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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인간, 대한민국의 인간들을 간절히 이해하고 싶다 본문
전자도서관의 도서 목록을 내려보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 스크롤링을 멈추고 바로 클릭해 읽기 시작해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 책이다. 요즘 하루하루 이 나라에서 힘겨운 생을 이어가는 서민들을 바라보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 노래, 기사 등에 눈이 더 가게 된다.
책의 저자는 에릭 호퍼(Eric Hoffer). 내겐 낯선 이름이다. 책속에는 1902년부터~1983년까지 살았고, 미국의 사회철학자이며, 독서와 노동을 통해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좀더 검색을 해 보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자세한 이야기를 찾지는 못했다. 특징적인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려서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가 15세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다시 회복하였고, 독서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1951년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라는 책으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저자로 세계적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인물이 인간에 대해서 어떠한 말들을 남겼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본문을 열어보니 에릭 호퍼의 짧은 생각들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경구 모음집이다. 몇 가지 큰 주제말 아래에 각 경구들을 모아 놓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인간의 특징에 대해 떠오른 혹은 생각해 왔던 점들을 툭툭 내뱉어 놓은 느낌이다.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에릭 호퍼라는 철학자의 관점을 빌려 내가 바라보던 인간과 자연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의 특성에 대한 에릭의 깊은 통찰들은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사회 구성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 맹목적 믿음, 타인을 향한 악의, 비열함, 자유에 대한 왜곡된 관점, 무자비한 가슴 등이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들에게 이러한 특징만이 있다고 하면 진정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을 터인데, 인간에게는 또 다른 창조성, 자기 반성, 동정, 사교성, 다양성에 대한 인정 등의 긍정적 본성도 있기에 약간의 희망이라도 품어 보게 된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나아진 한국사회를 꿈꾸며 에릭의 생각들을 읽어내려간다.
에릭에게 인간은 창조성을 가진 존재다. 그 창조성을 에릭은 자기 반성에의 시도 혹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해-통찰-상상-개념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과정에서 무엇인가에 주춤하며 모색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인간의 창조성의 원천은 어른 속에 있는 아이의 성향이고, 그 능력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놀이터로 보고 있다. 놀이와 공상을 통해 인간은 큰 업적을 이루어 왔다는 관점을 에릭은 유지하고 있다. 창조서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는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점점 자라면서 창조성의 원천인 놀이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와 함께 우리 창조적 사고도 점점 사라져 간다.
저자가 표현한 인간의 비열함,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악마적 본성, 상대방에 대한 악의, 맹목적 믿음, 무자비함 등은 아마도 거의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으론 에릭 이전 시대에도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바라보고 확인했던 많은 사상가들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에릭 호퍼라는 사상가가 위대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한번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최근 몇 년 동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내게는 이러한 지적들이 너무나 깊게 와 닿는다.
에릭 호퍼의 표현 중에서 웃음과 오해에 대한 해석이 눈에 띤다. 에릭은 웃음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한데서 시작된 것 같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반면 동물은 악의가 없으니 웃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웃음이 타인의 불행으로 인한 쾌감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의견인데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해 또한 내게는 새로운 관점이다. 에릭에 의하면 오해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읽은 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비롯된다. 정확히 내 마음을 찝어낸 듯한 표현이어서 그런지 더욱 동감하게 된다.
일을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때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말들이 있어 관심이 간다. 인간은 필요에 쫓겨서 하는 활동보다 놀면서 하는 활동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말, 인간은 사치를 사랑하는 동물이고, 놀이와 공상을 즐긴다는 말, 고성한 목적이나 빛나는 이상보다 놀이에의 추구가 오히려 더 큰 업적을 달성한다는 말, 재능이 없는 사람은 노력도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는 말, 무엇에든 탁월한 경지에 오르려면 사람들의 내면에 인정사정 보지 않는 감독을 세워놓아야 한다는 말, 순간적 번뜩임을 붙잡고 음미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말, 빌린 것을 이용하여 이룩한 업적이 창조성 혹은 독창성의 표현이라는 말 등이 내겐 통찰을 주는 조언들이다.
한국의 문제가 많은 영역 중의 대표적인 곳이 교육 부문일 것이다. 에릭 호퍼는 단 두 문장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표현해 준다. 교육이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고, 창의적 교사는 덜 가르치면서도 학생이 좀 더 많이 배우게 하는 사람이다. 정말 옳은 말 아닌가? 우리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안들에 대해 함께 머리를 모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저자의 통찰이 눈에 들어온다. 에릭 호퍼는 ‘인간은 결코 한 부류로 묶을 수 없으며, 조건 없는 사랑도, 완전한 증오도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들을 명확하게 흑과 백으로 갈라서 판단한다.’고 말한다. 인간 사이의 이해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지만 사회는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말하고 있다. 또한, ‘억압받는 자들이 과연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을까? 이들은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권력을 갖기 위해 싸운다.’라고 인간을 본다.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이 시대 내가 속한 주변의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해 본다. 특히 마지막 문구가 가슴아프게 읽힌다. 억압받는 이들이 억압받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설사 인식하였다고 하여도 그 억업을 깨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도 억압할 존재를 찾고 있는 것 같은 한국의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에릭 호퍼가 말했듯 모두 무자비함으로 변할 수 있는 용기, 명예, 사랑, 희망, 신앙, 의무, 충성 등의 가치보다 유일한 해독제가 될 수 있는 ‘동정’이 주를 이루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보면 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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