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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훌륭한 안내서를 만나다

초원위의양 2016. 3. 17. 23:30

마음에도 길이 있다

작가
김진
출판
창지사
발매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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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그 순간부터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인 인간은 점차 성장해 가면서 독립적으로 변해간다.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해 나간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이 과정 조차도 100%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의 본질에는 의존성이라는 것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따라다니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본질적 의존성은 자신만의 정체성이 형성된 이후에 각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되는 듯 하다. 어떤 이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의존성을 조금이라도 떨쳐내버리려는 듯 '자신'을 믿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나의 경우 절대자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지만 '자신'에 대한 신뢰 혹은 자신감도 꽤나 충만한 편이다. 내의 생각과 행동이 평균적으로 우아하고 성실하며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위와 같은 '나'에 대한 자신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책을 만났다. 바로 김진 선생님이 쓰신 '마음에도 길이 있다'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믿는다 혹은 나를 믿고 살아간다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일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마음 혹은 정신이 상당히 왜곡된 길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상당히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외부의 영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으며, 또한 취약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개인적 성장 혹은 성숙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나의 마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어떤 길을 택하고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진 선생님은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소개하고 싶으셔서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책의 대부분은 인간 정신이 쉽게 걸어가는 다섯 가지 길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개념들을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가지고 풀어주고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다섯 가지 정신의 길을 이해할 수 있어 유익하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내가 그동안 굳건히 믿어왔던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 정신적 기반 위에서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그 틀에 갇혀서 살아 왔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동시에 그 동안 선택해 왔던 내 마음의 길들의 왜곡된 부분을 점검해 보게 된다. 이 책은 나를 돌아보는 혹은 찾아가는 여행의 안내서라 해도 무리없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 여러 가지 길을 다니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 세계에도 다양한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소개해준다. 인간 정신이 비교적 잘 이용하는 길들이 있는 반면 거의 이용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져서 길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정도가 된 길도 있다. (머리말 중에서)길이라는 비유가 참으로 적절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길은 우리 정신이 가장 빈번하게 가는 다섯 가지 길들이다. 그런데 이 길들은 대부분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왜곡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정상인 것처럼 일상화되어 문제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섯 가지 길은 '억압', '전치', '투사', '합리화', '동일시'이다. 이들 개념은 프로이트학파의 정통정신분석학에서 방어기재로 다루는 것들이다. 저자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 준다.

 

  인간의 마음을 살펴보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인간이란 존재를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판단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 본능과 창조주께서 주신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 공존한다(본문 중)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저자가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혹은 믿음에 동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두가지 마음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등을 통해 전해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접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다보니 사람의 마음에 있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 본능의 차지하는 영역이 마음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각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마음 한 켠에 쭈그러져 있는 창조주께서 주신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마음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이제 이 책에서 소개된 우리 마음이 가장 쉽게 이용하는 다섯 가지 길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글의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다섯 가지 길은 억압, 전치, 투사, 합리화, 동일시이다. 저자는 각각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억압: 자기보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자기의 것(감정, 생각, 충동)을 우선 눌러 놓고 보는 것. 이간의 마음이 가장 쉽게 이용하는 가장 넓은 길

 

  전치: 상대방을 상대방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의 인물과 같이 대하여 인간관계를 너무 쉽게 왜곡하는 정신의 길

 

  투사: 사실은 자기의 잘못이고 책임인데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현상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정신의 길

 

  합리화: 자기 행위의 진정한 동기 대신 상대방에게 무난하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실과 다른 동기를 말하는 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정신의 길. 당시에는 그냥 넘어가게 되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불신을 쌓게 되는 무서운 부작용을 낳음

 

  동일시: 닮는 것. 정상적인 성격 형성에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함. 잘 쓰이면 아주 긍정적인 정신의 길이 됨

 

  그리 어려워보이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설명으로는 각 개념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역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생생한 사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 보면 이 다섯 가지 개념에 시나브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분야의 상당한 전문가이면서도 이 책이 우리 마음을 정확하게 비춰주는 유리거울과 같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의 원 제목인 '마음의 구리거울'처럼 상당히 겸손한 태도로 이 책이 우리의 마음을 다소 어렴풋하게 비춰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나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의도했던 바와 같이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을 어렴풋하게 비춰볼 수 있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 혹은 시작하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1순위 안내서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