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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짧지만 강렬한 통찰-이솝 우화 본문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노예이자 이야기꾼이었던 이솝(Aesop)이 지은 이야기들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수천년 전부터 전 인류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솝 우화에는 친숙한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나오고 각 이야기 안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교육적 효과도 있다.
수 많은 우화들 가운데 내 아이를 위한 이솝 우화에는 20편의 대표적인 이야기가 시모네 레아라는 이탈리아 출신 그림 작가의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이 책의 삽화로 2011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상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림들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느낌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내용이 잘 녹아져 있어 아이들과 그림을 함께 보며 이야기해 주기에는 알맞을 것 같다. 오히려 그림은 어른들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독특한 느낌의 그림체에는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림 작가의 블로그에까지 방문하게 할 정도로 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우화집을 그리면서 들었던 생각들과 그림그리는 방법을 소개한 부분은 덤으로 주어지는 재미이다.
어려서부터 듣기도 하고 부분 부분 읽어 보기도 했던 우화집을 어린 딸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이야기해 주는 기분이 묘하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동물들이기는 하지만 의인화되어 있어 이야기를 들려주기가 쉽다. 함께 실린 삽화들에 우화의 내용이 묘하게 녹아 있고 그림에 표현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그림을 기초로 하여 해당 우화의 앞뒤로 꾸며내어 들려줄 수 있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든다. 각 이야기들에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스며있는 인간 삶의 다양한 교훈과 사람의 마음을 삽화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더 재미를 더한다.
달걀만 보면 삼키는 버릇을 가진 개가 소라를 달걀로 착각하고 삼켜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게 되는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지도 못한 어리석은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의 무안함이란. 덜 익은 무화과를 발견하고는 익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배고픈 까마귀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지금 나의 상황은 뒤로 하고 기약 없는 희망만을 품고 있는 때가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이젠 진부해져 버린 욕심 많은 개 이야기이지만 인간 역시 한 없는 욕심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진부함 속에 진리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쌍둥이 새깨를 낳고 한 마리만을 사랑하여 정성껏 키우고 다른 한 마리는 돌보지 않은 원숭이 이야기에서 결국 사랑을 듬뿍 받은 새끼는 어미 품 앞에서 죽고 만다. 우리 사회 부모들이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학교 사무실에까지 찾아와서 자식들 성적이 왜 이러하냐고 항의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놈의 자식들이 제대로 자라겠나? 이 땅의 어리석은 사랑을 실천하는 부모들이여 자식을 살리고 싶거들랑 건강하게 자라도록 독립시키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말려 버릴 수도 있는 해님의 결혼을 덩달아 축하한 어리석은 개구리들 이야기에서는 박근혜와 일당들에게 표를 던진 대한 민국 절반의 국민들이 떠올랐다. 우리들 시민들의 불행은 불 보듯 뻔한데 여성 대통령이라고, 과거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 독재자이기는 하지만)한 이의 여식이라고 치켜세우며 축하하는 어리석은 국민들의 모습이 이 개구리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인간의 성급한 판단에서 오는 불행한 결과를 잘 나타내 주는 이야기는 철 이르게 찾아온 제비와 젊은이 이야기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철 이르게 찾아온 제비는 아닐런지.
여우와 포도만큼 인간의 모습을 간략하지만 명쾌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다.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해 탐스런 포도에 닿을 수 없었던 여우처럼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자와 고래의 약속처럼 우리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그것이 지켜질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서로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착각 속에 약속을 하기도 하고 고의로 지킬 수 없음에도 약속을 하기도 한다. 그리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상황이 그러하였다고 다른 곳에 비난을 돌리기도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인간들은 치졸함의 극치를 자주 보여준다.
사람들은 때론 자신이 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황소 뿔에 앉아 한참 낮잠을 자다가 황소에게 자신이 떠나도 괜찮겠느냐고 묻는 모기처럼 말이다. 이런 모기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황소처럼 어이없는 웃음을 웃게 되겠지? 상대방은 아무런 인식이나 느낌이 없는데 괜히 자신이 무엇인가 되는양 착각하는 것은 코웃음만을 자아낼 뿐이다. 한편 우리는 상대방을 매우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자그마한 생쥐를 내려다보던 사자처럼 말이다. 우리는 항상 의외의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주지하며 겸손한 마음과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솝 우화는 아주 짧지만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모습들을 무릎을 탁! 치도록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는 한 이솝 우화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계속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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