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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일상 영성의 핵심 - 부활 본문
교회가 외면해 온 책임 바로잡기
영성이란 무엇인가? 유진 피터슨에 따르면 영성은 성령의 도움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엡 4:13)"는 삶을 사는 것이다. 즉, 일생에 걸쳐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교회는 이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않았고, 영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부활'이 주변에 맴돌게 만들고 말았다. 우리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라는 중심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것(심지어 예수님의 탄생조차)을 상업화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외면 당한 것이 부활이다. 부활절만큼 돈벌이의 기회가 되지 않은 상품이 없는 것 같다. 부활은 우리가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유진 피터슨의 진술에 100%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래서 세상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진실이자 사실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다.
부활 이야기의 핵심, 그리고 그것의 상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는 경이로움, 충격, 놀라움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경외감과 친밀함이 함께 담겨 있다. 이 두 요소가 합쳐져서 예배가 되었다고 유진 피터슨은 해석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내가 목격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나 역시 세 여인들처럼 경이로움과 놀람, 당혹스러움 가운데 서 있었을 것이리라.
유진 피터슨은 이와 같은 부활의 분위기 속에서 영성 형성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예측가능 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있을 수 없으며, 소외된 인물들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조용하면서도 일상을 벗어나 있는 부활 이야기의 특징들은 경이로움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재료들이다. 이 경이로움이 영성 형성의 중심적 요소 중의 하나이다. 어렸을 적에 우리가 경험했던 경이로움은 우리가 모든 일을 점점 잘하게 되고 스스로 장앙력을 키워가면서 서서히 우리들에게서 빠져나갔다. 결국 일하는 곳에서의 경이감은 사라져 버렸다.
일이라는 것은 자체로 참 멋진 일이다.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활동 속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터가 우리 삶의 무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일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내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존재 정도로 여기게 된다. 유진 피터슨의 이 지적이 마음에 와 꽂힌다. 나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나 이르고자 하는 목표를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새 나는 일의 본질, 부활의 경이가 사라진 채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경이와 경외의 느낌을 앗아가는 일터는 영성 형성에 있어 가장 위협적인 곳이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일터야말로 부활에 의한 영성 형성의 일차적 무대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부활 장면이 일터를 배경으로 벌어 지고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의 근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의 경이감을 회복할 것인가? 저자의 대답은 거룩한 안식의 날을 지키는 것이다. 안식은 일을 처리하는 세상의 방식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처리하려 드는 세상의 강박증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해 준다. 계획적으로 그리고 결연히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자세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보다 자유로운 눈으로 보고 응답할 수 있게 해 준다. 안식은 일손을 멈추고 침묵함으로써 이윽고 깜짝 놀라 열린 눈으로 부활의 경이를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일손을 멈추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의 실천
우리는 매우 자주 하나님과 삶이 단절되는 것을 경험한다. 유진 피터슨은 이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부활이라는 초월적 사건이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인 식사와 하나가 됨을 언급하고 있다. 부활 후 엠마오의 집과 갈리리의 해변에서 함께한 식사는 영성 형성과 일상이 삶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일생 생활에 있어 가장 흔한 곳으로 스며들어 온다. 허탈하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한 것은 유진 피터슨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가 매일 하는 식사를 통해 다가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먹는 행위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한 식사를 떠올리는 것만큼 일상 생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도 없는 듯 하다. 예수님 부활 당시 식사는 부활에의 참여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식사에 깃든 부활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식사에는 희생이라는 체험이 진하게 스며있다. 하나의 생명이 희생되어 다른 이의 생명이 유지되는 체험 말이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우리는 복잡한 희생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린다. 현대사회에서 축소되고 있는 식사의 중요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식사할 때 주의 만찬을 떠올려 보자.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다.
진정한 영성 형성을 위한 길
현대 사회는 극도로 전문화되어가고 있다. 영성 형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인다. 예수를 따라가는 일에서조차 사람들은 전문가들을 개입시키려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조차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나 우리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움직여가기 위해 훈련하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엮어 놓는다. 부활은 친구들 간의 유대를 형성해준다. 부활이 우리를 인도해 가는 곳은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는 공동체다. 예수의 부활을 인식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은 결코 개인적 체험이 아니다.
부활에 있어 혹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에는 전문적 영적 엘리트가 필요하지 않다. 부활에 근거한 영성 형성은 친밀하며 인격적인 경험이다. 우리들 쪽에서는 부활 친구들과의 친밀한 인격적 관계 속에,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속에 우리가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주께서 지금 일하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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