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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반인륜 범죄들은 '그저 명령을 따랐기' 때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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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반인륜 범죄들은 '그저 명령을 따랐기' 때문

초원위의양 2018. 6. 25. 23:54

똑똑한 불복종

작가
아이라 샬레프
출판
안티고네
발매
2018.03.21.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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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면 그것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 <복종> -


복종과 불복종에 대해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시에서 화자는 ‘당신’에게는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싶으며 그것은 자유보다도 달콤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당신’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당신 아닌 다른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국가기관이든 기업이든 어떤 조직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의 지시에 저항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명령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태연히 지시에 따랐던 사람들처럼 그리 오래지 않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도 독재권력의 지시에 따라 무고한 이웃들을 무참히 살해 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은 자신들도 살기 위해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핑계를 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신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조지타운 대학교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대중들에게 팔로워십 개념을 전파하고 있는 아이라 샬레프는 <똑똑한 불복종>이라는 책에서 단호하게 “그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선언합니다.


“시키는대로 복종하라는 압박이 있었더라도, 우리가 한 행동은 모두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자기 입장을 명확히 하고, 명령이 틀렸을 때는 옳은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7쪽)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가 말한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도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 옳지 않은 지시에도 복종했을 것입니다. 저자도 잘못된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현명한 것임을 알지만 이 당연한 말을 실행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훈련을 통해 단순히 지시를 따름으로써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인식하고 이를 피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친일파와 독재 권력에 복종했던 부역자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이유로 옳지 않은 지시에 따르는 이들은 용산참사, 강정마을, 밀양송전탑, 4대강 사업, 자원외교, 세월호,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사건의 이름만 바뀔뿐 최근까지도 계속 있어왔습니다. 권위에 복종해야 할 때와 권위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를 판단하지 못해 비극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 사회에 적절한 생각거리와 실천과제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맹목적 복종의 위험성


저자는 규칙과 권위에 맞춰사는 것과 우리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모색하는 것을 똑똑한 불복종이라고 정의합니다. 시각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이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지시에 복종하도록 교육받지만 복종하는 게 위험할 때는 복종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는 것에서 저자는 똑똑한 불복종에 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 개념을 제안하면서 저자는 맹목적 복종의 위험성을 언급합니다.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공식적인 권위에 잘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조직의 명령 체계 속에 내재된 공식적인 권위에 잘 따르게 됩니다.(중략) 기업, 정부기관, 군대 등 여러 곳의 종사자들이 문제를 축소하라는 압력에 굴복하여 불필요한 위험이나 손실을 만듭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역사 속의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그저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9-10쪽)


1971년 권위에 충실히 복종하며 적응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줬던 스탠퍼드 감옥 실험 고안자인 필립 짐바르도 교수도 자연스럽게 복종하는 문화와 잘못된 복종의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권위의 정당성을 판단하고 부당한 권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첫날부터 교사와 공무원에 의해 엄격한 복종의 씨앗이 잉태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나중에 그러한 기관들을 유지하는 성인이나 납세자가 되어 잘못된 복종을 이어갑니다. 정당한 권위와 부당한 권위의 근본적인 차이, 즉 전자는 존중해야 하고, 후자는 불복종하고 저항해야 마땅하다고 가르치려는 시도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16쪽)


불복종을 배우기 위한 사고실험


어떤 문화권에서든 대체로 불복종보다는 복종이 장려됩니다. 앞서 책에서 인용한 것처럼 우리는 복종이 표준모드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권위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복종과 불복종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복종과 불복종 사이에서 서택해야 할 때 자문해야 할 세 가지 물음을 제시합니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스템이 상당히 공정하고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규칙을 정하거나 지시하는 권위자가 상당히 정당하고 유능한가?
-지시가 상당히 건설적인가?


 

이 기준에 비추어 복종과 불복종을 선택해야 한다고 저자는 가르칩니다. 그리고 불복종을 선택해야 할 때 명령을 내린 사람과 이후에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하고 대응할 것을 제안합니다. 때문에 똑똑한 불복종이라 표현한 것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며 전달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권위를 받들던 습관을 극복할 수 있게 연습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사례로 제시합니다.


 

-의사로부터 잘못된 처방으로 생각되는 지시를 받은 응급실 간호사
-부모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객실에서 나오면 안된다는(그런데 건물에 불이 났다) 말을 들은 아이들
-활주로 얼음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이륙을 하다 엔진 이상이란 계기판 신호를 본 항공기 부기장. 기장은 그냥 이륙하라는데…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당신. 장관의 기자회견장에 기자들이 얼마 없자 “회견장으로 내려가서 기자석을 채우세요. 몇 명은 장관님께 할 질문 몇 가지 준비하시고”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았다면?
-어떤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회계조작을 지시받는다면?
-2001년 9월 11일. 건물에 충돌한 비행기로 인해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온다면?


 

불복종의 거룩한 계보에 들어가기 위하여


권위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저자는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을 소개했습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약 3분의 2는 희생자들이 고통받는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이들은 옳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도 밀그램이 말했던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자율상태’와 위계 속에서 권위자의 대리인이 되는 ‘대리인 상태’가 공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제안한 권위의 정당성 판단 기준을 되새기고 다양한 사고 실험 사례들의 주인공이 되어 불복종을 연습해 봅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지시가 내려올 지 모릅니다. 명령의 근거가 정당한지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어야 하겠고, 저자가 조언한 것처럼 복종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옳은 가치와 원칙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준비와 연습만이 가장 확실한 성공의 열쇠이다. 능력이 필요할 때 배우려면 이미 늦는다. 바로 내일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바로 해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책과 함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에 대하여>,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도 읽으면 좋겠습니다. 밀그램의 실험 결과를 보며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30% 정도는 복종에의 압박을 이겨냈다는 사실에 희망이 있습니다. 저자도 말했듯 똑똑한 불복종을 실천해 불의한 체제를 바꿔왔던 사람들이 항상 이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촛불시민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