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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와 탐욕 사이에 서서

초원위의양 2016. 3. 19. 21:25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작가
크레이그 블롬버그
출판
IVP
발매
2012.12.2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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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돈'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부'와 '가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부와 가난'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부와 가난'을 이야기할 때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텍스트인 성경이다. 이 책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는 재물과 소유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가르침들을 아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고 재물과 소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만 한다.

 

  기독교에는 번영의 복음이라는 왜곡된 가르침이 인기를 얻어 왔다. 이것은 사람들이 듣기에 그럴듯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고 싶기도 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특히 한국 교회는 더욱 그러했다. 사람들은 번영을 꿈꾸며 교회로 몰려들었고 교인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에 따라 교회 안에도 돈이 넘쳐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큰 번영을 누리게 되는 것을 원하신다는 잘못된 생각에 너무나 쉽게 빠져들며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렇게 교회는 부패해 왔고 그 부패의 고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요즘 비대해진 한국 교회에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한국 교회에 이 책은 너무나도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은 성경에서 재물에 대해 다루고 있는 주요 본문들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재물을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며, 어떻게 그것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충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특히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삶 속에서 소유하게 된 재물로 섬김을 실천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번영의 복음은 치워버리고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상고하며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우리가 돈을 쓰는 우선순위에 커다란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을 통해 보면 하나님은 원래 이 세계를 보기 좋게 창조하셨다. 특별히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에게 온 땅을 다스릴 권세 혹은 책임을 맡기셨다. 일(노동)도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설계해 놓으신 선한 부문이다. 또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한 약속에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이 포함되어 있다. 족장 시대의 부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특별한 땅을 주시려는 계획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요즘의 믿는 사람들은 특별히 약속받은 땅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부가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족장들은 자신의 부에 연연하지 않았음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음을 주지하자. (아브라함이 롯에게 양보, 야곱의 자족함, 요셉의 나눔 등)

 

  애굽에서 해방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독특한 양식 공급 방식을 사용하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부를 과도하게 누릴 수 없었고,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도록 하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모습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에는 재산 소유권의 인정, 재산 소유권이 절대 가치로 바뀌거나 이기심을 옹호하는 빌미가 되지 않도록 많은 안전장치가 나타나 있다. 민수기 26:52-56은 모든 가족과 지파가 그 크기에 따라 재산을 분배받아야 하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십계명에도 절도와 탐욕의 비도덕성이 강조되어 있다. 율법은 재산권을 절대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율법에는 이자 금지법, 안식할 날과 안식할 해(안식일, 안식년, 희년), 세금과 십일조와 예물,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를 말하는 법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통해 재산 소유권을 절대 가치로 여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서는 이자를 금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주된 체제가 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사항은 꿈만 같은 일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꾸어주고 갚는 일 때문에 가난한 자가 더 곤궁한 처지에 내몰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 성경에는 각 사람이 축적할 수 있는 재물의 양을 제한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안식일, 7년 마다 한 해씩 안식년, 49년이 지나면 희년 등이 있었다. 희년에 관한 규정이 상세하게 레위기에 제시되어 있지만 이것을 실제로 지켰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희년을 지켰다면 사유 재산의 절대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든 평생에 한 번은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희년이 말하는 거은 모든 재산이 결국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레위기 27:30-33은 땅에서 나는 모든 것과 모든 소와 양 가운데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한다. 민수기 18:8-32은 이 예물들을 달리 소득이 없는 레위인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레위인들은 이것의 10분의 1을 제사장에게 드린다. 심지어 종교 직무를 전담하는 자도 십일조 법을 따라야 했다. 이런 저런 십일조를 다 합쳐 1년 기준으로 그 비율을 따져보면 10분의 2.33에 이른다. 출애굽기 30:13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 약속된 땅을 차지하면 사람마다 회막 봉사에 쓸 반 세겔을 내야 한다고 명령한 것이 나온다. 이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균등하게 매겨졌다. 이것은 이 세금이 사람의 생명을 속하는 속전임을 상징한다. 곧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던 때에도 백성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모세 시대의 계명들을 보면 하나님이 핍절한 자에게 마음을 쏟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확 시 이삭 남겨두기, 이방인이나 객을 박대하지 않기, 예물과 희생을 바칠 때 각기 다른 척도를 규정,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담보로 잡지 않기, 공정함 등이 있다. 

