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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임신 기간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 <임신! 간단한 일이 아니었군> 본문
대한민국 국회 제1야당 원내대표는 얼마 전 ‘출산주도성장’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출산장려금 2천만원,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1억원을 지급하자고 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돈을 주면 아이들이 순풍순풍 태어날까요? 돈으로 아이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 아이들을 왜 필요하다고 하는 걸까요? 경제 성장을 위해서 아이들이 필요하다는 사람을 제정신으로 봐줘야 할까요?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대책이 나옵니다. 자기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게 되는 원인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옥같은 사회에서 자기 몸 하나 추스리기도 힘겨운데 결혼은 왠말이며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왠말입니까. 아니, 이렇게 종합적으로까지 고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일단 이 책이라도 함께 읽어보시죠.
마드무아젤 카롤린이 낸 <임신! 간단한 일이 아니었군>입니다. 생명을 경제성장의 자원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김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 주장을 듣고 오마이뉴스 계대욱 기자도 만평으로 출산이 성장의 도구냐고 물었습니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인가요? 애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여기에 더해 아이가 나오기 전에 여성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9개월의 임신 기간 동안 여성들이 견뎌내야 하는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테스트기에 나타난 두줄로 확인된 임신. 생명탄생의 시작이지만 임신한 여성에겐 날벼락이기도 하면서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두 줄 생긴 테스트기를 들고 숭고하게 임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온갖 복잡한 생각에 정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딱입니다.
아내의 임신을 두 번이나 옆에서 지켜봤는데도 제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 하나 하나가 새롭습니다. 두 번이나 이 과정을 거쳤을 아내에게 미안해집니다.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졸음, 구토, 피곤함, 특히 두려움으로 병이 난 줄 알고 병원을 가보기도 합니다. 물론 ‘새 생명이 자라고 있을 뿐 지극히 정상’이라는 당연한 진단만을 받을 뿐이지만요.
남편들은 아내의 속도 모르고 축하파티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임신 1개월을 지내는 아내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헛소리야! 이건 거의 재앙 수준이라고!…잠도 제대로 못자게 될 걸? 토요일 밤이면 TV나 보면서 각자 지내게 될 거고…내 몸무게는 30kg이나 더 늘어날테고 피부도 축 처지겠지. 내 인생이 송두리째 거덜나는 거라고. 난 우울증에 빠질 거고, 당신은 어느 순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겠지. 난 그렇게 시들어가기만 할 뿐. 행복? 개나 물어가라 그래!”(21쪽)
기분이 오락가락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입덧이 시작되면 음식 냄새가 재앙으로 덮칩니다. 3개월 정도가 되면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처음 초음파 검사도 합니다. 여전히 먹은 걸 토해내기 일수인데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들으면 울화가 치밉니다. 책에 나온 남편의 모습과 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집니다.
“카롤린은 아주 잘 지내. 반짝반짝 빛이 나 보이고 왠지 고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니까. 아이 갖고 완전 피었어. 정말 광장하지 않아? 임신이 여자를 변화시킨다는게…캐롤린 챙기고 신경 써주느라 정신없어서 정말 한시도 짬이 없다니까.”(47쪽)
한 달 두 달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려는 때엔 주변 사람들로부터 하지 않아도 될 조언들을 듣게도 됩니다. 아는 친구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유산했다든지 등의 이야기들 말이죠.
5개월쯤 되면 출산 육아와 관련된 것들로 머릿속이 가득차게 됩니다. 게다가 만나는 친구들은 임신한 친구들에게 변비, 정맥류, 튼살 등 듣기 싫은 말들만 골라서 하곤 합니다. 6개월쯤 되어 눈에 띄게 배가 나오면 더 곤란한 일도 겪습니다. 신기하다며 배를 만져보겠다는 주변 사람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할 정도로 배가 나옵니다. 운전도, 책상 앞 작업도 힘들어지고 몸에는 튼살과 셀룰라이트가 그득그득 해집니다. 작가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만 10여분이 걸려 시작부터 진을 빼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임신한 모습을 보며 축하하고 부러워하는 친구에겐 사실 속마음을 말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천만에, 미칠 지경이야. 병든 강아지처럼 시름시름 앓기만 해. 등 아프지, 시도 때도 없이 방귀 나오지, 거기다 다리털도 못 깎는 신세라고. 알기나 해?”(113쪽)
하지만 출산이 가까운 여성에게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모유를 먹일 것인가 분유를 먹일 것인가! 주변 사람들의 말은 마음에 쐐기를 박아버립니다.
“모유 먹일거지? 아기한테 풍만한 젖가슴에서 나오는 영양 만점 모유를 줄래, 아니면 발암성 젖병에서 나오는 쓰레기 같은 산업 폐기물을 먹일래?”(126-127쪽)
마지막 9개월째는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출산준비 가방을 챙겨둡니다. 이 시기는 걱정과 불안이 극에 달합니다. 아기가 나오는 신호는 어떻게 아는지, 진통은 어떨지, 살은 빠질지, 분만은 어떻게 하는건지, 아기를 제대로 안을 수 있을지…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통이 찾아옵니다.
배가 나오고 손과 발이 붓는 자신을 보며 자신은 아름답다는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는 여성들의 마음이 어떨 것인지 저로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두 번을 곁에서 지켜봤는데도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이 이렇게 힘겨운 것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여성입장에서 이렇게 전체 기간을 정리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임신 기간에 아내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싶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아기가 자라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두가 그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당연한 것도 아닙니다.
온통 혼란스럽고 낯선 감정과 생각, 예쁨과는 멀어져만 가는 신체변화, 주변과 사회의 노골적인 압박까지 견디며 긴 시간을 통과한 아내를 둔 남편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둘째치고 임신 기간에만 이렇게 힘이 듭니다. 출산률이 낮다며 걱정할 수는 있지만 대책을 세울 때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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