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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페미니즘 (14)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여성, 인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날입니다. 회사가 매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여성조합원들에게 근무일수 하루를 빼주는 걸 보면서 ‘여성들은 좋겠네’ 하고 부러워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어떤 남성조합원은 왜 남성의 날은 없냐며 볼멘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남성들이 이처럼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남성의 날은 왜 없냐고? 여성의 날을 따로 정해서 기념한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소외되어 왔기 때문임을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최근 몇년 동안 많은 남성들이 ‘이제는 성평등이 이루어졌다’ 혹은 ‘역차별이다’라고 말하기도 하..
지상파 아침 방송에서 20대 여성이 인터뷰를 하다가 두 팔을 들어 풍성한 겨드랑이 털을 보여준다면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풍성한 겨드랑이 털 뿐만 아니라 그 여성의 다리에도 털이 길게 자라 있다면 어떨까요? 이런 여성을 보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스럽지 못하다’며 미간을 찌푸릴 것입니다. 겨드랑이와 다리에 난 털을 깔끔하게 면도하는 것이 ‘여성답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2년에 영국의 한 아침방송 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주인공 에머 오툴은 이를 계기로 온갖 미디어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여성 체모 세계 대표’에 등극했다고 스스로를 칭했습니다. 이 여성은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이라는 틀에 따라 여성성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과 그것..
어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자녀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해주셨겠죠? 아마도 자녀의 성별에 맞게(?) 선물을 준비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마트에 들렀다가 어린이 장난감 코너를 지나가는데 장난감을 성별에 따라 구별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자 아이들 장난감은 대체로 핑크색계열이고, 남자 아이들 장난감은 파란색계열입니다. 마트 어린이 장남감 코너ⓒ 이훈희 장난감 코너를 이렇게 구분해 놓은 건 여자 아이들은 핑크색을 좋아하고 남자 아이들은 파란색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성별에 따라 색상을 구분해 놨기 때문에 아이들이 선호하는 색상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여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 딱히 색상에 대한 선호를 두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아이들이 핑크색 장난감들을 좋아했던 것을 보면 유..
10여 년 전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둔 직장인 이씨. 이씨는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회사로 가는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지난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조금 늦게까지 예능프로를 보느라 부족했던 잠을 통근버스에서 보충합니다. 회사에 도착해 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도 쓰고, 협력사와 회의도 합니다. 바쁜 하루 일정이기는 하지만 업무 중간 중간 동료들과 차도 마시며 잡담할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야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씨는 법정 노동 시간 안에서만 일하면 됩니다. 한편, 이씨가 출근하고 나서 곧 일어난 아이들은 엄마를 깨웁니다. 이씨의 아내는 두 아이에게 아침밥을 차려 먹이고,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준비시킵니다.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집을 나서고 나서도 이씨의 아내..
걸크러시 세트작가페넬로프 바지출판문학동네발매2018.09.20.평점리뷰보기 지난 10월 노벨위원회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을 때 온 세계가 놀라워했습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에 55년만에 여성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벨물리학상은 1901년부터 2018년까지 112번 수여되었는데 그 중에 여성은 몇 명이었을까요? 네, 2018년을 포함해 단 세 명이었습니다. 이는 물리학상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닙니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688명 중 여성은 단 21명 뿐입니다. 과학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의 10%정도라고는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성별비율은 과학분야 종사자의 성비에 훨씬 못미칩니다. 왜 그럴까요?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노벨상을 탈 만큼 뛰어나지 않아서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
헝거작가록산 게이출판사이행성발매2018.03.08.평점리뷰보기 우리 일생이 녹아 있는 몸에 대한 고백록, 록산 게이 가슴속에 자신만의 상처와 아픔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나름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무던하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봐도 ‘행복한 인생’ 보다는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때문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 정도야 다들 겪는 거 아닌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인생도 있습니다. 아픔이 너무 커서 과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공감할 수 있을지, 아니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나쁜 페미니스트작가록산 게이출판사이행성발매2016.03.14.평점리뷰보기 미투운동, 가정과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 성역할 편견 등 페미니즘 논쟁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점차 피로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이 정도로 이슈가 되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성차별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를 찾는 길은 멀고 더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필요만큼 진보적이지 않다.”(157쪽)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가 라는 책에서 한 말은 미국 사회에 대한 것이었지만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여성들의..
역사 기록에서도 차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작가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출판어크로스발매2018.03.21.평점리뷰보기 “여성은 타자이며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은 불완전하고 무능력하며 무가치하다고 말했다. 2000년 동안 인류는 파울로스의 말이라고 알려진 그 성경 구절을 되뇌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원죄의 이야기, 뱀의 꾐에 넘어가 인식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이야기는 더 자주 입에 올렸다. 그런 다음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생각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머리에 뿌리내렸다. 몸으로 밀고 들어와 피와 살이 되었고 우리의 행동..
이브 프로젝트작가리브 스트룀키스트출판푸른지식발매2018.01.12.평점리뷰보기 보지: ‘음부’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음부: 남녀의 바깥 생식 기관. 주로 여성의 것을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 글의 첫머리에 소리내서 읽기 쉽지 않은 단어 ‘보지’를 보시고 당황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브 스트룀키스트라는 스웨덴 출신 작가가 낸 라는 책을 읽고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어째서 여성 성기의 일부를 지칭하는 단어가 국어사전에서조차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정의를 갖게 된 것일까요?“우리 문화의 이상한 점은 여성의 샅에서 성기가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을 언급하거나 표현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보지(외음부)’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기를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36쪽..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작가벨 훅스출판문학동네발매2017.03.27.평점리뷰보기 가부장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오다가 그것이 주로 남성에게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가정, 학교, 직장 등 삶의 현장 곳곳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우대를 받아왔다는 점도 알아갑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 혹은 성폭력 사건들도 조금씩이지만 페미니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며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해야지’ 마음도 먹었습니다. 직장에서 남성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성차별이 스며든 말들에도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화하는 그 자리에서 남성 동료들에게 그 말들의 잘못된 점을 언급하기는 쉽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