 

  욥은 가난한 자들, 고아들, 과부들, 눈먼 자들, 발 저는 자들, 궁핍한 자들, 모르는 자들을 구해 주었다.(욥 29:12-16) 17절은 그가 단지 약한 자의 보호자에 그치지 않고 무력을 사용하여 악한 자와 맞서 싸웠음을 잘 보여준다.하나님의 백성이 엄청난 부를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를 허락하신 것은 곤궁한 처지에 있는 자들과 그 부를 나누라는 것이다. 

 

  시편, 잠언, 전도서에서는 인생이 덧없음을 늘 응시하게 하는 영원한 틀 속에서 물질 세계를 즐기라고 한다. 사람들은 내세의 삶을 늘 분명하게 응시함으로써 피조물을 경배함이 없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재물을 얻는다. 가난한 이들이 게으른 경우가 종종 있지만 세상의 구조로 인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희생자도 있다. 이것은 일반 원칙으로 받아들여야지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 같다. 의로운 부자라면 하나님과 궁핍한 자에게 인색함이 없어야 한다. 영원히 이어지는 인격과 비교하여 부가 유한하고 허망한 것이며 더 가치가 낮은 것임을 되새겨 준다. 성경이 말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부와 가난이라는 양극단을 피하라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중산층으로 비한다고 하면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잠언 30:8)"이다. 이것은 오늘날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이 갈망하는 생활수준보다 훨씬 낮은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

 

  소외된 자를 위해 의를 구하는 것, 풍부한 재물을 자랑하지 말고 그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 자신의 죄와 그 죄가 가져온 참혹한 결과에 탄식하는 것, 압제자의 평안을 구하는 것, 회복의 약속을 굳게 붙드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들이다.

 

  구약성경은 부의 축적이나 부의 결핍 둘 다 필요선 또는 필요악으로 보지 않는다. 사회의 불의를 이유로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이들에게 폭력으로 저항하라는 이야기는 한 군데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독특한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 틀 안에서 성경의 약속들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으로 규정된 물질의 복은 오늘날 철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수많은 계명이 모두 자원하여 베풀라고 명령한다. 반면 각종 공세와 십일조를 명령한 것은 지나친 부와 가난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개별교회나 국가가 소유한 재물을 바로 사용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열쇠는 그들 가운데 있는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를 얼마나 잘 보살피는가이다. 물질의 복에는 인색함이 없이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원리가 함께 따른다.

 

  예수님이 사용한 비유가 부와 가난 같은 주제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볼 때 반드시 피해야 할 중대한 위험이 두 가지 있다. 1. 어떤 비유의 의도가 경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닌데도 그 비유를 명확히 경제 문제를 다루는 담론으로 바꾸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우리가 보기에 그 이야기에서는 영적 문제가 부차적 차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절을 무엇보다 먼저 경제 문제를 다루는 구절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자리에 초대받으실 경우 이를 종종 수락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꾸짖지 않으셨다. 감춰진 보화와 값진 진주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그만한 값을 지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물질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을 다른 두 비유(눅 11:5-8, 18:1-8) 에선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기꺼이 성령을 주시고, 또 좋은 것도 주시는데 거기에는 물질도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리석은 부자(눅 12: 16-21)는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가난한 자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미처 쓰지도 못한 채 남아 돌 물건과 재산이나 자산을 쌓아 두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라면 이 비유 속의 부자와 아주 닮은 것이리라. 예수님은 이러한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은 헛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눅 16:1-13)에선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이루는 데 이 땅에 속한 재물을 사용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들에선 한 사람이 두 주인, 즉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음을 강조한다. 사람이 재물 소유에 집착하는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면서 인류 역사에서는 고통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부자와 나사로(눅16:19-31)에서 부자의 문제는 그가 가진 부가 아니라 잔심으로 회개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지옥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을 의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사로 역시 그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이 비유는 단순히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포도원 품꾼들(마 20:1-16)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은혜로 다스리시지 그 백성이 해낸 일의 양에 따른 품삯으로 다스리시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공과를 엄격히 판단하시기보다 가장 곤궁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므나와 달란트 비유(눅 19:11 -27)에서 이것은 제자의 본분을 다 해야 할 모든 영역에서 선한 종의 행위를 닮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비유를 가지고 서로 다른 양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 가르치거나 하나님은 영원히 서로 다른 등급의 보상을 내리실 것이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한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 그대로 행하는 자들이고 악한 종들은 그런 시도조차 철저히 거부한 자들이다.

