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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론(Thomas Piketty) 읽기 - 7장 8장 9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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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론(Thomas Piketty) 읽기 - 7장 8장 9장

초원위의양 2016. 3. 20. 01:13

21세기 자본론(Thomas Piketty) 읽기 - 7,8,9장


출처 http://www.economist.com, R.A., Reading "Capital": Chapters 7,8,9, 2014. 04. 10.



  3부에서 Piketty는 불평등과 부와 소득의 집중이라는 문제의 핵심으로 나아간다. 3부의 첫 세 장에서는 소득 집중의 경향에 초첨을 맞추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잘 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그 이전의 근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노동의 과실이 노동자를 엘리트 계급으로 올려주지는 못했고 대신에 유한계급이 그 과실을 가져갔었다. 그런데 전쟁 시대에 시계를 처음으로 돌린 것과 같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재설정은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 혹은 협상력이 향상된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매우 불평등한 사회는 자본소득으로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가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임대사업자들은 Piketty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락사 당했다. 그들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부자들에 의해 추월을 당한 것이 아니다.


  Piketty는 지난 세기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소득 분배의 변화에 기여한 인자를 설명하면서 상세한 데이터들을 알아보기 위해 이 장들에서 부동산에 상당히 할애하고 있다. 프랑스 소득 분배는 전쟁기간 동안에는 크게 압박을 받았지만 전후 시기에는 분배 문제보다는 재건에 더 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불평등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향은 1960년대 후반 정치적 변화로 약화되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 다시 불평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최고 소득에 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보면 1960년대 혹은 1970년대에 불평등 수준이 바닥을 쳤다가 다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승세는 영어권 경제에서 대부분 현저하게 나타나고 미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것이고, 맹렬하게 나타나는 새로운 영역이다. 기본적으로 부유한 경제권 중에서 미국에서 독특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초반에 경험한 소득 집중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소득 불평등의 놀랄만한 증가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미국의 경험을 논의하면서 Piketty는 최근 몇 주 동안 몇몇 논란을 불러일으킨 두 가지를 언급했다. 첫 번째는 장기 침체이다. 1980년에 국민 노동 소득의 약 3분의 1이 상위 10%까지 이르렀다. 이후 30년 동안 그 비중은 15%까지 상승했다. 이것은 구매여력이 충분치 않은 이들에게 구매력이 크게 이동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적절한 수요가 차입 없이는 좀처럼 생겨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증가폭 관점에서 소득에서의 이러한 이동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상승폭보다 상당히 더 큰 것이다. Piketty는 불평등이 전세계적 불균형보다 침체에서 더 큰 요인으로 보고 있다.


  논란의 근원은 저축 초과의 결과로서 수요가 부족해지는 하나의 징후는 실질 이자율이 떨어지는 것에 있다. 비판자들은 만약 실질 이자율이 떨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Piketty가 말하는 소득대비 부의 가치가 성장률 g보다 클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석들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익률을 넘어서는 것이다. 무위험 부채에 대한 단기 실질 이자율으ㄴ 지난 십년 이상 동안 거의 0이거나 마이너스였다. 무위험 부채에 대한 장기 실질 이자율은 수십 년 동안 하락해왔고 2005년 이래로 경제의 실질 혹은 잠재 성장률보다 충분히 더 낮았다. 하지만 Piketty는 무위험 이자율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자본에 대한 수익률은 매년 부(수익, 임대료, 배당금, 로열티 등)로부터 나온 모든 수익의 합계이다. 역사적인 r은 서로 다른 수준의 위험을 감소하는 서로 다른 종류의 투자에 대한 서로 다른 수익의 합계였다. 유럽의 농업용 토지에 대한 수익은 정부 자본의 수익과 달랐고 둘 다 산업 혹은 해외 투자와 같은 더 위험이 큰 투자에 대한 수익보다는 더 낮았다. 미국 정부 부채에 누군가의 자금을 두는 것은 점처럼 지불되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유한 자들이 성장률보다 더 큰 실질 자본 소득을 짜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두 번째 논점은 미국 불평등의 근원에 대한 논란과 관련이 있다. Piketty는 장기적으로 볼 때 기술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노동 소득의 분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책은 최소 임금 문제를 다루지만 미국 상위 1%의 소득에서 보이는 특별한 성과는 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Piketty는 매우 높은 자리에서는 다른 표준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성으로 최고 경영층을 평가하기는 어렵고 그에 대한 급여도 최고경영층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호의적인 이사회나 동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미국에서 이러한 동료 그룹들은 다른 선진 경제에서는 가당치도 않게 여겨질 수 있는 수준으로 높게 결정한다.


  이것이 틀릴 수도 있지만 Piketty는 만약 미국의 현재 소득 차이가 실질적인 생산성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가장 높은 수준과 가장 낮은 수준의 생산성 분포는 남아프리카에서보다 근대 미국에서 더 크다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적인 경우라고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