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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죽음과의 만남, 그리고 삶 본문
죽음이란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하루를 살면서도 죽음은 우리 곁에 무척이나 가까이 있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라 말하기도 꺼려진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지만, 나는 혹은 내 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피해갔으면 하는 것이 자연스런 생각이리라. 영원 혹은 영생을 믿는 크리스찬들에게도 죽음은 이 생에서의 삶, 관계를 끊어 놓기에 죽음을 대면한 순간에는 슬픔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어두운 그림자가 떠오르는 것은 내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감정이 발현되는 것이리라. 나에게 죽음이란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인데, '내가 함께 있을게'의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커다란 그림책인데, 책장을 열면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책장 가운데 그려진 오리 한 마리다. 오리 이외에는 거의 다 밝은 배경색으로 채워져 있다. 왠지 모르게 죽음을 이야기할 것 같지 않은 배경색이다. 오리는 얼마전부터 자기를 따라다니는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는 그 존재에게 말을 건다. 오리를 따라다니던 것은 다름아닌 죽음이었다. 죽음은 커다란 해골 머리에 약간은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다. 오리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을 반가워하는 듯 하다. 오리와 죽음은 그렇게 첫 대면 이후로 서로 대화를 하며 지낸다. 죽음은 그 동안 죽 오리 곁에 있었다고 한다. '만일을 대비해서'.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깨어버리는 묘사다. 볼프 에를브루호에게 죽음은 만일의 경우, 즉 내가 죽게 되었을 때에 나를 맞이해주는 존재다. 하지만 죽음이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다. 죽음은 만일을 대비해 내 곁에 있어주는 그런 꽤 괜찮은 친구다. 죽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부정적이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저자의 표현력이 참 마음에 든다. 죽음이 꽤 괜찮은 친구라니. 허허.
오리와 죽음의 대화에서 또 재미 있는 부분이 있다. 오리가 연못에 가자고 하자, 죽음이 겁내하며 말한다. 자맥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푸하하!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죽음이 겁내는 것도 있구나.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통에 한 동안 이 그림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민도 했었지만, 굳이 죽음이 부정적일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와 함께 연못에 들어갔다 나온 죽음에게 오리는 죽음이 추울까 걱정되어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기까지 한다. 아, 나도 살아가면서 죽음을 이런 방식으로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죽음은 오리에게 신나는 일을 제안하며 나무에 올라가 보자고 권한다. 오리는 죽음과 함께 나무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래 연못을 보니 고요하고 너무 쓸쓸해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이 없는 연못이 외로워 보인 모양이다. 그러자 죽음은 오리의 생각을 이내 읽고서는 "네가 죽으면 연못도 없어져, 적어도 너에게는 그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대면하거나 혹은 죽음을 생각할 때 보통 남겨진 이들을 걱정한다. 나 역시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싫어질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오리에게 한 이 말은 그런 걱정을 씻어주고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현명한 말이 아닐까? 그래 내가 죽으면 나와 함께 있던 것도 함께 없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렇게 되면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죽음 역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 역시 죽음이란 마냥 편안하게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오리의 삶이 다한 날, 오리는 죽음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을 따뜻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숨이 멎은 오리를 죽음은 물끄러미 바라다보다가 오리의 깃털을 쓰다듬어 펴 준후 오리를 안고 강으로 가 죽은 오리를 물 위에 띄어주었다. 떠내려가는 오리를 오래도록 바라다보던 죽음은 오리가 눈에서 사라지자 조금 슬펐다. 죽은 오리를 이렇게 떠나 보내는 죽음, 그리고 책의 마지막 한 줄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생각했던 것보다 유쾌하게, 하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게 아주 잘 그린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줘야 할 때 균형있는 설명을 해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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