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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

3색볼펜 덕후의 책 읽는 법

초원위의양 2017. 5. 25. 01:35

3색볼펜 읽기 공부법

작가
사이토 다카시
출판
중앙북스
발매
2016.02.11.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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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있다. 그 생김새와 냄새는 물론이고, 그것이 전해준 약속까지 모두 다 사랑한다. 때로 그 책들은 너무나 흉측하게 변해 있기도 하고, 역겹고 실망스러운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참 신기한 것은 흰색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빼곡히 박혀 있는 그 평범한 물건들에서 매번 하나의 신세계가 솟아나온다는 사실이다.”


“책은 결코 삶과 대립하지 않는다.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은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되 자만하지 않는 삶, 최소한의 긍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 그리고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 중에서 -


이토록 책을 사랑했던 한 독서가 샤를 단치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책 자체를 소중히 다뤄 밑줄을 긋거나 책장을 접지도 않을 것이지만, 누군가는 똑같이 소중한 마음으로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밑줄도 치고 빈 공간에 메모도 하면서 책을 읽을 것입니다.


책 자체를 다루는 방식 만큼이나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접근방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랜 독서가라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틀이 잡혀있을 것 같고, 반면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이들은 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지 몰라 막막할 것도 같습니다. 이런 초보 독서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습니다. 제목도 표지도 매력적이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을 나름 재미있게 읽고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 같은 <3색볼펜 읽기공부법>입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의 대가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과 상통하는 생각을 전합니다. 저자는 독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다가가는 좋은 훈련”(81쪽), “독서는 정보 습득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폭넓게 수용하는 행위”, “독서는 여전히 유효한 공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86-87쪽) 


그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요?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3색 볼펜'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자유롭게 밑줄을 그으며 읽기를 권합니다. 책이 지저분해지기에 밑줄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시험삼아 책에 밑줄을 죽죽 그어보니 나름의 쾌감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나만의 책'으로 삼는다 생각하니 크게 망설이지 않고 줄을 그을 수 있었습니다.


“책에 줄을 긋다보면 자연히 문장을 읽는 데 열중하게 된다. 즉, 문장에 자신을 더욱 강하게 관여시키는 것이다. 손을 움직여 줄을 긋는 육체적 행위는 문장과 자신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이 책과 자신 사이에 생겨난다.”(28쪽)


“3색볼펜 읽기는 독서의 '신체감각'을 기술화하는 방법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감각은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줄이라는 각인을 통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신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224쪽)


저자가 3색볼펜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결국 저자가 제안하는 책읽기 방법은 객관과 주관을 분리해가면서 책을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즉, 객관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하는 곳에는 파란색과 빨간색 밑줄을, 주관적으로 중요하거나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초록색 밑줄을 그으며 읽는 겁니다.


“3색 볼펜 읽기의 최대 목적은 주관과 객관을 전환하는 기술을 익히는 데 있다.”(59쪽)


특히 객관적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자의 독특한 표현이 힘있게 담긴 부분엔 빨간색으로 표시합니다. 문장에 맛이 있는곳 혹은 자신의 취향이 투영된 관심거리에는 초록색 밑줄을 사용합니다. 저자는 여러가지 책을 읽을 때 신체와 관련있는 표현 중 재미 있는 곳에 초록색 밑줄을 그어두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관심있어 하던 정보를 꾸준히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것과 같이 책을 읽는 훈련을 하게 되면 저자가 말했듯이 “객관적인 요약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곳을 구별해냄으로써 주관적인 생각을 단련”(88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책을 읽는 초보 독서가들에게 유익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가면서는 모든 독서가들에게 통찰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줄을 긋는 것은 타인의 강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달려있다. 스스로 책을 더욱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이 곧 책을 더욱 자유롭게 읽는 방식이지 않을까?”(132쪽)


“3색의 색 구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훈련으로써 중요하다. (중략) 줄을 그으며 읽어나가는 동안 사고를 깊게 하거나 능동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143쪽)


이렇게 책을 읽고 이해하게 되면 종종 무엇인가를 쓰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처음엔 그냥 흥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 읽었던 책이 그냥 머릿속을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 짧게 메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읽기와 쓰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자도 효과적인 읽기 방법을 이야기하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읽기와 쓰기는 별개의 행동이지만 서로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만약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기라는 행위의 축적을 기반으로 쓰기라는 스킬이 생겨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중략) 쓰기라는 작업은 방대한 읽기 위에 성립되는 빙산의 일각과 같다. 수면 아래에 보다 방대한 독서량이 존재할수록 쓰기는 당연히 쉬워진다.”(166-167쪽)


“비평을 잘하는 요령도 이와 같다. 오히려 줄거리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데 주목해보라. 결론이 해당하는 내용만 가지고 풀어나가다보면 결국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글을 쓸때는 반드시 자신만의 엣지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논쟁이나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는 지루한 문장, 즉 죽은 글이 될 수 있다.”(172쪽)


'죽은 글'. 무엇인가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가지고 있을 고민이 고밀도로 표현된 말인 듯 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어느 새 저도 책과 함께 3색볼펜을 들고 책읽기를 연습해 봅니다. '나만의 책'을 갖기 위해서, 그리고 '쓰기'라는 빙산의 일각을 물 위로 올려놓기 위해서. 어찌보면 촌스러워보이는 <3색볼펜 읽기공부법>.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닐지라도 어떤이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인 것만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