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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도덕적 차원에서 정치의 차원으로 본문
개인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폭력에서부터 국가 혹은 인종간에 자행되는 폭력에 이르기까지 폭력이라는 것은 세계 도처에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폭력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나쁜 것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폭력을 억제한다는 명목 하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폭력을 대하는 인간들의 모순된 태도를 꼬집으면서 폭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리는 폭력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만 폭력에 이끌리고 폭력을 동경해 왔다. 저자는 폭력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순된 태도의 이유가 '우리 존재 자체가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되었기 때문(p.18)'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이 폭력을 바탕으로 권력의 개념이 생겨난다. 인간의 존재와 떼어낼 수 없는 폭력이기에 그것이 악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폭력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폭력을 고찰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음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서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폭력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논리적으로 따져가다 보면 이러한 절대적 도덕처럼 여겨져 왔던 명제를 정당화시켜주는 완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물었던 물음에 나 역시 완전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저자의 결론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결정적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 결론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이와 같이 명확히 답을 하기 어려운 물음이 존재하는 이유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언어가 가진 본질적 특징 때문인데, 언어를 통해서 도덕의 내용을 완전히 정당화할 수는 없다. 어떠한 답을 제시해도 무한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언어를 통해서는 특정 도덕적 명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가면서 저자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저자는 언어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안다.
그렇다면 도덕이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칸트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도덕률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칸트가 말한 정언명법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정언명법이란 어떠한 경우나 상황에도 적용되는 무조건적인 도덕을 말한다. 즉 '안된다면 안되는거야'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정언명법을 주장하면서도 사형도 동일한 정언명법이라고 했다. 단 사형의 찬성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의 율법과도 같은 조건으로 한정지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칸트도 결국 두 가지 정언명법이 모순되는 문제에 직면하고 만다. 저자는 칸트의 모순을 통해 도덕의 정당성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즉, 무조건적으로 성립되는 도덕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폭력 역시 절대적 개념이 아님을 말하면서 폭력을 도덕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차원으로 전환해야 함을 말한다. 도덕과 폭력을 함께 생각해보니 저자가 말하는 차원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이어서 저자는 이와 같은 폭력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구조화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가장 대표적인 국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답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국가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국가의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국가란 어디까지 법의 범위 내에 속하며, 어디부터가 법의 범위에서 벗어나는가를 끊임없이 확정하고 판단하면서 법에서 벗어난 행위를 폭력(물리적 실력행사)으로 단속하고 그에 따라 사회에서 권리관계(법적으로 인정된 행위의 가능성의 관계)를 설정해 가는 운동이다'(p.81)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저자는 국가의 형성을 사회속에 확산되었던 '폭력의 권리'가 국가라는 특정 기관으로 통합되는 것이라 보았다. 일반적으로는 사회계약설을 통해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보지만 이것 역시 국가의 형성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기적 존재로 자연상태에 있던 인간이 계약이 성립될 때에는 갑자기 선한 존재로 둔갑해 버리는 모순과 폭력의 권리가 어째서 근대에 이르러서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계약설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저자는 국가의 형성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폭력의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수립한 권력의 강압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폭력의 권리'를 포기하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무력 조직의 출현이 먼저였다는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 근대 국가의 형성에는 총화기라는 기술의 영향이 지대했음도 언급하고 있다.
국가의 형성을 논한 후 저자는 세금이라는 것에도 그 기저에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다. 자연상태에서 '죽여 버리겠다'라는 협박에 대해 목숨을 건지려고 돈을 지불하는 경험을 국가의 형성과 연결시키면 그것이 바로 세금이 된다. 세금에 대한 아주 명쾌한 해설이다. 힘을 가진 누군가가 협박을 통해 강제한 돈처럼 세금 역시 국가에 의해 우리들에게 강제된 제도이다. 그러면 국가와 폭력 조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둘을 구별하게 해 주는 것은 국가는 법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앞서 언급한 국가의 합법적 폭력 행사 독점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돈을 강제 징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왜 국가는 사회에서 폭력의 권리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가가 왜 합법화된 폭력을 통해 돈을 징수하는가를 고찰한다.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국가가 폭력으로 돈을 모으는 이유는 여러 가지 활동을 위해 필요한 돈을 손쉽게 모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효율성의 문제이다. 부를 둘러싼 실력 투쟁이 국가와 사람들 사이의 세금 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권리는 폭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승인되어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권리를 폭력의 실천이나 승인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저자는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법이란 바로 승인된 권리의 체계임을 말한다.
저자는 지금가지의 논의를 통해 일반적으로 생각해왔던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 국가는 폭력에 근거해 형성된 조직이며 심지어는 강제적으로 세금을 모으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은 국가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을 뒤집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국가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책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폭력 자체의 중립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러한 국가의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를 해체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설사 국가의 해체가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함을 저자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저자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폭력의 문제에 대처해야 하므로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결국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를 통해 폭력에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국가는 다른 폭력 조직과 다른 존재이기 위해서는 항상 국가의 폭력을 법에 입각시켜야만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견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국가가 법을 통한 검토와 조절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의 문제는 영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굉장히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내가 속해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국가를 폭력이라는 관점으로 해설해 주는 저자의 관점이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사회와 국가의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옳고 그름의 도덕적 가치 판단에 머물러 있던 폭력에 대한 관점을 정치적 관점으로 확장시켜 준 이 책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음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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