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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자동차에서 운전대가 사라진다면? 본문
이른 아침 울리는 알람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뜹니다. 주말에 다녀온 여행의 여독이 남아 있는지 몸이 찌뿌듯합니다. 그렇다고 월요일 아침부터 지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스마트폰 어플로 자동차를 미리 현관 앞으로 이동시켜 놓습니다. 집을 나와 스스로 이동해 온 자동차에 오릅니다.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에 가입해서 출퇴근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자동차인데 아직도 운전대가 사라진 자동차에 오르는 게 어색합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자동차를 사느라 목돈이 들어가고 유지하는데에도 세금, 보험료, 수리비 등 지출되는 항목들이 많았는데 이제 간단히 이용료만 지불하면 됩니다. 게다가 이 업체에선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자동차만 제공합니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어 스마트폰에 원하는 목적지를 입력하기만 하면 자동차 스스로 길을 찾아 갑니다.
간혹 운전대가 있는 클래식카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걸 보면 운전을 즐기던 시절이 조금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도, 취미 생활을 할 수도, 급한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어 이 서비스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또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변한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살아서 이런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 출신의 자동차 전문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페르디난트 두덴회퍼가 <누가 미래의 자동차를 지배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예측한 기술 발전 요소를 바탕으로 미래의 자동차 이용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저자는 1)전기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동력 기술, 2)인공지능이 적용된 자율주행 기술, 3)소유에서 공동이용으로의 인식 변화로 자동차 산업이 또 한 번의 근본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인 독일의 자동차 전문가가 자국의 자동차 제조사 및 부품 업체들에게 전하는 제언입니다. 애플, 알리바바, 바이두, 구글, 테슬라, 우버와 같은 예상치 못한 경쟁자들이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전통적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던 기업들이 사업 모델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며, 어떤 미래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저자는 조언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국민 경제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나라 자동차 산업 관련 기업들 혹은 종사자들도 두덴회퍼의 분석과 예측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기술/문화 트렌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생활 공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개인들의 이동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을 변화시켜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고급형보다는 보급형 혹은 대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용자들의 '감성'입니다.
“그래도 불변의 진리가 있다. 느낌을 주지 못하는 자동차는 구매자를 찾기가 극히 힘들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기술 수요가 아무리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쓰비시 i-MiEV 같은 최초의 대량생산용 전기자동차들은 이 사실을 뼈아프게 체험해야만 했고 무엇보다 이 점 때문에 시장에서 고배를 맛봤다. 반대로 테슬라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는 처음부터 감성에 집중해 자동차를 내놨다.”(30쪽)
감성 측면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자동차와 인간이 상호작용을 하는 기계적/소프트웨어적 인터페이스 디자인, 외부 디자인 뿐만이 아닌 자동차 실내의 완전히 새로운 공간 디자인이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제품과 서비스에 어떻게 실현해 고객들을 만족시키느냐가 해당 기업들의 역량일 것입니다.
저자는 내연기관의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친환경차로의 급격한 전환을 꾀하고 있는 중국, 최근의 디젤 게이트, 심각해지는 대도시들의 대기오염과 그에 따른 배기가스 규제 등을 고려하면 이것이 과장된 예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초의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부터 심장의 역할을 해왔던 엔진을 무엇이 대체하게 될까요? 배터리? 연료전지? 이럴 땐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가보고 싶어집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자동차가 우위를 점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두덴회퍼는 테슬라의 모델 S(배터리 전기자동차)와 도요타의 미라이(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비교하며 테슬라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테슬라처럼 주행거리, 배터리 충전시간, 인프라 제공 등을 통해 고객들이 열광하게 할 수 있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새로운 심장이 자동차들에 이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배터리 기술에서의 어려운 도전 과제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아 저자의 예상이 상당히 낙관적이런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자동차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스스로 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고, 이와 함께 자동차의 소유 개념은 이용 개념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합니다. 부분적 자율주행 기술이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 뿐만 아니라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업체들에서도 이미 개발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자율주행으로의 변화는 명백해 보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전통적 자동차 제조사와 새로운 도전자들과의 경쟁입니다.
“디지털 제품과 인공지능이 핵심 역량인 이들 소프트웨어 그룹과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지금까지 자동차 개발이나 차체 조립, 차체의 기계적 구성요소에는 경험이 전무하다. 이들은 비록 이쪽 분야에선 새내기지만, 업계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 업체들로부터 고객을 가로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진지하게 상대해야만 한다. 과거 모터보트 제작사들이 범선 제작사들의 고객을 빼앗아간 것과 마찬가지다. 산업화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숱하게 많이 벌어졌다.”(129쪽)
자율주행 기술은 사람들에게 '안전', '시간', '미학'을 선물할 것이라는 저자의 언급을 전통적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율주행 기술에 인터넷의 연결성의 조합으로 자동차 이용 형태가 변화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유경제가 또 다른 착취 구조가 된 듯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버 등을 넘어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유경제가 자동차 산업에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빠진 것이 있습니다. 산업 및 기술 분야에서의 논의는 법률적 그리고 윤리적인 부분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기술의 적용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의 기술 개발자들, 정책입안자들,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사안들입니다.
“자율주행은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것들이 포함돼 있으며,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율주행은 일련의 법적, 윤리적 문제들로 우리와 충돌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배상 책임을 질 것인가? 어떤 정보보호법과 인격권이 지켜져야 하는가? 예기치 못한 교통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규칙과 원칙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 틀을 아직까지는 직접 형성할 수 있는 한, 어서 서둘러 행동에 나서야만 한다. 기술 발전이 일단 그 날개를 펼치기 시작하게 되면, 뒤늦은 논의는 아무 소용도 없게 될 것이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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