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가정과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 성역할 편견 등 페미니즘 논쟁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점차 피로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이 정도로 이슈가 되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성차별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를 찾는 길은 멀고 더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필요만큼 진보적이지 않다.”(157쪽)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에서 한 말은 미국 사회에 대한 것이었지만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여성들의 삶을 숫자나 통계상으로 보면 과거보다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에서 말하는 기저효과가 성평등 영역에도 적용되기에 ‘옛날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는데도 여성들이 만족할 줄 모른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페미니즘이 완벽한 이론이나 운동일 수는 없겠지만 오랜 세월 가부장제 아래서 살아온 우리 사회엔 페미니즘이 가진 한계나 결점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부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지 몇 해가 지난 요즘에도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만날 정도이니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을 없애자는 운동’은 여전히 더욱 알려져야 합니다.
자신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록산 게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결점과 한계,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결점과 한계를 인정합니다. 모든 사건 사고에 일관적이지도 논리정연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고자, 그리고 과거보다 꽤 나아졌다고 하는 사회 속에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노력하는 한 여성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지나가는 장난이고 농담인데 그냥 웃고 넘겨요. 외모로 칭찬 좀 할 수 있지 뭘 그래요?’와 같은 노랫말, ‘가해자를 염려하고 피해자의 결점을 찾아내는’ 성폭력 사건 기사, ‘여성 대상 폭력이 너무나 쉽게 소재로 사용되는’ TV와 영화 등에 대해 가볍게 넘어가지 않고 잘못된 점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급격히 변하지만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여전하고, 우리는 아직도 선조들이 싸웠던 바로 그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이어지는 성폭력 관련 판결들, 그 사건들을 다루는 기사들, 이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주변 남성 동료들의 반응을 보면 저자가 말한 의식의 진보는 우리 사회에서도 요원해 보입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선 여성들이 성차별적 사건들에 한 마디 하거나 성평등을 지지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라도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인신공격을 하기 일수입니다.
록산 게이가 소설, 영화/드라마, 법률 등에 스며 있는 여성차별 혹은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사람이야”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동일한 시선을 경험합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으니 이쯤에서 분노를 거두고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좀더 거대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유명인들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대체로 여성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째서 여성이 더 야심이 넘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표를 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했고, 집 밖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기를 쓰고 싸워야 했고, 성희롱 없는 근무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싸워야 했고, 대학이나 학과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 싸워 왔으며, 작은 자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증명하고 또 증명해 내야 했다.”(130쪽)
저자는 계속해서 인기있는 책,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에 스며 있는 성역할, 페미니즘, 여성 등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점들을 다양한 사례로 이야기해 줍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처럼 불편한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속한 ‘문화적 관습과 세계관’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록산 게이가 말한 ‘자신이 속한 젠더 포지션을 극복하고 저항’하려면 저 역시 좀 더 민감한 젠더 감수성을 가져야 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젠더 감수성이 점차 섬세해져 가고 있는 현상들도 간혹 보입니다. TV프로그램이나 강연에서 예전에는 그냥 웃고 넘어갈 만한 상황이나 발언들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공적인 토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이전보다 섬세한 젠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젠더에 대한 민감하고 섬세한 감수성은 또 다른 심각한 차별 문제인 인종에까지도 확장될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저자는 대표적으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기를 지니지도 않았는데 죽임을 당하고도 그를 죽인 사람은 정당방위였다며 무죄를 선고받은 트레이번 마틴 사건과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자행한 범인 조하르 차르나예프에 대한 대중의 동정을 비교해 보여줍니다. 성에 대한 편견만큼 인종에 대한 편견 역시 강력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미국은 원래 인종차별이 심했던 나라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제주도로 들어온 난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분열적 대응에서 인종적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 결혼으로 우리 나라에 온 동남아시아 국가 여성들에 대한 대우와 시선에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성차별 문제는 다른 차별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민감한 젠더 감수성 더 나아가 인권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록산 게이는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해야 할 때는 더욱 철저히 냉정하게 여러 차례 질문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곱씹으며 기억해야 할 명제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록산 게이가 자신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부족한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왔고 또 앞으로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보다 민감하고 섬세한 젠더 감수성을 갖춰가는 남성으로 성장해가고 싶습니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내가 페미니스트이자 솔직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쓴다. 트위터에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과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모든 사소한 것들을 다 쓴다. 블로그에 내가 요리한 음식을 올린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어 세상에 나가고 싶고, 이렇게 하면서 더 좋은 여성이 되고 싶다. 나의 현재와 과거를 솔직하게 내보이고 내가 어디에서 비틀거렸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전부 다 털어놓고 싶다.
어떤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하건 간에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의 절대적인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