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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문재인정부 일자리 대책에서 빠진 것 본문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If a man will not work, he shall not eat"
신약성경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개역개정)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 말을 했던 사도바울이 <노동없는 미래>를 읽는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이 표현을 공산주의의 원칙으로 삼아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노동에 높은 가치를 뒀던 레닌이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궁금합니다.
매일 노동과 돈을 맞바꾸며 살고 있는 제게 '노동없는 미래'는 항상 꿈꾸지만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해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어주고 원하지 않게 이상향에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몰린 노동없는 미래는 '실직'이라는 두렵고도 슬픈 미래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요? 팀 던럽은 인공지능, 로봇 혹은 다른 어떤 종류의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중심이 된 급료를 받는 일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인가라는 물음 대신 일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일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고 유용한 부의 재분배 방식이 아니다. 이제 일은 최저 생활 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으며, 그 몸부림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처절해져 가고 있을 뿐이다."(16쪽)
일을 바라보는 위와 같은 관점은 제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리가 굳이 일하지 않아도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일의 과거와 현재, 기술과 일자리의 관계, 기본소득 제도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불안감의 뿌리는 일자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
고대에 '노동'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었는데 반해 '일'은 자유인이 온전한 시민권과 인간적 성취를 추구하는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이 경계가 희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 혹은 노동이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애덤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를 거치면서 노동은 개인적 생존 차원을 넘어선 유익하고 '생산적'인 일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자긍심을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은 상품이 되었고, 일자리는 귀해졌습니다. 때문에 고용인과 고용주의 불평등한 관계는 심화되었습니다. 여기에 막스 베버의 '개신교적 노동 윤리'가 등장해 자본주의와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천직 혹은 소명이란 개념이 등장합니다. 천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일을 기계들이 대신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라면 아마 기꺼이 로봇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럴듯한 상상입니다. 기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진 불안감의 뿌리는 일에 대한 관점에 있습니다.
"우리 삶을 일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그 일을 앗아가는 모든 기술을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이는 현재 우리의 경제적 행복이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가진 일자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47쪽)
기술과 일자리, 그리고 기본소득
저자는 묻습니다. "과연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인가? 그리고 과연 내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자동화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일의 미래와 관련되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고용의 미래'라는 보고서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살펴봅니다. 그러면서 '자동화와 노동이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면서 생산성과 수입을 증대시키고 노동 수요를 늘린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양쪽의 입장엔 각각의 전제와 가정이 있기 때문에 전망도 엇갈릴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팀 던럽은 "인간이 미래에 관해 얘기하면, 신들이 웃는다"라는 중국 속담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증거들을 면밀히 살펴 가장 그럴듯한 미래를 추측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들에는 많은 변수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여지가 항상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인가 하는 의문 속에 갇혀 있지 말고, 일의 미래에 대해 더 나은 사고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무도 우리가 겪을 커다란 변화를 부정하지 않으며, 그래서 의문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맞춰지게 된다. 우리는 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걸까?"(130쪽)
저자는 자동화 시대의 일자리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기본소득을 말합니다. 뜸금없는 것 같지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설득력이 있습니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사람들이 낭비하고 나태해지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우려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로 인한 일자리 감소 및 실업에 대처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입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미래로 돌아가는', '탈 노동'이라는 세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할 것인지, 복지와 다양한 노동 보호 정책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유급 고용 중심 체제를 벗어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을 꿈꿔볼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의 재능을 소득을 올리거나 이익을 내는 데 쏟지 않고 개인적 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세상, 또 급여나 각종 수당을 못 받게 되거나 일자리 자체를 잃게 될까 두려워 늘 시간 맞춰 출퇴근하고 온종일 뼈 빠지게 일하는 게 아니라 가족 및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상 말이다."(222쪽)
말미에 인용된 제임스 퍼거슨의 주장이 신선합니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배부르게 해줄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고 살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는 격언은 저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개념입니다. 하지만 제임스 퍼거슨의 주장처럼 지구촌 전체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일정 몫을 사람들이 나누어 받게 된다면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울 필요 없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자리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저자가 제안하듯 '탈 노동'의 미래에 대해 상상해 보고 논의해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정부에서도 일자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일'에 대한 개념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조금 더 나아가 '일의 대안'을 찾아보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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