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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를 소개합니다

초원위의양 2016. 3. 20. 08:29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작가
카렐 차페크
출판
모비딕
발매
2014.12.01.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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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렐 차페크는 인간의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특히 여러 가지 상황들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모습을 끌어내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그의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 중 범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많은데, 그러한 행위가 인간의 본질적인 내면을 잘 드러내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처럼 우리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지만 범죄의 실마리를 찾듯이 잘 살펴보면 그 안에서 인간의, 그리고 나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미스테리 mystery.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움 혹은 불가사의한 일 혹은 소설이나 영화의 한 범주. 삶의 자락 도처에 미스테리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것들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 버린다. 헌데 눈 내린 거리에 나 있는 발자국이 갑자기 멈춘 것을 보고 도대체 이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궁금해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경찰까지 불러 수사를 의뢰하지만 경찰은 미스테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란 대답을 얻었을 뿐이다. 세상은 미스테리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모두 밝혀낼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르는대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호기심을 가지고 해답을 찾기 위해 애써 보는 것도 좋다. 난 개인적으론 삶을 보다 다채롭게 해 줄 것 같은 후자를 선호한다.

 

  금지 표시는 힘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금지 표시가 있으면 정말 원하는 것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 조차도 그 금지 명령을 어기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어기면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지만 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종종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코끼리를 작은 말뚝 하나로 묶어둘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고, 벼룩을 투명한 유리 뚜껑을 가진 용기 안에 넣어 두었다가 뚜껑을 치워도 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벼룩과도 같은 것이다. 보행 금지 표시를 무시하고 소중한 푸른 국화를 얻은 이에게 배울 점은 금지를 깨보려는 시도와 푸른 국화에 대한 열망이다. 혹은 바보 였던 소녀처럼 질서에서 벗어나 움직여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점쟁이 같은 경우 그들이 실제로 신통한 능력이 있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출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들이 알게 모르게 내가 하는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마치 그들이 한 얘기대로 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때론 독불 장군처럼 살아보자.

 

  인간은 최후의 심판 자리에 서게 될까? 신이 이 재판의 재판장이라 생각하게 되는데 카렐 차페크의 관점은 매우 신선하다. 최후 심판의 재판장은 이생에서 재판장이었던 사람이고, 신은 재판의 증인을 맡는다. 신은 재판 받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정을 알게 되면 가슴이 아파 재판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당히 공감이 된다. 또한 사람들의 일은 사람들이 해결해야 하고, 판결도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후의 심판자는 신일 것이라 생각해왔던 내게 아주 신선한 충격이고 새로운 관점이다. 이런 부분에서 카렐 차페크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또 어떤 경우엔 사람들의 판단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때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범죄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자신은 옳은 일을 했을 뿐이라는 고집스런 범죄자가 있을 때도 있다. '마치 소를 잡는 백정이나 흙더미를 파헤치는 두더지를 심판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선 사람들이 만든 법률이나 상식적인 정의 문제를 벗어나 한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런 범죄자 앞에선 최후의 심판은 신의 몫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인간들 사이에서 정의를 거론하며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판단이 전혀 정의에 걸맞지 않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미지의 신께서 벌하여 주시기를 소망할 뿐 더 이상 그에게 죄를 묻지 못하는 무력감을 경험하게도 되는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 전반에 깃든 무력감이 이런 것 아닐까.

 

  이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는 이들에게 죄의 값을 치르게 하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에서 평화를 빼앗는 것이다. 살아가는 내내 자신들의 거짓이나 범죄 혹은 악행들이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사법 시스템 내에서 처벌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끊임 없이 그들의 본래 추악한 모습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밝혀주려고 애쓰는 기자 정신을 가진 이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 편히 잠들 수 없도록, 항상 불안 가운데 살아가면서 자신의 죄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내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날아온 총알로 인해 삶을 돌아보게 된 이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내 삶과 삶 속에서 관계를 맺어 왔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 카렐 차페크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통해 친구와의 대화에서 무심코 뱉었던 말, 단골 재단사가 폐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그와의 거래를 끊었던 사건, 부하 직원에게 호통 쳤던 일, 자신이 동료보다 더 일찍 승진하게 되었던 일, 계산서를 속인 웨이터를 신고해서 해고 당하게 했던 일 등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에게 앙심을 품을 만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내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있었던 일들이 머리를 스쳐 간다. 이렇게 나를 돌아볼 시간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