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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식물세계에서 찾은 인류 위기 해법 본문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호모 사피엔스의 일종인 동물입니다. 다만 다른 동물들보다 지능이 높고 언어와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지금은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죠.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동물적 인간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자 최문형님은 책 <식물처럼 살기>에서 인간의 '동물화'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데,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어서 잔잔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근대, 현대에 이르러 인간들은 자신들의 부도덕, 탐욕, 폭력과 공격성 등을 약육강식, 적자생존 등 동물세계의 원리로 합리화해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지구도 엉망이 되었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했습니다.
“동물과 닮았다는 인간이 주인이 된 지구는 전쟁, 살육, 테러, 총기난사, 난민, 영토분쟁, 종교분쟁, 각종 바이러스의 창궐, 토양과 해양의 오염, 미세먼지, 온난화 등등으로 아주 만신창이가 되었다. 동종끼리의 전쟁 타종의 착취로도 성이 안 찼는지 인류는 생명의 터전인 지구조차도 마구 다루었다.”(17쪽)
인간은 식물들에게 배워야 한다
저자는 동물적 인간들이 둔 자충수를 무르기 위해선 기존의 동물적 인간 개념에서 벗어나 지구를 온통 뒤덮고 있었으나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존재인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존의 동물적 인간 사회 개념을 벗어나보자는 의견은 신선하다 생각했지만 식물들의 지혜를 배우자는 것에 대해선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능을 가진 동물들처럼 어느 정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식물들에게서 지혜를 배운다니요. 식물인간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숨만 쉬고 살아가는 식물들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가지 식물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생각외로 인간이 식물들과 항상 함께 있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었던 나무들, 인간에게 행복과 기쁨뿐 아니라 유용함도 제공했던 꽃들, 무엇보다 인류의 문명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곡물과 채소,과일 등을 보면 식물과 인간의 관계는 동물들보다 더 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식물들을 그 동안 얼마나 하찮게 여겨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알고보면 식물은 인간과 지구상 모든 생물에게 산소와 수분, 깨끗한 공기를 공급하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특히 인간에겐 '공기와 물, 꽃과 열매, 건강한 흙, 약재' 등 수 없는 유익을 제공합니다. 저자가 대표적으로 예로 든 각종 치료제, 고추, 커피, 카카오, 코코넛 등이 없었다면 인간들이 누리는 행복은 심각하게 쪼그라들었을 것입니다. 이에 저자는 말합니다.
“(식물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엄청난 초능력자다. 식물에게는 모든 것이 풍부하다. 자기가 충분히 쓰고 누리고도 나누어줄 여유가 있다. 우리도 그렇게 넉넉하게 살 수 없을까? (중략) 양로원에서 미용봉사를 하는 분, 김치와 밑반찬으로 고아원을 방문하는 분, 소외된 이들에게 지식나눔과 의료봉사를 하는 분들…(중략) 이런 작은 연민과 나눔이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중략)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주진 못할지라도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눈다면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누군가의 '보리수', '사과나무', '말 없는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식물처럼, 나무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53-54쪽)
식물 세계의 공생과 생존경쟁
한편 식물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물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계를 둘러보면 식물과 동물의 공생 관계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저자는 식물들의 수분을 예로 들어 그 신비로움을 설명해 줍니다. 게다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통념도 깨뜨려 줍니다. 현대의 인간들이 곱씹어 생각해 보고 실제 삶에 적용해야만 하는 중요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진화의 역사를 보면 생명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는지를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호의와 친절에 보답할 줄 아는 착한 개체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줄 때 꼭 대가나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움은 다른 도움을 부른다. 한 번 도와주면 언젠가 누군가에게서든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기적인 집단이 더 번성할 것 같지만, 진화는 오히려 이타적 집단의 손을 들어주었다.”(74쪽)
모순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책에 따르면 식물들의 세계에도 생존 경쟁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전략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동할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 식물들은 수십억 년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어떤 식물들은 특수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은 18%정도까지는 피해를 참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독성물질을 사용하는데, 이는 동물들과의 공생을 위한 배려라고 합니다.
또 어떤 식물은 애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애벌레 위에 기생하는 말벌을 지원군으로 부르기도 하고, 자신들의 생장을 돕고 공격자들을 막기 위해 미리 주둔군을 두기도 한다고 합니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식물들의 세계입니다. 저자는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을 성공이라 여기며 추구해왔던 인간들에게 신비함과 지혜로 가득찬 '식물병법'을 제안합니다.
“식물의 방어와 공격은 결코 자신의 성장과 실현을 방해하지 않으며 동시에 적을 말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적들이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존재임을 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공존한다. 그들의 삶의 기술은 그대로 하나의 예술이다. 인간도 그렇지 않은가? 힘들고 아픈 시간들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적들의 핍박이 나를 얼마나 성숙하게 키워 주었는지 알게 된다.”(99쪽)
현대 인류에게 시급히 필요한 식물의 속성들
저자가 소개하는 식물들의 삶 중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상생과 공존이었습니다. 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면서도 이것을 다른 생명체와 나눕니다. 참나무 뿌리 주변 개미, 지렁이, 굼벵이 등, 나무 둥치의 이끼와 버섯, 나무 가지의 새 둥지, 땅을 건강하게 하는 것, 균류와의 상생 등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무한할 정도입니다.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를 유지하는 세계가 각종 차별이 만연한 인간 사회에도 깃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식물의 우수한 적응력과 수용성 또한 급변하는 환경에 놓인 현대의 인간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식물은 강풍, 추위, 강한 빛, 홍수, 가뭄 등에도 스스로를 '무한변화'시키면서 환경에 적응한다고 합니다. 변화를 조절하는 능력인 '항상성'은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대 인류가 참고할 만한 속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의 조언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우리들은 식물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들의 포용력과 넉넉함을. 그들의 뛰어난 생산능력과 생존기교를. 그들의 고독과 재활능력을. 그리고 그들의 기민성과 생활력을. '식물처럼 살기'는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도 결국 식물에게로 돌아가니까. 문명의 끝에서 결국 식물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식물처럼 살지 않으면 인간 또한 공룡처럼 멸종할 위기에 처할 것이다. 식물을 배우자. 급변하는 세상에서 비록 천천히 움직여도 식물처럼 적응하고 변화하여 항상성을 유지하자.”(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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