 

  재물을 맡아 관리하는 영역은 어떤 이가 제자임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검증 장치 노릇을 할 때가 자주 있다. 이런 청지기 직무에는 넘쳐나는 재물을 포기하는 것, 재물 축적을 자제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재물을 나누되 저신보다 어려운 이들 특히 형제자매인 신자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 포함된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지나친 부도 지나친 가난도 허용하시지 ?았다는 것이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람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3 의 원리를 현대 교회에 진지하게 적용하면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사귐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것이기에 이 원리를 적용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예수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권면하신다. 그리하면 그들이 얻을 것이요, 찾을 것이며, 그들에게 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번영 복음은 종종 이 구절을 합당한 믿음을 가진 자는 기도로 구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특히 물질에 이를 적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 구절과 평행을 이루는 누가복음 구절은 영적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장 좋은 선물은 성령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의 시대를 살아간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물질을 구하는 기도도 들어주실 때가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7:9-11의 논리를 보더라도 더 작은 것부터 더 큰 것까지 구하는 것은 다양하다. 예수는 오직 물질로부터 영애 속한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으로 옮겨 가신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성령과 물질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실지는 하나님 마음이다.

 

  요컨대, 성경은 부의 선함, 풍부한 소산을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바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그 복을 통해 열방의 모든 백성에게 복을 베풀 수 있다. 모세 오경의 율법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재물과 관련하여 율법이 주로 말하는 것은 재산의 사용과 축적을 제한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만물을 함께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왕정이 등장하면서 만인의 자유와 만인을 위한 정의는 점차 사라져갔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의 집중이 시작되었다. 구약에서는 부는 신실함과 근면에 대한 보상이라는 주제와 사악한 부와 부정하게 얻은 소득을 경고하는 내용이 함께 들어 있다.

 

  성경은 가난을 선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교회가 그 가진 것을 더 공평하게 나누기를 강력히 원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겸손히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입장이기도 하다. 잘 사는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만 그들에게 남는 것으로 베푸는 것이요, 나아가 남는 것이 얼마인지 솔직하게 인정하라는 것뿐이다. 재물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누리도록 베푸신 좋은 선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 재물을 다른 이들과 나눴는데, 이는 모두 가난한 사람이 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구원받은 생명이라면 섬김의 영역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그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물질의 영역이다.

 

  지나친 부도 지나친 가난도 용납될 수 없다. 여기서 적정이라는 하나님의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만나이다. 이 적정의 원리는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의 간격을 좁히려는 것이다. 재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보다 영혼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만일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교회는 그들이 자신의 분깃을 늘려 가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을 향해 두신 가장 큰 뜻은 회복이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며, 온 우주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구원은 육과 영, 물질과 영혼의 차원을 포괄한다. 

 

  책의 저자는 성경의 이와 같은 가르침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제안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필요한 태도의 변화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부가 본디 선한 것이라면 그것을 얻으려고 힘써야 한다. 허나 부가 미혹하는 것이라면 넘치는 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비로움과 후함으로 베풀는 삶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과도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는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최소한 몇 명이라도 도울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베풂을 실천해야 한다.

 

  소득이 많아질수록 십일조의 비율을 올려가는 누진 십일조, 일반적인 것들에 돈을 덜 쓰는 일,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을 덜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인색함 없는 연보, 교회 예산의 재조정,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과 선교, 교회에서의 무이자 대출, 유명 신학교들의 빈곤 국가들 두뇌를 유출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고민, 정책 결정에 있어 모든 인류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 교회가 현대 문화에 대항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태도를 바꾸기(불필요한데 가지고 있는 것들 포기하기, 실제로 써야 할 곳에 예산 쓰기, 하나님께 감사하기, 어려운 그리스도인들을 기꺼이  돕기, 등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굳이 우리가 가난한 처지가 되면서까지 가난한 자들을 부자로 만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잠언 저자는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미 부유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나를 도우셔서 후하고 지혜로운 심정을 갖게 하사 저 부를 더 많이 베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