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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한 남자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하다 본문
가부장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오다가 그것이 주로 남성에게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가정, 학교, 직장 등 삶의 현장 곳곳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우대를 받아왔다는 점도 알아갑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 혹은 성폭력 사건들도 조금씩이지만 페미니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며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해야지’ 마음도 먹었습니다.
직장에서 남성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성차별이 스며든 말들에도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화하는 그 자리에서 남성 동료들에게 그 말들의 잘못된 점을 언급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이젠 여성 상위 시대’, ‘세상 많이 좋아졌다’, ‘어머니들은 맞고 살았다’, ‘역차별이다’ 등의 말들이 나오곤 합니다. 동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대답과 함께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페미니즘을 알아야 합니다.
벨 훅스라는 페미니스트가 우리 모두에게 페미니즘에 한 걸음 더 다가오라고 초청하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기초를 다져봅니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한다’, ‘페미니즘은 반남성주의다’, ‘페미니스트는 전부 레즈비언이다’ 등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입문서로 이 책을 썼습니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 정의하며 이 정신으로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고합니다.
“(제도화된 성차별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가부장제를 철폐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방식과 정신부터 바꾸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버리고 그 자리에 페미니즘적 사고와 행동을 들이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성차별주의를 영구화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19쪽)
페미니즘 운동의 간략한 역사
현재까지 이어져 온 페미니즘 운동을 이해하는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자는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크게 혁명 그룹과 개혁 그룹으로 나뉘어졌다고 말합니다. 혁명 그룹은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제 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기존체계 내에서 성평등을 추구하던 개혁 그룹에 비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반면 일터에서의 젠더 평등, 동일 노동 동일 임금, 가사 노동과 육아 분담 등을 의제로 다루는 개혁 그룹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페미니즘 운동 초기 혁명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사고의 해방을 경험하며 성차별주의적 사고를 되돌아 보게 하는 의식화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라는 틀에서 여성학이 제도화되면서 초기 의식화 모임들을 여성학 강의실이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페미니즘 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다질 가능성을 잃으며 직장에서의 평등,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저항 등으로 운동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가부장제에 의해 사회화되어 성차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주문했습니다. 여성들은 여성의 몸이 남자의 소유물이 아님을 인식하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결정권, 효과적인 피임, 임신선택권, 강간과 성폭펵 근절 등을 요구하며 운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에 더욱 세분화된 페미니즘 운동 그룹까지는 다루지 않아 부족하다 느낄 수 있겠으나 입문자인 제 수준에선 이 정도의 간략한 역사로 시작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다가서는데 도움이 됩니다.
교육을 위해 책을 썼기에 저자는 페미니즘 교육을 강조합니다. 저자의 경우 가부장제적 가정에서 남성중심주의에 저항하다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사상에 눈을 떴으나,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페미니즘 강의실에서 페미니즘 사상과 이론을 배우면서 비로소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교육에 관심을 가질 것을 제안합니다.
“아이들은 신념과 정체성이 아직 형성되는 과정이므로 어린이 문학은 비판 의식을 키우기 위한 페미니즘 교육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대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젠더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다.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 분야에서 편견이 배제된 커리큘럼이 사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68쪽)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제공하는 대중운동을 조직하지 않으면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은 주류 언론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정보로 인해 늘 힘을 잃고 말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 사람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했는지 직접 나서서 널리 홍보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시민들은 페미니즘이 어떤 결실을 거두었는지 모를 것이다.”(70쪽)
페미니즘 운동이 다뤄왔던 의제들-성과와 한계 및 전망
저자는 페미니즘 사상과 이론 교육을 강조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기 위해 그 동안 페미니즘 운동에서 다뤄왔던 다양한 의제들을 소개했습니다. 각 주제들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설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에게 자유를 허하는데 핵심이 되는 임신선택권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에서도 여전히 임신선택권과 관련된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것을 벨 훅스는 제안합니다.
페미니즘은 외모에만 치중되어 있던 남성 중심 미의 기준에서 여성들이 벗어나는데도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과거 ‘미의 기준’을 온전히 대체할만한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 역시 앞으로 페미니즘 운동에서 주목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사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비판해왔지만, 여성들은 뭐가 건강한 선택인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을 뿐이다. 나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체중이 늘었으나 자기혐오에 찌든 성차별주의적 몸매를 목표로 삼지 않고 체중을 줄이기로 했다. 요즘 패션업계에서는,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빼빼 마른 십대 소녀들만을 위해 디자인한 것 같은 옷밖에 없으니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몸매에 신경을 쓰고 살을 골칫거리로 여기도록 사회화될 수 밖에 없다.”(92쪽)
미국의 경우엔 페미니즘 운동에서 고학력 백인 여성으로 대표되는 그룹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그 이외의 많은 여성들(특히 저소득 비백인 여성)은 기존의 차별 구조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페미니즘 그룹 내에서도 젠더 차별을 넘어서는 인종차별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일터에서 남성들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일부 백인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여성들이 ‘이미 해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저자는 일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이 앞으로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가정폭력 문제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이전까지는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부각되었는데 저자는 그 어떤 폭력도 거부하는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아동에게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 중 여성이 많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회에서건 가정에서건 폭력이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현재의 지배 문화는 모두에게 폭력을 사회 통제 수단으로 허용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내면화시킨다. 남녀관계든 부모 자식 간이든 기존의 위계질서가 흔들리면 지배자들은 언제든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폭력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지배를 유지한다.”(154-155쪽)
이외에도 여성성과 남성성, 사랑과 결혼, 성적욕망 및 쾌락, 성적 자유와 성적 문란, 동성애와 성정체성, 종교적 억압, 가사 및 육아 노동 분담, 여성의 어머니 역할 논쟁 등 저자가 소개한 페미니즘 운동의 영역은 광범위합니다. 벨 훅스가 페미니즘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 말할 만합니다. 저자는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게끔 만들어 페미니즘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어떤 페미니스트가 될 것인가?
남성인 저는 지금까지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수강했던 여성학 수업 이외에는 그 어떤 교육의 기회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부장제에 사회화되어 일상생활에 만연한 성차별을 경험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마도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페미니즘을 알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 대부분의 남성들도 저자가 말한 미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일 것입니다.
“이제껏 남자아이들에게 말을 걸어, 성차별주의에 뿌리를 두지 않은 정체성을 키우는 법을 알려주는 적절한 페미니즘 도서들은 없었다.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소년 시절, 특히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성장에 중심을 두고 비판 의식을 일깨우는 교육을 한 적은 없다.”(167쪽)
성차별주의가 유지해온 구조와 그 안에서 착취, 억압당했고 여전히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이제서야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공고히 유지되고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생활하다보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전의 자연스러운 차별적 사고가 치고 들어오곤 합니다.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교육하지 않는다면 페미니즘 운동 노선에서 벗어나고 말 것입니다.
저자가 제안한 것처럼 “페미니즘의 기치를 들고 가부장제에 맞서는” 페미니스트로 전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형태와 방향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며 이어져 온 페미니즘의 세계를 계속 탐구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부장적 부모님과 대화할 때 그리고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일터에서 남성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회식자리에서, 혐오가 점점 더 심해지는 온라인 공간에서, 삶의 구석구석에서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고 합니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페미니즘 운동은 연령과 여남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차별주의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해야 진보한다.(중략)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가르치며 페미니즘을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중략)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259-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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