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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100가지 궁금증에 답하다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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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100가지 궁금증에 답하다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

초원위의양 2018. 9. 20. 01:58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

작가
쥘리에트 모리요, 도리앙 말로비크
출판
세종서적
발매
2018.06.04.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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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두 나라 정상의 세 번째 만남과 그 결과에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에서의 해방, 열강들에 의한 분단과 전쟁 이후 지난한 갈등 관계를 수십 년 동안 이어오던 두 나라가 드디어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최근 정상회담 모습을 보면 두 나라가 언제 전쟁을 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지난 4월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올해 1차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소탈한 말투에 친근감을 느낄 정도로 남쪽 사람들의 심리적 긴장도 상당히 해소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북쪽 나라를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여전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한’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전쟁과 전후 시기를 거쳐온 세대에겐 북한은 여전히 때려잡아야 할 공산당 혹은 빨갱이들의 나라일 뿐입니다.

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세대의 자식 세대인 저도 북한을 하나의 독립국가라기보다는 언젠가는 우리가 품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일부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정도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 공산당이 싫다던 이승복 어린이 신화를 들었고, 군대에 징병당해서는 철책 근처에 머무르며 대치하고 있는 저 너머 사람들이 우리의 주적이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라긴 했지만 독일처럼 흡수 통일을 하게 되면 독일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겪게 될거란 이야기를 들으며 통일은 섣불리 하는게 아니란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기쁘고도 슬픈 행사를 보게 될 때는 그래도 통일은 되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손자까지 세습하며 인민들을 수탈하는 체제를 생각하면 북한의 지배층을 좋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나라 북한입니다.

막연한 이미지로만 인식해오던 ‘북한’을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웃 나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분단된 한 민족이라는 과거의 집착을 내려놓고 이제는 흘러온 시간만큼 달라진 차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단 후 대한민국 만큼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변화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합니다.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이라는 책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해하는 첫 발을 내딛어 봅니다.

이 책은 북한전문가인 쥐리에트 모리요와 도리앙 말로비크가 수 년간 취재하여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저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과 한국 중심의 편향된 정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역사, 북한의 정치, 지정학, 북한의 최근 상황, 경제, 사회와 문화, 선전 7가지 분야에 대한 총 100가지 궁금함에 개괄적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상세한 정보보다는 전반적인 모습을 그려봄으로써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언론 종사자들은 상사들로부터 더 충격적인 뉴스를 제공하라는 상시적 압박을 받는다. 정보망은 제한되어 있다. 북한을 분석하는 일은 종종 공식적 출현이나 텔레비전 연설, 혹은 북한 언론, 또는 북한을 도망친 탈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공식 석상에서 한 인물이 사라지면 즉각 처형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활동가들에 근거한 이 정보들은 대개 한국 정보부에 의해 발표되고, 이어 미디어에 의해 최소한의 거리도 두지 않고 확산되고, 극화된다. 소문은 세계를 돌고, 매번 더 비열한 묘사들이 덧붙여진다.”(295쪽)


저자들은 그 동안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혹은 황당 무계한 정보들이 나돌았던 이유를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모든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한 정보들이 이렇게 왜곡되거나 날조되어 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두 국가가 직접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서로에 대한 이와 같은 오해들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와 ‘지정학’ 부분에선 사실 크게 새로울 만한 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정치’, ‘현실’, ‘경제’를 다룬 2, 4, 5부입니다. 정치 부분에선 최근 김정은 위원장으로 이어진 후계 준비, 김정은 위원장의 등장으로 달라지고 있는 정치 구조,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하는 세력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권력 승계 작업이 생각했던 것보다 치밀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북한의 지배체제가 쉽사리 붕괴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체제에 반하는 이들은 숙청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하는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다가 특별사면으로 출소해 살아나온 탈북자의 증언은 충격적입니다. 사형을 피해 수용소에 간다고 해도 살아나올 확률이 매우 적으며 이 증언자의 경우 수용소 생활을 마친 후 몸무게는 30kg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하니 그곳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할 지 짐작할 만합니다.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과거와 그리 많이 달라지진 않은 듯 합니다.

숙청과 함께 유아기부터 받는 철저한 교육, 개인간 감시 체계는 북한 체제를 유지해 온 주된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북한에서도 과거 강조되던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들의 잘살고 싶은 욕망이 북한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도 이 변화의 조짐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고 개인 통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 보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지배 세력이 어떤 방향으로 북한을 이끌어 갈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경제 부문에 있어선 2000년대 초 소규모 사설 시장을 허용하였고, 요식업, 교통 분야에선 자본주의적 모델이 더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외화를 거래해 주던 환전상들이 대출도 해주고 있고, 여전히 금융거래가 불법이기는 하지만 시장경제의 싹을 받아들인 이상 금융 흐름을 통제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북한에도 ‘더 벌기 위해 더 일한다’는 생각이 세를 얻고 있다고 하니 자본의 힘이 북한의 경제와 사회구조를 어느 정도까지 변화시킬 지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날, ‘시장 세대’의 구성원들은 이념에 대한 무관심이 커졌다는 점을 공유하며, 확실한 가치인 돈을 통해 삶을 즐기려 한다. 만약 그들이 정권에 충성을 바친다면 이는 정치적 신념보다는 민족주의에 의한 것이다. 15년 후쯤 그들의 자식들, 즉 최고의 안락함 속에서 자라고, 바깥 세계의 이미지를 접하고, 가족 내에서 이념의 세뇌교육을 받지 않은 그 아이들은 분명 ‘다른 것’을 갈구할 것이다. 더 많은 정상, 여행, 여가, 사업할 자유 등… 어쩌면 그때가 정권의 다음 도전이 될 것이다. 즉 이 신세대의 갈망에 답하고, 그들의 꿈에 맞는 활력 넘치는 세계를 제공하는 것. 물론 권력을 잃지 않고.”(277쪽)


최근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유지되고 두 나라의 교류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양국의 관계가 진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북한쪽의 반응을 보면 체제 유지를 위한 협상 카드로 사용하던 핵무기의 효력은 다했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내어줄 것은 과감히 내어주고 체제보장과 경제라는 실익을 얻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들이 언급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들의 갈망에 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이 주안점을 둬야 하는 영역은 인터넷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구가 많지는 않지만 “과학과 신기술에 매료되는 한국의 ‘괴짜’ 혼은 38선 남북이 똑같다.”는 저자들의 말처럼 북한 인민들에게까지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될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정권은 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