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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독한 존재야. 그래서 친구가 필요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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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독한 존재야. 그래서 친구가 필요해.

초원위의양 2017. 8. 6. 17:27

진정한 우정

작가
장 자끄 상뻬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17.06.3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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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낙서한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와..'하고 작은 탄성이 나오곤 합니다. 조금 서툰것 같아 보이는 그림들에 우리들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것처럼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꼬마 니꼴라로 유명해진 삽화가 장 자끄 상뻬의 <진정한 우정>을 휴가를 보내는 중간 중간 펼쳐봅니다.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라 불리게 된 후 '우정'이라는 말은 매우 낯설어졌습니다. 어린 딸들이 즐겨보는 어린이 만화영화 같은데서나 가끔씩 접하게 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년의 마르크 르카르팡티에(프랑스의 잡지 텔레라마의 전 편집장 겸 대표)와 장 자끄 상뻬 두 사람이 '진정한 우정'에 대해서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 책은 마르크 르카르팡티에(L로 표기)와 장 자끄 상뻬(S로 표기)의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르카르팡티에는 상뻬에게 우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정관계에 있다는 증거와 사례, 우정을 나눴던 상뻬의 경험 등에 대해 집요하게 묻습니다. 상뻬는 자신이 생각하는 '우정'에 대해 조곤조곤 대답합니다.


“(우정은) 갑자기 생겨나 당신 안에 척 하니 자리를 잡으면, 그다음엔 알아서 그 감정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거죠. 같이 살자니 거기에 의무도 있고, 나름대로 의식도 있고, 규칙 같은 것도 있을 테죠.”(7쪽)


우정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우정'이라는 낯설어진 가치를 찬찬히 곱씹어봅니다. 이와 함께 중간중간 삽입된 상뻬의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아주 쏠쏠합니다. 단순히 삽화가라는 말로 장 자끄 상뻬를 표현하기엔 부족합니다.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현대 사회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을 들을 정도인 상뻬의 그림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책입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절대 풀리지 않을 엄청난 문제는 고독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혼자라고 느끼게 마련입니다.”(43쪽)라고 말하는 상뻬인데 그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왜 우정관계가 필요한 걸까요? 저는 상뻬의 이 말에 대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고독하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한거죠.


“우리는 모두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죠.”(61쪽)

“우리가 걸음을 걷는 것만 해도 수많은 모순된 힘들이 서로 보완하고 조직됨으로써 가능해지는 겁니다.”(68쪽)


상뻬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함께 걸을 수 있는 관계,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인간의 인생이 그렇게 고독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은 어떠한가요?


“직업이 뭡니까? 라거나 어제저녁은 누구와 먹었어? 라거나 바캉스는 어디로 갈거야? 따위의 질문은 할 필요도 없는 거죠.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그저 불안감을 누그러뜨릴 요량으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63쪽)

“학교에서부터 경쟁은 시작됩니다. 1등, 2등, 3등…사람들은 경쟁에 혈안입니다. 정치가들은 여론조사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백분율에 열광하고요…점수를 내지 않는 테니스 경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71쪽)

“우리는 누구나 친구보다는 볼일 있을 때 어울리는 사람들을 더 많이 가진 것 아닐까요?”(85쪽)


매 순간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면서 '아, 나만 이런 것은 아니구나' 혹은 '나는 그래도 좀 낫네'라는 상대적 안도감을 느끼기 위한 인간관계 정도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경쟁상대가 되어버린 물결 속에서 빠져나와 친구와 '점수를 내지 않는 테니스 경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러면 상뻬가 생각하는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우정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우정의 의미와 그것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우정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합니다. 우정에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약속된 규칙 같은 게 있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이 따라야 할 의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정은 사소한 기적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우연과 필연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때론 의례적이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관계가 우정이기도 합니다. 친구라면 서로의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정관계에 있는 두 사람에게는 서로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게 됩니다. 한편, 조심성있게 그리고 현명하게 적당한 거리를 둘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되도록 상대와 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조심조심 주의를 기울이면서 말을 하면 오해를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대체로 사람들은 퉁명스럽게 행동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죠. 그러니 어느 정도는 점잔 빼는 태도를 간직하는 편이 더 좋겠지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50쪽)


상뻬는 우정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금까지 겪어온 인간관계에서 제게 부족했던 것이 이 부분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친구가 되는 것에는 상뻬가 말한 것처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친구관계를 시작하게는 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데에는 생각보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뻬의 말처럼 “거저 주어지는 건 없습니다.”


“사랑의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랑의 행위만 있을 뿐이죠”(79쪽)

“오직 노력만이, 설사 아주 미미하고, 상대방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더라도, 부단히 기울이는 노력만이 우정을 지속시킨다고요. 거저 주어지는 건 없어요.”(100쪽)


책을 덮고 찬찬히 제 주변을 돌아봅니다. 그간 나를 지나쳐간 혹은 내가 지나쳐간 친구라 불렀던 녀석들을 떠올려 봅니다. 내 삶에 매몰되어 돌아보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연락이라도 해봐야겠습니다. 희미하게 자국으로만 남아 있는 '우정의 행위'를 되살려보면서요.


“우정이란,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인간이 받아들여 볼 만한, 자신을 던져 볼 만한 도전입니다.”(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