한국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해 조금은 바로 알기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전제를 확실히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먼저 1950년 당시 미국과 소련 간의 힘이 대등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북한의 공격을 공산주의 진영이 자유세계를 위협했다는 주장은 선전이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두 번째로 미국은 한국전쟁을 충분히 예상했고, 전쟁 발발 직후에도 소련, 중국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냈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정치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로 한국전쟁은 식민지 시절의 굴욕적 체험과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남북한 한국인들이 갖게 된 분노와 열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민족주의에 기초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사실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던 국가들은 전쟁의 승패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음을 인정해야 한국전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김동춘 교수의 결론은 자신이 서문에서 쓴 것처럼 상식적이지만 확실하다. 즉, “한국전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한국 정치, 한국 경제, 한국 사회, 한국의 법과 사회심리, 이데올로기 등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호전적 주장이 나라 전체를 압도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요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전쟁을 통해 한국 사회 민중들은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가 몸에 배어버렸다. 전쟁 이후엔 거의 모든 정권에서 안보위기와 군사적 대립을 내부 사회 통제의 자원으로 활용한 병영국가가 되었다. 사실 오늘날 한국의 국가와 사회는 멀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체제와 미군정,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 동안 형성된 전쟁 수행의 체제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본 경험이 없이 지난 반세기를 흘려보내 버렸다.
전쟁 과정 중 피난의 경험은 권력자와 민중들 모두를 질서나 규칙 속에 살아가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추구와 목숨 보존에 여념이 없게 만들었다. 저자는 버스에 먼저 타기 위해 밀치며 다투고, 차를 앞질러 가기 위해 경적을 오란하게 울려 대며 상대방 차를 향해 상소리를 내뱉는 오늘날의 남한 사람들의 행동을 50년 전 전쟁 때 피난 가던 사람들의 행동과 비유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그 당시의 상황이 여전히 연장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열망은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헬조선, 각자도생 등의 표현은 이와 같은 전쟁 상황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60여년 전 한국전쟁 시에 국민들은 사실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2016년 현재에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국가권력의 무책임과 민중들의 살아남아야 한다는 열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전선이 남북으로 이동하면서 이루어진 점령의 정치는 억압과 감시체제를 일상화시켰다. 이 때에는 또한 사적인 갈등과 증오가 법의 집행 혹은 공권력 행사를 압도하였다. 전쟁은 적과 나라는 이분법을 강요했다. 특히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최근에 이러한 모습이 데자뷰처럼 겹쳐진다. 저자의 지적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국전쟁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깊이 통감한다. 전쟁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동족 간의 그리고 국가기관인 군대에 의해 의도되고 조직된 학살은 우리 사회에 지금까지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전쟁 시기에 이루어진 학살의 조직적 은폐와 합리화는 4.19혁명, 5.18광주민주화 운동에서와 같이 이후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들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이 없었기에 우리 사회에는 전쟁과도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체 국민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로 3년 간의 전투는 일단 종료되었으나 전쟁은 종료되지 않았다.” 이 휴전 체제는 우리 사회에 군사적, 정치적 대결체제를 일상화시켰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남북한의 민중들과, 말단 병사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생을 이어왔다. 이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전쟁기간 동안에 권력자들이 보여 줬던 무책임의 정치는 2016년 현재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사회는 멀게는 일제식민지 시절부터 가깝게는 한국전쟁 시기에 이르기까지 미완의 국가, 즉 자율성 혹은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남한의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도 자율성 부재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고 보여진다. 전쟁이 내재화되어 버린 이 사회를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사회로 바꿔갈 수 있을까?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 무척이나 두려울 수 있는 자율성의 회복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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