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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솔직담백한 공개입양 이야기] 입양은 가족을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 본문
이따금씩 아내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로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요즘에도 그렇지만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는 어느 날 제게 물었습니다.
“우리 결혼하면 입양하는 건 어때?”
결혼도 안했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입양이라는 주제는 제게 너무나 먼 주제였습니다. 특히나 현재에 충실한 성향을 가진 제게는 더욱. 그래도 물음에 답은 해야 하기에 힘겹게 상상을 해 보고 제가 했던 대답은 ‘입양을 한다고 해도 그 아이를 내가 낳은 아이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다’였습니다.(사실 제가 낳지도 않았네요. ‘제 정자를 제공해 잉태되고 아내가 낳은’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겠네요)
그 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도 두 명이나 낳았는데 아내는 가끔씩 입양이야기를 합니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제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입양은 두려운, 그래서 자신이 없는 일입니다. 자녀가 생긴다는 관점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출산이냐 입양이냐는 차이점이 없습니다. 똑같이 한 생명을 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입양은 더 없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두 아이가 있는데도 아이를 입양한 이유
‘핏줄’이라는 사회적 인식, 미디어에서 입양을 다뤄왔던 부정적 모습들, 입양에 대한 무지 등이 함께 얼버무려져서 입양을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내의 책장에서 ‘인생의 울타리를 넓히는 행복한 선택, 입양’이라는 부제가 붙은 <너라는 우주를 만나>라는 책을 꺼냈습니다. 아이 둘을 낳고도 셋째를 입양해 가족으로 맞이한 저자 김경아님이 자신의 입양이야기를 꼭꼭 눌러담은 책입니다.
열아홉 살에 발병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통증과 함께 살았던 저자는 24세에 결혼해 그 이듬해 첫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픈 몸으로 처음 경험하는 육아에 영양실조에 걸리기까지 했다는 저자. 그리고 몇 년 후 미국 유학생활을 하는 중에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저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한 주치의는 출산을 반대했지만 저자는 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출산해 둘째를 가족으로 맞이했습니다.
귀국 후 대전에 정착해 힘겹게 두 아이 육아를 감당해가고 있던 차 양쪽 고관절을 인공관절로 바꾸는 수술까지 하게 됩니다. 그나마 수술 후 통증이 줄고 둘째도 어느 정도 커가면서 육아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둘째 아이를 잘 대해주는 것을 보던 남편은 셋째를 갖자고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저자는 남편의 요구를 무시로 일관했는데 남편이 입양을 제안했다고.
책을 읽다 이 대목에선 ‘이 남편 참 이기적이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입양 제안에 대해선 무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두 아이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고, 둘째는 동생을 원치 않고. 입양을 거절할 이유가 넘쳐났었는데 저자는 이상하게도 남편의 제안을 거절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이렇게 입양을 고민하던 시기에 저자는 남편이 가르치던 대학생 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갓 피운 꽃봉우리처럼 생기넘치는 청년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입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입양과 인과관계가 있는 사건은 아니었지만 한 생명의 허무한 스러짐에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본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에겐 입양하지 않을 이유가 훨씬 더 많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죽기 밖에 더할까. 죽더라도 한 아이에게 가족은 남겨줄 수 있으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입양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입양을 나와 내 가족 중심으로만 이해했던 제게 저자의 이런 마음은 입양을 입양되는 아이 관점에서 입양을 생각하게끔 도와주었습니다.
“내가 아이 하나 입양했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마는, 입양된 아이의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10-11쪽)
특별한 사람들만 입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저자는 두 아이와 함께 입양 가족 모임에 참석해 입양부모들을 만나면서 특별한 사람들만 입양을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입양 기관에 방문에 입양 상담도 받고 입양의 실제적인 면들을 알아갑니다. 상담 후 찾아간 일시보호소에서 아이들을 보고 난 후 저자와 저자의 가족은 입양을 하기로 한 결심을 확고히 굳히게 됩니다.
“숱한 고통 중에서 특히 내가 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인 이유는 그 아이들에게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기를 낳아 준 부모와의 이별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중략) 선택의 여지가 조금도 없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최선의 돌봄은 과연 무엇일까?”(56-57쪽)
저자는 입양을 했다고 하는 자신에게 ‘존경스럽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 말합니다. 특별히 잘살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사람만 입양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살아온 인생과 입양을 결정하고 한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하는 과정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입양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거나 아이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보통 사람이지만 생명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있는 이들이 입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양을 저자가 말한 것처럼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지만 ‘가족을 이루는 또 다른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제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입양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히 사라졌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한 아이를 저자는 이렇게 입양했고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끝.’
이런 결말을 기대하시지는 않았겠죠? 저자의 입양 이야기는 입양 후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입양된 사실을 알릴 것인지 비밀로 할 것인지,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입양된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낳아준 부모를 찾아가겠다 하면 어떻게 할 지 등 입양을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걱정거리가 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입양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사회를 바라며
우리 나라와 같이 입양된 아이를 ‘업둥이’처럼 생각하는 문화에선 입양 사실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입양아 본인에게 입양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공개입양’을 선택합니다. 물론 두 딸에게 동생의 입양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할 것 같았기에 공개입양을 선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입양아도 자신의 역사를 알 권리가 있고, 입양이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도 아닐 뿐더러 입양되었다는 것 때문에 차별받거나 편견에 시달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저자는 입양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 노력의 일환입니다. 또한 저자는 입양을 계기로 입양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입양 교육 강사로도 활동합니다. 책에는 저자가 7년 동안의 강의에서 받았던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을 실었습니다.
이름하여 입양 FAQ
이 정도면 입양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 질문에 대해 저자는 체험에서 나온 생생한 대답을 적어놨기에 입양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실제로 입양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엔 입양도서 추천목록과 함께 입양 기관 및 모금 안내 정보도 실어 입양을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훌륭한 안내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양 이야기의 마지막엔 입양된 셋째 딸 희은이가 짧막한 글을 썼습니다. 입양을 한 엄마의 이야기에 이어 입양되어 성장한 아이가 글을 쓰다니 참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희은이의 말들이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입양은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엄마가 알려 주셨고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숨겨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내 입양 사실을 공개해서 입양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203쪽)
“내가 입양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본다. 예를 들어, 나를 낳아 준 부모님과 살았으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외동으로 입양되었다면 더 사랑받았을까?”(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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