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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스스로 노예의 삶을 선택한 한국인들에게 본문
16세기 프랑스에서 아주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청년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간절한 외침이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내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오를레앙(Orleans)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보르도 의회의 평정관으로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성취를 보였던 라 보에시는 18세 정도에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봉건적 제왕의 폭압적 통치 하에서 노예상태에 있는지도 모르고 시대를 살아냈던 민중들이 깨어나기를 바랬던 라 보에시의 외침이 민주화를 이루어냈다고 하는 현재의 한국을 살아가는 내게도 강렬한 울림이 되어 공명한다. 지금 우리 사회 역시 라 보에시가 말했던 자발적 노예상태의 인생들로 채워져 가고 있는 듯 하다.
조선 왕조 하에서 노예로 살다가 일본 제국주의의 노예로 살았던 한국인들. 노예된 삶에서 해방되는가 싶더니 또 다시 미국의 노예로, 그리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졌던 군사 독재정권의 노예로 살았던 한국인들. 스스로 민주화를 쟁취해 낸 듯 했으나 곧 이어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던 한국인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가진 탐욕이 빚어낸 극우 정권의 노예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 처해 있기에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라 보에시의 글이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들리는 것 같다. 부디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민중들이 다시금 자발적인 굴종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라 보에시가 말하는 것처럼 자유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욕망이다. 짐승들조차도 구속되고 나면 자유롭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심지어 덩치가 아주 작은 곤충들이나 벌레들에게서도 원래 주어졌던 자유로운 상태를 향한 몸부림을 관찰할 수 있다. 동물들도 그러한 것처럼 나 역시 간절히 자유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라 보에시는 지적한다. 자유를 원하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내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왜 알게 모르게 노예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 라 보에시는 굴종에의 습관 혹은 관습과 자유에 대한 무경험 혹은 망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천부적으로 주어진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고 노예상태가 되려는 습관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한다. 사실 노예가 되는 길은 두 가지이다. 완전히 겁에 질려 용기를 잃거나 철저히 실망하거나. 전자의 경우엔 동정하고 애석해 하는 것이 마땅하나 후자의 경우 민중들의 용인과 외면은 폭압적인 독재자가 성장할 수 있는 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라 보에시는 말하고 있다. 우리 민중들은 자유를 얻었던 경험을 추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간절히 갈구해야 한다. 지금의 퇴행하는 시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이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권력을 잡고 휘두르며 민중을 통치하기 원하는 독재자들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민중의 선출로 권력을 부여 받아 다스리는 자, 무력으로 나라를 차지해 통치하는 자, 권력을 상속받아 군림하는 자. 멀지 않은 북한에는 세 번째 유형이 권력의 최고 자리에 있고, 아주 가까운 남한에는 두 번째 유형인 독재자의 딸이 첫번째 유형을 취하고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다. 유형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들은 민중에게서 자유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 민중을 야생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처럼 대한다. 때로는 국민을 상속받은 노예처럼 여기기도 하며, 국가를 상속 받은 재산 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박근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 소를이 돋을 때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독재자들은 쉼없이 민중이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과거에 독재자들은 사창가, 술집, 공중 도박장, 문화, 스포츠 등을 이용하여 민중들이 예속 상태에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보다 체계적으로 민중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지배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것을 지지하는 대여섯 명의 신하가 있고, 그 아래에 또 그와 같은 조력자들이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권력으로부터 떨어지는 달콤한 부스러기를 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들의 신하가 된다. 그리고는 권력을 가진자와 결탁하여 그물망과 같은 체계를 구축한다. 일제시대,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졌던 독재의 시절에 공통적으로 이와 같은 지지 세력이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최근에는 어떠했는가? 한국 사회는 운 좋게 민주 정권 10년을 경험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이를 파고든 자본과 재물에 대한 탐욕의 지배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우리 안의 탐욕은 이명박과 그 무리들, 그리고 박근혜와 그 무리들을 키워내고 말았다. 자유보다는 권력의 마름으로 살아가려는 조력자들이 한국사회에 곰팡이처럼 급속히 퍼졌고,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들이 마치 자신들도 부자로 만들어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해 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회에 곰팡이처럼 퍼져 있는 이 권력자의 시녀들이 누리는 삶이 상당히 달콤해 보이는 것이다. 실상 그들의 모습은 권력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권력의 부스러기를 집어 먹는 사악한 이들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들이 상당히 성공한 이들처럼 비춰진다. 때문에 좀처럼 정상이라 말하기 어려운 이들이 정치권력의 상층부에서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 민중들은 자본에의 탐욕에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노예상태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노예상태를 철저하게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신하들의 실력이 탄탄하다. 한국의 민중들이 이 상태를 깨뜨리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라 보에시가 말한 것처럼 언제나 자신들을 짓누르는 멍에의 무게를 느끼고 그 무게를 떨쳐 버려야 한다고 각성한 인물들이 사람들 속에서 항상 등장하곤 했다. 번역자인 목수정 작가가 언급했듯이 밀양 송전탑 앞 할매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땅콩 회항 사건의 박창진 사무장과 같이 자유를 향한 투쟁을 벌이는 이들이 여전히 등장하기에 아직은 이 사회에 희망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스스로 택한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민중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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