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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을 향한 책읽기의 길을 제시하는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본문

맛있는 책읽기

풍요로운 삶을 향한 책읽기의 길을 제시하는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초원위의양 2018. 6. 4. 09:54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작가
헤르만 헤세
출판
뜨인돌
발매
2006.10.28.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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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들이 하나 하나 결합해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을 만듭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지식수준에서 확인한 바로는 세상 만물은 단 100여개의 기본 원소들이 조합되어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조합인지에 따라 무기물이 되기도 하고 유기물이 되기도 합니다. 생명이 없는 기본 원소들의 결합으로 생명이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세상. 이 신비를 매순간 알아채며 살아가진 못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연의 신비를 깨닫고 감탄하곤 합니다.


책의 세계도 비슷합니다. 따로 흩어져 있을 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자음과 모음들이 결합되어 글자가 되면 비로소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자연계의 원소와 같은 작은 기본 그릇이 만들어집니다. 이 글자들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됩니다. 문장들은 문단이 되고 문단이 쌓여 글이 되고 책이 됩니다. 세상 만물과 같이 책들도 어느 하나 똑같지 않습니다. 만물이 이루어지는 신비에 놀라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책 세상의 신비를 깨닫고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다 나도 모르게 눈에 띈 헌책방에 들어섰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발길이 그쪽을 향했습니다.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책 무더기를 둘러보는데 책 한 권이 시야 전체를 차지합니다. 운명처럼.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이었습니다. 어릴 적 권장도서란 말에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힘겹게 읽었던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 추억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요? 다른 책들은 둘러보지도 않고 이 책을 들고 책방을 나왔습니다.


헤르만 헤세라는 추억속 이름 하나와 독서라는 단어에 이끌려 선택한 헌 책. 책과 읽기, 쓰기, 도서목록 등에 대한 헤세의 짧은 생각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대목들에 공감해 에세이들 전체를 옮기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서평기사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헤르만 헤세가 이야기한 것들을 우겨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헤르만 헤세와 공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과 독서법에 대하여


‘뭐든 읽으면 피가되고 살이 된다’며 책 읽기를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헤세는 책이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독서란 “소중한 보물을 모으고 친구를 얻고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방편”이라고 정의합니다. 독서가 무조건 유익한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에 그 동안 책을 읽어왔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러니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정 도움도 안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 (중략)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나가면서 기쁨이나 위로 혹은 마음의 평안이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줄줄 꿰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11쪽)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잘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유명한 독서가들이 추천하는 책 목록에서? 아니면 오랜 세월을 통해 위대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은 고전들? 책을 읽는다는 건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이라고 말하는 헤세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양서를 읽히고자 애쓰는 분들이 참고할 만합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누군가는 문학작품으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느끼는 반면, 그런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참으로 멋지고 감미로운 일임을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호메로스에서 시작해서 도스토예프스키로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으며, 문학을 끼고 성장하여 나중에 철학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또 그 반대도 있으니, 길은 수백가지다.”(108-109쪽)


헤세는 특정한 추천도서 목록같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각자가 끌리고 수긍하고 아끼는, 그래서 좋아하게 되어 선택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이렇게 책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읽을까요? 이 물음에도 헤세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을 가지고 읽으라고 대답합니다. 책을 대하는 제 태도를 돌아보며 헤세의 조언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저 시간이나 때우려고 읽는 사람은 좋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읽고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니, 읽기 전이나 후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빈곤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 사람에게 책들은 자신을 활짝 열어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읽는 것은 흘러가거나 소실되지 않고, 그의 곁에 남고 그의 일부가 되어, 깊은 우정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리라.”(109쪽)


글쓰기와 작가, 그리고 비평가


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게 됩니다. 아니면 최소한 글쓰기에 관심은 가지게 됩니다. 짧은 감상을 적는 메모에서 시작해 인터넷의 개인 공간에 조금 긴 글을 남기다가 서평쓰기로까지 독서는 글쓰기 그리고 비평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헤세는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글을 쓸 때 “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라는 헤세의 충고는 모든 작가들이 유념하면 좋을 말입니다.


독서인구가 계속 감소한다고들 하는데 책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등단을 통해 작가가 되는 구조가 무너지면서 작가가 되는 길이 다양해진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젠 정말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인 듯 합니다. 하지만 작가라는 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헤세는 권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굳이 작가가 되려 하시는지요? 재능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작가를 꿈꾸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를 독창적이고 마음이 순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섬세한 감각과 정제된 정서의 소유자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덕목들은 작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갖출 수 있으며, 어정쩡한 문학적 재능 대신 그런 쪽으로 연마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또 혹시 어떻게 명성을 얻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라면, 작가보다는 배우가 되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요?”(58쪽)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명확히 알아가고 체험의 힘을 고양시키고 양심의 날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한은, 문학창작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장차 작가가 되건 안되건 상관없이 당신은 맑은 눈으로 깨어 있는 유용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희망하듯 그것이 당신의 목적이라면 그리고 혹시문학을 감상하거나 창작함에 있어서 일말의 장애라도 감지되거나, 순수한 삶의 감정의 희석이라든지 허영심과 같은 빗나간 샛길로 빠질 유혹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럴 때는 문학을 일체 집어치우십시오.”(59쪽)


타고난 작가보다 타고난 비평가가 드물다고 합니다. 서평에도 일정 부분의 비평이 포함될 수 있으므로 헤세의 말에서 서평을 쓰는 이들도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구사하는 언어와 허물없이 친숙해 오용하는 법이 없는” 진정한 비평가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서평을 읽는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더욱 풍요롭고 신명나는 삶을 향해


헤르만 헤세는 교양을 갖춘다는 것을 신체를 단련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특정한 능력이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준비된 자세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헤세가 제안하는 것처럼 읽기와 쓰기를 통해 우리 삶은 좀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헤세는 여러 민족들의 사상과 경험, 상징, 상상과 소망의 엄청난 보고인 세계문학을 탐구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택해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타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총제와 더불어 활발하게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118쪽)


하지만 이 과정을 억지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책에서 헤세는 자신이 마음껏 상상하는 세계문학 도서관을 그려보았습니다. 물론 그 도서 목록에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헤세는 반복해서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주장합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끌려서 작품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작품을 모른다고 창피해서 억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책의 세계에 들어와 한 권 한 권 읽은 지 10여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간간히 서평을 올린지도 2년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쓰는 활동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앞에 두고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꼭 읽어야만 한다는 책들에 손을 댔다가 덮어두곤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이 에세이집을 이제서야 만난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헤세의 말들을 통해 앞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헤세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독서의 세계로 한걸음 나아갑니다.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 행복과 교양을 위한 필독 도서목록 따위는 없다. 단지 각자 나름대로 만족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정량의 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책들을 서서히 찾아가는 것, 이 책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 가급적 이 책들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늘 소유하여 조금씩 완전히 제것으로 삼는 것,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다.”(162-163쪽)

“문학과 예술 방면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못한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소박하되 넘치는 애정으로 독서생활을 가꾸어 나가며 삶의 기쁨과 내면의 가치를 키울 줄 아는 진지함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