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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시장만능 사회에서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 본문
인생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발견해가는 혹은 인정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으로 제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하고 있는 일, 가족 돌봄, 사회에의 기여 혹은 봉사 등을 통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계좌의 잔고와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시대흐름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자급자족'이란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된지 오래인 요즘 상품이든 서비스든 소비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산업화 이전엔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대 산업사회를 지나오면서 소비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40년 전 이반 일리치는 '현대화된 가난'이라는 표현으로 자유와 생산의 기쁨은 사라지고 모두가 획일화된 경험을 하며, 상품이 넘쳐나지만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 시대를 정의했습니다. 세계적 사상가 반열에 오른 이반 일리치는 1978년 <누가 나를 쓸모 없게 만드는가>라는 짧막한 에세이에서 성장으로 인한 풍요속의 빈곤과 그 안에서 무력해진 인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 어디서든,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공인된 전문가의 허가 없이 집을 짓거나 아픈 사람을 치료했다가는 법을 우습게 아는 겁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낼 자신감을 상실했다.”(10-11쪽)
매일 거대한 경제구조에 발맞추기 위해 행진하는 다수의 무리에 합류하며, 자신의 능력을 낙관하는 믿음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틀에서 빼낸 듯한 미디어가 무한 침범하는 일상에서 청중이자 고객, 소비자로 전락한 인간. 이반 일리치가 봤던 시대의 모습이 40년 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아니 더 심화되었기에 이 책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자율성을 잃은 채 무력하게 시장에 의존하는 우리들
이 책에서 이반 일리치는 상품 중심의 시장 중심 사회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상품에 덜 의존하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모험을 선택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일상을 보면 인간들은 시장 중심 구조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아예 시장과 일체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상품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집을 지을 힘도 없게 되는 무기력이다. 땀을 흘려야 기쁨을 얻는 인간의 조건이 소수 부자만 누리는 사치스러운 특권이 된다.(중략) 새로운 상품이 생겨나 전통적인 자급 기술이 쓸모없어질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직업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노동시장이 확장되면서 없어져 버렸다.”(33-34쪽)
이 역시 지금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인간이 스스로 움직여 필요를 만족시키는 시대를 열기 위해선 대중이 자신과 이웃의 만족을 위해서, 권력이 생산하는 상품의 최대 생산량을 파악하고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절제가 시장 의존 사회를 벗어나는데 기반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후기 산업사회의 거짓 풍요와 자유의 소멸을 막기 위해선 한 사회가 생산할 부와 일자리에 한계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부와 일자리가 공평하게 배분되고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풍요의 한계를 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량 생산품은 한계를 모르고 넘쳐나고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가난하게 만드는 부'의 생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자리는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규모의 추가 정부 예산을 급히 투입할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풀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능사일까요? 정부의 경제정책 입안자,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 필요한 것은 지금의 무한 상품 소비 시대를 먼저 돌아보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동 시장에 연연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을 탐구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문가가 대중을 불구로 만들다
일리치는 20세기 중반을 '인간을 불구로 만든 전문가의 시대'라고 정의했습니다. 스스로를 각종 구속에 가두며 살아온 시민들의 안일함을 먹고 교육자, 의사, 사회사업가, 과학자 등 전문가들이 시대를 지배해왔다는 것인데 상당히 수긍이 됩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딱 이렇지 않은가요? 수동적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전문가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자율성을 잃은 소비자들인 것이죠.
“갈수록 광고 문구가 필요를 만들고, 소비자는 전문의, 미용사, 산부인과 의사 등 수십 명의 치료 전문가가 내리는 지시를 따라 구매를 하게 된다. 광고가 되었든 전문가의 처방이 되었든, 모임에서 토론을 하든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하는 사회는 개인이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행동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문화에서 나온다. 이런 문화에서 소비자는 스스로 배우기보다 만들어진 필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데려다 필요를 배우는 데 유능한 학생으로 만드는 사회에서는 스스로 경험한 만족에 기반해 자신의 욕구를 만드는 능력은 보기 드물어진다.”(72쪽)
상품 중심의 시장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상품 중심의 시장 의존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우리는 단순한 소비자로 태어난 것이라는 세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원래 생산의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과거 마을 공동체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활동들을 통해 사회 전체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해왔던 경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참여하거나, 참여하고 싶어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기업의 상품과 전문가의 서비스가 대체해버렸기에 인간의 자율적 행동이 마비되었다(일리치는 이를 '반생산성'이라 표현)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자율성 상실을 경제성장의 부작용, 자원 부족, 공해 등의 문제 때문이라 혼동하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인간의 자율적 필요를 상품이 대신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일치리는 노동에 관해서도 “노동은 더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 노동의 가치나 만족을 느끼지는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언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속한 문화에서 얻을 수 있는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자신의 필요를 만들지 못할 때 더 이상 인간으로서 인식될 수 없다. (중략) 지금은 남자건 여자건 모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도구를 작동하여 생산한 표준화되고 쪼개진 상품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지금까지 인간과 문화의 진화를 촉진시킨 도구를 직접 사용해 얻는 만족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욕구와 소비는 수십 배가 증가했지만, 도구를 다루며 얻는 만족감은 드물다. (중략)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생기와 만들어진 물건이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며 균형을 이루는 동안에만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쉽게 잊힌다.”(89-90쪽)
그래도 작은 희망의 빛줄기가 보인다
그래도 최근엔 우리 사회에 작은 희망이 보입니다. 전통적 일자리가 늘어나기엔 근본적 한계가 있는 시대에 들어섰기에 실업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기존의 상품의존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도 몇몇 곳에 누구나 도구를 사용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팹 랩(Fab Lab)들이 도입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정부 일자리 예산을 이런 곳에 확대해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팹 랩은 일반인 아무나 이용할 수도 있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창업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실들이 확대되어 대중화된다면 일리치가 말했던 상실한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 얻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노동의 기쁨과 가치를 되찾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표준화된 상품 중심의 시장 의존 사회에서 이렇게 한 걸음씩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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