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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퇴행하는 한국사회의 슬픈 자화상 본문
최근까지 일어났던 한국 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매우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저자는 자신이 관찰한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보수화되어 가고 있는 징후들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한국 사회의 경제, 사회, 미디어,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 일어 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보수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는 사회 구성원인 우리 개개인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저자가 말하는 '보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구조적인 보수화의 징후들로 예를 든 사건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구조적 보수화는 건강한 모습으로 옛것을 지키려고 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아니라 일종의 퇴행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구조적 보수화를 막아 보자든가 하는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사회가 움직여 가는 모습들을 거시적인 흐름으로 설명해 주고 나머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판단과 그에 대한 반응을 남겨두고 있다. 퇴행하는 것을 바로 잡자거나 보수화를 막을 방법을 찾아보자거나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향후 우리의 모습을 결정하게 될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수 많은 선택들이다.
경제적 측면에선 첫째로 한국사회는 극도의 불평등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이것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도 노력하면 계층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허황된 환상을 쫓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합리적 이기심을 통해 유지된다. 한국의 경제는 이 합리적 이기심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경영진에서부터 중간 관리자와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과잉 생산은 점차 한계에 이르렀고 대기업들 까지 이제 망하지 않을 생필품 사업 같은데 눈을 돌리게 된다.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이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정경유착의 시대는 지나갔으나 정경견제의 시대가 되었다. 한국은 디플레이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케아의 상륙과 그 제품 소비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퇴행하고 있다.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자들이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내 소리소문 없이 잊혀져 간다. 잠시 주목을 받기는 하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은 기업이고 권력을 가진 기관이다. 이는 우리의 사회적 인식이 성숙해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중독된 이들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모른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환상 중의 하나는 평등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그 사다리는 실재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신기루를 찾도록 하고 있다. 한국 사회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이 신기루를 쫓아 헤매고 있다.
이명박은 MBC와 YTN 등 방송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명박의 교활한 전략에 오랜 세월 쌓아왔던 언론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레기라는 말은 이제 풍자가 아니라 사실이 되어 버렸다. 무너진 MBC를 필두로 그나마 진실하려고 했던 한국 언론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주요 극우 신문사들에게는 종합편성 채널을 운영할 수 있게 해 줬다. 쓰레기만도 못한 상당수 기자들에 더해 방송도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소재들과 예능프로들만이 소비되고 있다. 이제 정작 알아야 할 권리는 행사하지 못하고 온갖 가십거리를 양산하는 연예 및 스포츠 관련 뉴스들에는 과도하게 알권리를 남용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 미디어 지형은 이렇게 급속하게 퇴행을 겪고 있다. 이들을 정상적인 궤도에 다시 올려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정치분야는 말할 것도 없이 극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이 담겨 있었던 안철수 현상은 그냥 현상으로 끝나고 마는 듯 하다. 안철수는 이제 기존 정치인 중의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운좋게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매일 빨갱이 잠바를 입고 막말도 서슴치 않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장악했다. 주위에서 저런 것들도 국회위원을 하는데 라는 한숨섞인 자조를 내뱉는 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모습은 우리 국회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물이 나게 하는 정치가 계속된다. 촛불로 대표되는 성장한 시민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정치 권력자들이 더 강력하게 사회를 통제하고 통솔하려는 행태를 낳았다. 게다가 국제정치적으로는 한국은 우리를 여전히 둘러싸고 주변 강대국들의 놀이감 같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에게는 지난 수십 년간 속국처럼 행동하며 독립된 한 국가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보수화가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점점 더 퇴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다시 정상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되돌릴 수 있을까?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고 보니 변화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나 더 망가져야 정신을 차릴까라는 외부인으로서의 시각만이 머릿속에 떠돌고 있다. 아마도 올 해 4월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판을 보면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더 망가뜨려갈 것인지 대략적으로 예상은 할 수 있게될 것 같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대표될 수 있는 대표자들을 선출해야 할 텐데 자신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열망으로 눈이 이글거리는 이들에게 자꾸 대표를 해 달라고 한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점차 성숙해 가는 시민 사회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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