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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그림을 읽다 본문
가 보지 못한 곳에 대해 가지게 되는 막연한 동경. 그 막연함에 조금이나마 현실성을 더하기 위해 올 여름 짧은 기간 동안의 여행지로 선택하고 준비 중인 곳이 네덜란드와 벨기에다. 이 나라들 어디를 들러볼까 고민하며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관 산책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여행을 몇 번 다녀보면서 그림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유명하다는 미술관들을 가 보기도 했다. 각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해석된 설명을 듣기는 또 싫어서 미술관들을 둘러보면서 나만의 느낌을 가져보고자 했었다. ‘아 잘 그렸네’ 혹은 ‘이걸 작품이라고?’라는 극단적이면서도 아주 단순한 감상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미술작품과 역사 등을 공부했던 친구와 미술관에 동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들을 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미 해석된 설명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했었는데, 작품을 그린 작가와 작품이 그려지던 상황과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림이 이해도 되고 그 설명을 바탕으로 나만의 감상을 하는데도 지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림을 보면서는 혼자서 갸우뚱대며 감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그래서 이 책도 읽어보기로 했다.
책은 크게 네덜란드와 벨기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분량 면에선 네덜란드가 대부분이다. 네덜란드 미술관 네곳, 벨기에 미술관 한곳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네덜란드에 있는 미술관들 중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하고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이름 반 고흐 미술관, 고흐 작품을 반 고흐 미술관 다음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의 작품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다음 장에선 벨기에에 대해 다루었는데, 벨기에 왕립미술관만 달랑 소개되어 있어 아쉬움이 컸다. 벨기에에 그 정도로 미술관이 없나 싶기도 하고 그냥 네덜란드만 쓰기 뭐 하니 양념치듯 끼워넣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편에서는 수 세기 과거에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렘브란트,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네덜란드에선 스타인 프란스 할스, 영화로 유명세를 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베르메르 등의 작가들 작품을 관련된 이야기들과 더불어 소개해 준다. 이 시기 네덜란드 미술의 특징 중 인상적인 부분은 초상화든, 정물화든, 장르화든 무엇인가 상징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해골, 꽃 등의 소품들이 가진 상징성을 설명해 주니 이 소재들이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그것을 그려넣은 작가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어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특히 정물화의 경우가 인상 깊었다. 각 소품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나니 정물화가 그냥 단순한 정물화로만 보이지 않고 내재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대부분이 고흐에 대한 이야기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소개하고 그와 그가 그린 그림들의 변화상을 대표적인 그림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고흐의 유명한 그림들만 봐 왔던 내게 초기 고흐의 작품들은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운좋게 그리고 손쉽게 그 자리에 오른 것 같지만 고흐도 역시 습작을 그리던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고흐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그린 그림과 그의 동료 및 친구들에 관련된 스토리들이 적절히 배열되어 있어 고흐의 삶과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국립공원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작품 감상뿐만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도 함께 즐길 수가 있다고 한다.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은 원래 네덜란드 유명 귀족 장교였던 요한 마우리츠가 저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17세기에 지은 건물이라 한다.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도 작품들이지만 4세기가 지났음에도 남아 있는 건물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 이 미술관은 극 사실주의 그림에서부터 네덜란드 지역의 16~17세기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와 같이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 얀 스텐, 베르메르 등의 또 다른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 작품들 중 헨드리크 아베르캄프의 작품이 눈에 띠는데, 이 화가의 작품들에는 유쾌한 해학이 곁들어져 있다. 그의 그림을 통해 상상해 보건데 헨드리크 아베르캄프는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평소에 시끌시끌한 인물이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왕립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벨기에 부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주로 15~19세기에 활약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15세기 때 그림의 분위기는 뭔가 경직된 느낌이지만 다양한 상징들이 숨겨져 있어 마지막까지 흥미롭다. 책의 저자는 루벤스의 작품들을 짧막한 설명을 곁들여 재미있게 소개해 준다. 사실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았던 루벤스라는 인물을 수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분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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