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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마땅히 죽을 만한 자들이 있을까? 본문
어떤 사람의 생명을 해치거나 혹은 인생을 망칠 정도의 해를 입힌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할까? 그 사회의 법에 따라 정당하게 재판을 하고 형량을 선고하고 그 결과에 따르게 하면 되는걸까? 사람의 생명 혹은 인생을 법정에서의 형량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일까? 인터넷에 항상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쉼없이 손바닥에 올라오는 강력 범죄 뉴스와 그에 대한 처벌 소식을 듣다보면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를 읽고나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적 처벌과 형벌제도, 특히 사형제도의 모순, 진정한 속죄와 용서 등을 고민했었다. 최근 출판된 소설이고 세계일보사가 주관하는 문학상(13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저스티스맨, 도선우 지음>을 읽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겹쳐진다.
두 소설이 정확히 같은 내용이나 주제를 다룬것은 아니지만 <저스티스맨>을 통해서도 <공허한 십자가>에서와 같이 범죄, 처벌, 속죄 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에 더해 <저스티스맨>에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감정적 댓글 싸움, 가상공간에서 주어지는 익명성의 두 얼굴, 언론과 휘발성을 갖는 인터넷 여론, 사법 및 경찰 제도의 허점, 정의에 대한 생각들을 뽑아낼 수 있다.
일곱 건의 살인이 일어나는 동안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 인터넷에 급속히 퍼지는 연쇄살인 사건 현장 사진.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닉네임 저스티스맨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까페에 사건의 동기와 사건들의 연관성을 추측한 글들이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대중들이 저스티스맨의 가설에 열광하면서 까페에는 수십만 명이 몰려들며 사회적 이슈가 된다.
별다른 꿈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육군부사관학교에 지원한 '그'. 부사관으로 중사까지 근무하다 전역해 별다른 기반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보험설계사가 된다. '그'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저 그런 일상에 찌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어느 날 회식 때 과하게 취한 나머지 인사불성이 되어 길거리 화단에서 토하고 변도 보고 쓰러져 잠들고 만다. 어찌보면 이 또한 여느 일상의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틑날 회사에 출근한 '그'는 '오물충의 만행'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발견한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자 그의 신분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기 시작한다. 결국 오물충이 '그'라는 것이 알려지고, '그'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가족들의 비난에 표현할 수 없는 모욕감을 안고 '그'는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연쇄살인의 피해자들이 이 '오물충'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까페 운영자 저스티스맨의 주장이었다. 저스티스맨은 일곱 건의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소상한 근거들을 제시하며 누리꾼들을 설득해 간다. 오물충 사진을 처음으로 인터넷에 올린 고등학생, 오물충의 정체를 밝힌 오물충의 동창생, 이 사건을 기사로 써 전국민에게 오물충을 알린 인터넷 언론사 사회부 기자가 차례대로 피살되었다고 저스티스맨은 썼다.
이 세명의 피살자들은 죽을 만한 만행을 저지른 것일까? 일상에 찌들어 살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어보려다 한 두 번쯤 '그'와 같은 실수는 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이 실수로 인해 '그'처럼 인생 전체가 망가지게 되었다면 그 가해자들의 책임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사진 한 장을 인터넷에 올리고 흥미거리로 쓴 기사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누리꾼들은 주로 “단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한 실수 혹은 고의를 저질러도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빳빳이 들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38쪽) 라며 사회의 현실을 씁쓸해 했다. 그런데 네 번째 피살자에 대한 글에서부터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성년 성매매 동영상에 나온 한 여고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네 번째 피살자는 수리하던 휴대폰에서 우연히 이 동영상을 보고 성인사이트 운영자인 친구에게 보낸 전자회사 서비스센터 직원이었다. 이 동영상을 친구인 네번째 피살자로부터 건네받아 이를 인터넷에 처음으로 게시한 성인사이트 운영자가 다섯 번째 피살자.살인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오물충의 복수란 개인적 관점에서 허술한 법망의 대리 집행자 탄생이라는 사회적 관점으로 변화된다.”
저스티스맨의 까페에 달렸다는 댓글들을 읽어가는데 마치 엊그제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실감난다. 이제 연쇄살인범은 마땅히 죽어야 할 놈들을 처단하는 킬러라고까지 불리며 누리꾼의 지지를 얻어간다. 하지만 여섯 번째 피살자인 청소년 성매매 영상을 찍었던 중년의 국어교사에게 중학생 딸이 있었다는 저스티스맨의 글은 누리꾼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고 그에 따라 반응도 엇갈렸다.
“어떤 누리꾼은 자신한테도 중학생 딸이 있으면서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과 청소년 성매매를 일삼는 파렴치한의 죽음을 막무가내로 통쾌해했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신분과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아내의 심경과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딸의 형편 때문에 못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중략)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 죽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그 어떤 이유로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었다.”(118쪽)
어찌보면 해묵은 논쟁이지만 여전히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해법은 없는 문제가 아닌가. 소설은 이 사건에 대해 이어지는 누리꾼들의 댓글 싸움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익명성이 허용된 가상 공간에서 현실의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우리 사회 누리꾼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생생하다.
살인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섯 번째 피살자가 살해되었던 장소인 한 펜션과 관련되어 있는 세 명의 사람이 더 살해된다. 그 펜션 주인을 농락했던 여행자 까페 운영자, 사회적 이슈가 된 저스티스맨의 까페를 비판했던 기초단체장을 살해했던 건달, 이 기초단체장과 연결되어 있던 국회의원까지. 소위 모두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 살해된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는데…
각 살인 사건에서 피살당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분명히 '나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잘못을 목숨으로 바꾸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사법제도의 허점을 노리거나 사법기관에 힘을 행사해 처벌을 빠져 나가는 이들, 혹은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인가를 묻게 되는 잔혹한 범죄자 등을 보게 될 때면 감정적으론 킬러의 출현을 바라게도 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속죄인지 참 어려운 문제다.
이에 더해 소설에서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물결치는대로 휩쓸려 다니는 누리꾼들의 모습을 통해 자그마한 스마트폰 안에 세상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나의 모습 또한 돌아보게 된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붕어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두각시처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뜨는 기사만 수동적으로 클릭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만 취향대로 골라서 읽다 보니 그것이 오로지 그들이 아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을 따름이었다. 타자의 숨겨진 사생활이나 파헤쳐 먹고사는 자들이 키보드를 두들겨 올리는 활자가 곧 이 세계의 실체라고 믿고 사는 붕어 인간들.”(241쪽)
저자는 각 살인 사건이 인물, 장소, 사건 등의 단서들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구성했다. 책을 들고는 마치 물 흐르듯 잘 짜인 각본으로 만들어진 추리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내리달아 읽었다. 스토리 자체도 재미 있고 그 안에서 제기하는 사회적 물음들도 의미가 있는 매력 있는 소설을 만나 기쁘다. 도선우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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