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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씨 당신이 틀렸습니다. 본문
10여 년 전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둔 직장인 이씨. 이씨는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회사로 가는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지난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조금 늦게까지 예능프로를 보느라 부족했던 잠을 통근버스에서 보충합니다. 회사에 도착해 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도 쓰고, 협력사와 회의도 합니다. 바쁜 하루 일정이기는 하지만 업무 중간 중간 동료들과 차도 마시며 잡담할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야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씨는 법정 노동 시간 안에서만 일하면 됩니다.
한편, 이씨가 출근하고 나서 곧 일어난 아이들은 엄마를 깨웁니다. 이씨의 아내는 두 아이에게 아침밥을 차려 먹이고,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준비시킵니다.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집을 나서고 나서도 이씨의 아내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시간까지 놀아줍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와서 설거지, 청소 등을 하고 나면 어느 새 시간은 점심시간에 가까워집니다.
오후에 잠시 숨을 돌릴라 치면 곧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둘째 아이를 데려와 놀다 보면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를 마친 첫째 아이가 집으로 옵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있는데 남편 이씨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옵니다. 이씨의 아내는 저녁밥을 차려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합니다. 가사를 분담하기는 하지만 남편이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는 집안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이씨 아내의 노동엔 법정 노동시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씨는 위와 같은 노동으로 월급을 받아 가정 생활을 유지합니다. 이뿐 아니라 이씨의 활동은 경제활동을 측정하는 GDP산출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도 없는 이씨 아내의 노동에는 보수가 주어지지도 경제활동 결과를 산출하는데에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아내의 돌봄 노동으로 이씨가 독립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활동은 국가경제를 말할 때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주류 경제학의 큰 결함들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경제활동의 상당히 큰 부분을 배제해 왔습니다.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쓴 카트리네 마르살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주류 경제학과 그 기저에 놓인 가정에 큰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머니의 돌봄을 받았음에도 경제를 말할 때 이 부분을 쏙 빼먹었습니다.
“매일 아침 1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깜을 모아 오는 11세 소녀는 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를 계산할 때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31쪽)
애덤 스미스는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와 자유시장이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자와 상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식사를 차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경제학자들도 알고 있지만 단순화와 예측가능성을 위해 외면하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경제학 모델의 가정과 현실에는 없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모델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인간 모델을 만들기 위해 경제학은 인간에게서 감정, 이타심, 배려, 연대감을 배제하고 인간이 합리적, 이기적이며 환경에서 독립적인 존재라 단순화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니얼 카너먼 등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이지 않고 감정에 지배되는 면이 상당하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에서의 인간모델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제학
주류 경제학의 문제는 위와 같은 잘못된 가정만이 아닙니다. 경제학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합리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여성은 ‘내재된 자기희생적 특성’으로 인해 경제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경제학은 생산성이 낮기에 여성 보수가 낮으며, 출산할 것이기에 고등 교육을 위해 남성만큼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 모델에선 차별마저도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경제학은 감정, 육체, 의존성, 연대감, 자기희생, 부드러움, 자연, 예측불가능성, 수동성, 인간관계 등을 모두 여성의 특징이라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집안일에 맞게 태어났다,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분업이다, 보수가 없는 집안일의 경험과 지식은 집밖 활동에서 쓸 수 없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얼토당토 않는 주장들 보다는 저자의 이 물음이 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 더 날카로운 애널리스트가 될 수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부모 노릇을 하면서 우리는 경제학자, 외교관, 잡역부, 정치가, 요리사, 간호사의 역할을 모두 해내지 않는가?”(64쪽)
최근 수십 년 동안 성차별을 없애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나아져 왔지만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여전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자에 따르면 여성은 일터에서 책임감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의 자리는 집이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남성보다 더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하는 능력뿐 아니라 가정을 돌보는 능력까지도 여성들은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터에 나선 현대의 여성들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남성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되면 모든 것이 충돌한다. 서로 분리돼야 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갑자기 한데 섞인다. 출근할 때 버려두고 온 사적인 자아 곁에 임신한 배까지 두고 나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장에 가정의 흔적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 이상의 그 무엇을.”(100쪽)
다시 고쳐써야 할 경제학
경제적 인간(합리성, 이기적)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경제학은 여전히 이 가정을 포기하지 않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사회속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존적 존재이며 이성과 감정을 둘 다 가지고 행동하지만 경제학은 현실의 인간을 여전히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저자가 말하듯 현실의 인간 특성을 고스란히 고려해 이론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경제이론은) 인간은 작은 아기로 태어나 쇠약해져서 죽고, 어디 출신이든, 얼마를 벌든,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피부를 그으면 살이 베이고 피가 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통점은 육체에서 시작한다. 추우면 몸을 떨고, 달리면 땀을 흘리고, 태어날 때 울고, 아기를 낳을 때 비명을 지른다. 몸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삶과 연결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인간은 몸을 삭제해 버렸다. 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253쪽)
또한 이 경제적 인간 개념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또 하나의 성별인 여성을 경제학 이론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듯 경제와 그 중심에 있는 시장을 이해하려면 “인구의 절반이 하루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들여 하는 일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글 서두에 있는 이씨가 자유롭게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이유는 하루 종일 돌봄 노동에 시간을 들이는 그의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성평등 관점에서 경제학을 바라보며 역사적으로 공고한 편견 혹은 결함있는 경제학을 다시 구성하자고 제안합니다. 인간의 관계성과 의존성, 공감과 연민/연대, 비합리성, 취약성이 고려되고 왜곡된 남성성/여성성 개념에서 탈피한 인간을 모델로 하는 경제학을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 카트리네 마르살의 이 책은 페미니즘으로 고쳐쓴 경제학 입문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이상의 훨씬 큰 문에제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페미니즘 혁명의 절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 젓는 것까지는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 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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