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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

초원위의양 2016. 3. 19. 21:28

꾸뻬 씨의 시간 여행

작가
프랑수아 를로르
출판
열림원
발매
2013.05.2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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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부류이고 또 한편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이 문제인 이들이다. 그러면 "과연 항상 젊은 듯,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듯 행동하며서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그것과 싸우는 게 나은 것인가? 아니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니 차라리 다른 걸 생각하는 게 더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나은가?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가?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게 더 나은가? 아니면 당장 내일이라도, 어쨌든 머지않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게 나은가?"(p.57~78)  누구나 한 번쯤은 시간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설 속 화자이면서 정신과 의사인 꾸뻬씨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고민들을 접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고민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찾아나간다. 그는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신의 환자들을 통해, 그의 꿈 속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시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그리고 시간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아가는 그의 여행을 통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얻어간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생각해 냈다. 좀 긴 목록이긴 하지만 상당히 흥미를 자아내는 제안들이다. 우리가 종종 하게 되는 시간에 대한 고민 속에서 조금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목록들이다.

 

1. 자신의 수명을 개의 마릿수로 계산해본다.

 

2. 어렸을 때 어른이 되고 싶어 하며 꿈꾸었던 일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

 

3.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본다. 잠자는 시간은 계산하지 말 것(대신, 사무실에서 자는 시간은 계산할 것)

 

4. 지금은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생각한다.(그것들은 언젠가는 과거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 때는 너무 늦으리라)

 

5. 일생이 옷감을 말아놓은 커다란 두루마리라고 상상해 본다. 우리는 이 옷감을 마름질해서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입고 다닌 모든 옷을 만들었다. 이제 아직 남은 옷감으로 어떤 옷을 만들 수 있을 지 상상해 본다.

 

6. 나를 더 젊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것을 글로 쓴다. 나를 더 늙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것을 글로 쓴다.

 

7. 신을 믿지 않는다면 신을 믿는다고 상상한다. 신을 믿는다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당신의 관점에 어던 결과가 미치는지 관찰한다.

 

8. 친구들과 내기를 하라. 시간의 정의를 발견하려고 애써보라. 1등상은 손목시계다.

 

9.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한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을 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10. 만일 당신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꿈에 불과했다면? 이 경우에 그 누군가는 어디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11. 손목시계를 감춘다. 가끔은 짐작으로 시간을 기록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 시간과 비교해 본다.

 

12.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다시 말해 그럴듯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애써 본다.

 

13. 나이든 사람을 만나거든 그 사람이 젊었을 때는 어땠을까를 늘 상상한다.

 

14. 늙어가다 보면 신의 왕국(혹은 자신이 가진 종교가 지칭하는 지명)에 좀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라. 

 

15. 암소라고 상상해 본다. 우리는 우리가 어렸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당신은 더 행복해 질 것인가? 선택하라. 암소가 되는 쪽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동물이 되는 쪽을 택할 것인가? 어떤 동물이 될 것인가?

 

16.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움직임이 없는 시간이나 시간이 없는 움직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시간, 그것은 운동의 측정도구다.

 

17.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읊은 아름다운 시들을 모은다. 그 시들을 외우고, 나보다 나이가 더 많거나 더 적은 친구들과 함께 암송한다.

 

18.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며 시간을 보내는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가? 이 두가지를 구별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19. 자신이 사랑하는, 아니, 더 젊었을 때 사랑했던 이성들의 아이를 만나본다.

 

20. 시간과 상대성이론에 관해 잘 쓰인 과학책을 읽는다. 시간을 조금만 할애하여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을 때 왜 과거 속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이해해 본다.

 

21. 늘 젊어 보이고 싶거든 항상 그늘에(혹은 촛불 불빛에)자리를 잡는다.

 

22. 당신은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23. 네 칸짜리 표를 그린 다음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써 넣는다. 자신이 할 일을 각 칸에 채워 넣는다.

 

24. 자신이 해야 될 일을 '일을 아주 잘 해내는 데 중요한 것'과 '사장에게 중요한 것', '경력에 중요한 것'으로 분류한다. 스스로 이 세 가지 각각에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는가?

 

24-1. 스스로 아이들과 배우자, 나 자신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을 분류해 본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그 결과를 보여준다.

 

25. 음악을 들으며 그것이 시간 같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자기 삶과 비교해 본다. 

 

<현재가 곧 영원이며, 그것이 전부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도록 애써본다.>

 

<무위가 아닌 초연을!>

 

  꾸뻬씨가 자신의 노트에 적었던 이 28가지의 목록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처럼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가? 아니면 반대로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가? 주어진 시간 속에서 무엇을 향해,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도무지 모르겠는가? 이러한 상황에 있다면 이 목록들은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목록은 자체 만으로도 유용하지만 이 목록이 어떠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을 읽고 보니 꾸뻬씨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게 가장 눈에 띠는 목록은 18번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며 시간을 보내는지, 한편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지,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는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물음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물음이 가장 어려운 점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과연 이 것 혹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그 시간들을 꼭 허비했다고만은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이것을 알게 되는 때가 아마도 '무위가 아닌 초연을' 경험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