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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국가라는 보편성 뒤에 숨겨진 다른 얼굴 본문
보편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나 국가라고 하는 집단 혹은 경계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의미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2년 1월호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월간지에 실린 글에서 피에르 부르디외는 국가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면서 "적절하고 합법적인 정치의 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보편적인 것(한 그룹, 만인, 전체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는 입장에서 점진적으로 축적된 자원)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쓰면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공의 선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동시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전유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보편적인 것에 대한 독점이 없이는 보편적인 것을 대변하는 특권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국의 국회의 모습이 딱 이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편적인 것을 대변해야 하는 이들(국회의원, 대통령과 그 관계인들, 행정관료들 등)은 공공의 이익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향유하고 있다. 이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것으로 포장된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강의에서 나오는 부정적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글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하나는 보편적인 것이 형성되면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은 소외되고 박탈된다는 것이다. 한 부분으로의 집중은 통합과 보편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폭력과 박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도 행해지는 다양한 정치, 경제적 활동들도 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다수결이라는 합의체계가 소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무시하게 되면 이러한 폭력과 박탈을 가장 잘 나타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의와 동의를 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무시되는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과정은 지난할지라도 계속된 설득과정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설득과 합의의 과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폭력과 위압, 강행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되는 장이 바로 국회가 아닐까? 이러한 폭력적 모습들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경험하고 있지만, 그러한 일상의 대의적 표출이 국회라는 합법적 보편적 권력투쟁의 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모순적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을까? 피에르 부르디외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많이 남겨주었다. 그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접근 조건을 보편화하는 프로젝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독점자들의 특권을 박탈하는 것보다는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도 명백하다고 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단지 국가라는 보편적인 것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그 과정속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혹은 배제의 현상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부르디외를 잘 모르고 있던 나에게는 이러한 관점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어가면서 그가 제시한 "보편적인 것에 대한 접근 조건을 보편화하는 프로젝트"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를 고민해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보편화에 따른 배제와 비정상적 독점에 대한 해법이 부르디외의 고민을 이어가다 보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 경제권력 등에 대해 어떠한 방법을 서서라도 독점권을 박탈해야 한다라는 집착과도 같은 인식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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