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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현대인들이 가진 근본적 외로움에 대한 통찰 본문
고독 혹은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 내면에서 경험하게 되는 근본적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65년 전 스위스 출신의 정신 의학자가 쓴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도 상당 부분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인 폴 투르니에는 현대인들이 고독에 사로잡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매일 같이 우리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실상은 고독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며, 이 고독감은 비단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 예민한 사람, 신경 과민인 사람들뿐만의 증세가 아니라 지도자나 성공한 엘리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라고 쓰고 있다. 며칠 전 뉴스타파에서 다루었던 고독사(아무도 모르게 홀로 맞이하는 죽음)의 이미지들과 저자가 쓴 현대인의 고독감이 겹쳐져서 다가온다. 현대인들은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이 근본적 외로움에는 공포라는 본능적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공포가 고독과 갈등을 만들어내고 또 고독과 갈등은 공포심을 가져오게 되는 순환고리 안에 현대인들은 갇혀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 내면에 대한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한다.
이와 같이 고독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이루는 세상을 저자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진단내린다.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이 공포심의 정체를 알려주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동체 안에 있다는 소속감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정서적 고독감의 원인을 크게 네 가지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6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저자가 진단한 고독의 원인은 지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세기 과학과 철학의 영향으로 현대인들은 사회를 거대한 투쟁 혹은 경쟁의 장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저자는 늘 반대의 주장을 하는 '의회'에 비유한다. 그 당시 스위스의 의회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의회를 생각할 때에도 참으로 적당한 비유인 것 같다. 반대를 위한 반대, 자신의 편 아니면 모두 적이 되는 것 같은 모습 등 인간 군상의 가장 치열하면서도 치졸한 경쟁 사회를 축소해 놓은 곳이 의회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정신의 핵심에는 기능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것이 놓여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역할과 인격을 결합시키는 것이 인간 관계를 회복시키는 방법임을 저자는 주장한다. 기능과 인격의 분리라는 말을 읽으면서 현 정부의 인력 구성이 떠올랐다. 연일 낙마 혹은 자진사퇴하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나오는 이유가 자신의 역할과 인격을 철저히 분리해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더불어 현대인들은 사람의 생각에만 관심을 두고 그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도 저자는 고독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폴 투르니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임을 역설한다.
고독의 두 번째 원인으로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개인주의이다. 어찌 들으면 매우 식상한 단어인 것 같지만 이 식상함 속에 현대인들 사이에 지속되어 온 철학적 관념이 녹아 있다. 우리는 대개 우리 자신이 혹은 우리 삶이 온전히 독립적이라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인류라는 공동체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마치 거기에서 떨어져 나와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유기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오는 제한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인생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 주장하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는 인간 생명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며 창조주로부터 부여된 혹은 위탁된 것이라는 개념이 기초에 깔려 있다. 사회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 중의 하나는 사람들의 고집이란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저자는 인간들 사이를 갈라놓는 원인으로 탐욕, 지배욕, 편협 등으로 표현되는 소유의 정신을 들고 있다. 책이 쓰여질 당시보다 현재는 이와 같은 인간의 마음이 더욱 극단으로 치달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친듯이 소유를 갈망하며 쾌락에 탐닉하고 있다. 과연 그 추구의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예들로 지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과도한 욕망, 수입과 지출의 조화가 깨어진 가정의 사치, 돈 혹은 부에 대한 욕구 등을 들고 있으며 이러한 욕구는 돈, 취미 생활, 직업, 학문, 친구, 자녀, 자기 자신 등을 대상으로 하여 투사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변하지 않고 아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더욱 극대화 된 인간 욕구의 투사 대상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도 저자가 60여 년 전에 말한 이러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안한 인간 고독의 원인은 자기 주장, 비판, 요구, 질투 등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욕구를 부채질함으로써 인간들 스스로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평등주의적 정의를 신으로 모신 현대 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비교 의식에 이러한 관념이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실현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데 이것을 인정 혹은 이것에 익숙해질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교육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의라는 개념을 다시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정의라는 개념이 오히려 우리에게 편견을 가지게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불평과 질투 등의 정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저자가 말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저자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간 고독에 대한 진단 위에 기독교적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친교라는 처방을 내리고 있다. 다른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은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인간의 근본적 외로움을 해결할 단초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은 한 인간의 변화가 언제나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초에 깔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정의와 친교를 방해하는 나쁜 사회제도들을 보고 무관심하게 넘어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개혁적인 사람들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정상일진대 한국 사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훼손시킨 기독교 신앙의 가치가 이 책에서 폴 투르니에가 말한 가치들을 폄하시키게 될 것이 가장 안타깝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진정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동체의 형태에 일치하는 사회적 이상과 제도를 향해 나아가는 데 마땅히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에 대한 근본적 관심을 회복하고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다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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