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언론 매체에 등장해 경제 전망을 이야기하거나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경제학자들이 참 많다. 사람들은 그들의 글 또는 인터뷰 등을 들으면서 나름의 전망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인 학자들의 식견에 거의 동의하며 그들의 의견에 수긍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에게 주어진 권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출신 혹은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 이 사람이 이래서 그 때 그런 주장을 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많이 있다. 주로 대기업들의 자문역을 하면서 거액의 알바비를 챙기는 이들이 주로 그러할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2년 3월호의 첫 기고문에서 이와 같은 경제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기고문에서는 경제학자들과 금융사 간의 유착 관계와 그로 인한 연구자들의 중립성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신이 잠시라도 관계했던 기관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거나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미국 경제학회에서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이해관계를 명시하도록 하기로 했다. 올바른 조처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 교수들이 자신에게 보수를 지급한 기관들을 공개하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학자-기관의 이해 관계를 재고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는 있어보인다. 어느 경제학자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그를 지원해주는 경제적 조력자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이런 직접적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학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경우는 어떨까? 이 역시 문제가 될 여지가 많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진행된 비상식적 토목 사업들의 사례만 봐도 이러한 부작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친정부적 성향을 띤 학자들은 자신들의 학자적 양심을 내팽겨치면서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질 정치경제적 이익에 복역하고 만다. 돈과 중립성을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 언론들 또한 유독 그런 이해 관계를 가진 이들과만 인터뷰를 하곤 한다. 돈을 쥔 기업 혹은 정부 - 연구자 - 언론이라는 삼각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 효과는 매우 커진다. 이러한 연구자들에게 자신들의 이해관계자를 공개하게 하는 것은 최소한의 조치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외에 어떤 조치들이 더 취해져야 할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독립적 연구재단을 꾸려보는 것이다. 대기업 혹은 정부에서 돈을 대지 않을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 이것이 한 방법이긴 하지만 한두푼의 돈이 아닐진대 연구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현실적일까? 이또한 회의적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바랄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은 학자들에게 있을 수 있다. 결국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양심을 가진 학자들을 키워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세상의 많은 변화들은 이렇듯 근본적인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