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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을 기억하며 <사소한 부탁>을 읽다

초원위의양 2018. 9. 7. 22:48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작가
황현산
출판
난다
발매
2018.06.2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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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님,

함께 읽은 책의 감상을 나누며 책을 소개하는 <복팟>이라는 팟캐스트에 참여하고 있는 아내를 통해 선생님이 쓰신 <밤이 선생이다>를 몇 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과 문제들을 바라보며 써내려간 선생님의 글들에서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느꼈습니다. 참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 즐거워하며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기도 했습니다.

두어 달 전엔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책의 번역자에 황현산이라는 반가운 이름이 적혀 있어 내용은 알아보지도 않고 읽기 목록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거실 식탁 위에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라는 책이 한 권 놓여 있는 것을 봤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해 줬던 제 아내가 구입한 것이더군요. 한 번 뵌적도 없는 분인데 이전 에세이집에서 받았던 좋은 기억이 떠올라 참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문학평론가 황현산 별세’라는 뉴스가 스마트폰 알림으로 날아왔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글을 통해 좀 더 알아가고 싶었던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안타까웠습니다. 이 세상에서 황현산이라는 사람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선생님을 더 알고 싶은 제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더 다가가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소한 부탁>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두고 선택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겐 선생님이 세상을 뒤로 하시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남기고픈 이야기를 담은 유언처럼 느껴집니다. <밤이 선생이다>에서 선생님께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사회문제와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저도 역시 감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 생각했었습니다.

평소 생각지도 않던 것들에 갑작스럽게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선생님은 ‘문학적 시간’이라고 하셨죠. 또한 이를 나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역사적 시간’, ‘깨우침의 시간’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오랜 물음과 고뇌를 통해 남기신 또 하나의 책 <사소한 부탁>을 들고서 문학적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5년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남북관계, 무너져 가던 민주주의, 5.18 민주항쟁의 의미를 지우려는 세력들 등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던 문제들이 지난 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어떤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도록 준비된 악덕”을 철저하게 없애기까지는 치열한 싸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악마가 한 짓에 비유하셨던 세월호, 용산 참사, 쌍용차 사건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우리 마음을 무디게 만들고’, ‘용의주도’하고, ‘섬세한’ 악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매우 ‘친화력’있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섬뜩해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악마적 사건들을 바라보시며 뭐라도 해야 한다고 쓰셨던 글귀를 마음에 새깁니다.
 
“물론 나는 악마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악마만이 저지를 일을 이 땅의 사람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악마의 처사였다면 악마의 연구로 끝날텐데, 그것이 우리의 죄이니 우리는 이제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리본을 달건 촛불을 들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75쪽)


삶의 기본 터전이 되어야 할 집이 끝없는 탐욕의 먹이가 된 우리 사회. 선생님은 아파트와 그곳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간이 인간으로서 끌어안아야 할 모든 것을 몰아내고 제 번뇌와 오욕만을 가두어둔 지옥”이라고까지 쓰셨습니다. 심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부동산에 대한 광적인 집착, 그리고 그 안에서 아귀다툼하듯 살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선생님께서는 2002년 월드컵 때 배타적 감정 같은 것 없이 모두가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고 해방된 생명력을 느꼈던 때를 회상하셨습니다. 그리곤 그 기억속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재확인하며 “옆 사람을 끌어안는 우리에게서 거대한 문화 하나가 솟아나고 있다. 이 문화와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153쪽)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5년 ‘헬조선’에서 일어났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고영주 방송문화진응위원회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 모욕, 문화 예술인들에 대한 검열 등을 보시며 토론이 사라진 우리 사회가 지옥이라는 점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헬조선’이라며 지옥을 자각하고 있기에 우리가 지나온 공통체의 역동적 역사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예언을 철회하지 않으셨죠.

선생님의 예언이 실현될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헬조선’을 자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모욕했던 고영주 이사장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 여전히 진정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몽니를 부리는 제1야당 원내대표 등을 보고 있자니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촛불로 힘겹게 되돌린 키를 또 다시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저와 같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민주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및 국가의 리더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인성’이라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 통찰력 있게 지적하셨듯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구성원들의 인성입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글에서 저를 비롯한 시민들과 문재인 대통령 이하 시민들의 머슴들이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을 확인하길 바랍니다.


“인성 교육이란 폭넓게 말하면 인문학 교육이고,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다. 사람은 산업 역군이기 전에 사람이고 국가의 간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벌써 사람을 배반한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진실이고,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진실이다.”(113쪽)

황현산 선생님. 선생님을 어느 자리에서건 한 번쯤 만나뵙고 싶었는데 이제 그럴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책들을 하나 하나 찾아보려고 합니다. 책은 도끼라고 말했던 니체를 인용하시면서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127쪽)고 하셨죠. 선생님께서 남기신 ‘책이라는 이름의 도끼 앞에’ 저를 바쳐볼까 합니다. 도끼에 찍혀 넘어졌다가 새사람이 되어 일어나기 위해서요.

축제와 같이 선생님 책들을 읽고 조금은 더 새로워진 모습으로 또 편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