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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대선후보들 <침묵의 기술> 벼락치기로 TV토론 준비하세요 본문
갑철수, MB아바타, 강간미수, 삼성세탁기, 설거지는 여자가, 동성애 반대.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자신을 갉아먹는 말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체로 이런 말들은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부메랑이 되곤 합니다. 이로 인해 토론회 후 후보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TV토론은 이제 두 번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선후보들은 남은 토론회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토론은 '말'로 하는 것이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선후보들은 지금까지보다 더 강박적으로 말을 쏟아내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대선후보들에게 역설적인 책 한 권을 추천합니다. 1771년에 출간되었던 <침묵의 기술>이라는 아주 짤막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침묵의 역설을 이해하고 토론회에 임한다면 지금까지의 실수들을 만회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학창 시절 시험전날 벼락치기 한다 생각하며 이 책을 읽으시고 토론 준비하는 데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난 해 한국어판을 내면서 번역자인 성귀수님이 당부한 점을 꼭 이해하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18세기 성직자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을 저자인 디누아르 신부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교회는 말 그대로 행정적 시스템으로 변질되어가는 추세였고, 순수한 신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이었다. 그에 따라 성직자 역시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공무원이자 관리로서 전통적 제도를 주관하는 가운데, 글과 말을 통해 그것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일이 직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서문, 한국어판을 펴내며)
때문에 책의 앞부분에 제시된 침묵에 대한 고찰 이외에 세부적인 내용들은 '보수적 사회질서의 수호를 강력하게 주창하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문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을 번역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루소, 볼테르, 디드로 등 혁명적 사상가들이 전복의 담론들을 앞다퉈 쏟아내던' 시기에 이들에게 침묵을 요구한 것을 보면 저자의 수구적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 제외하고 보면 디누아르 신부가 제안한 침묵의 기술은 '말'과 '글'로 인해 신세를 망칠 수도 있는 대선후보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썼던 글로 인해 정체성을 드러냈던 홍준표 후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짧은 시간만 주어지는 토론회 동안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하다 보면 말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다음 원칙들을 잠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지혜에서도 상책은 침묵하는 것이고, 중책은 말을 적당히, 적게 하는 것이며,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책이다.”(서론)
디누아르 신부가 제시한 침묵의 필수 원칙 14가지 중 인상적인 문장들을 살펴보시죠.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말을 해야 할 때가 따로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언제 입을 닫을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을수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할 말을 먼저 혼잣말로 중얼거려본 다음, 그 말을 입 밖에 낸 것을 혹시라도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짚어가며 다시 한 번 되뇌어보아야 한다.”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할 때 침묵은 넘칠수록 좋다.”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현명한 자의 침묵은 지식 있는 자의 논증보다 훨씬 가치 있다.”
“사람들은 보통 말이 아주 적은 사람을 별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을 산만하거나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아무리 침묵하는 성향의 소유자라 해도 자기 자신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만약에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1장 1절 침묵은 하나의 능력이다)
저자는 침묵의 대 원칙을 제시한 후 침묵의 유형을 10가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침묵의 유형에는 신중한 침묵, 교활한 침묵, 아부형 침묵, 조롱형 침묵, 감각적인 침묵, 아둔한 침묵, 동조의 침묵, 무시의 침묵, 정치적 침묵,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침묵이 있습니다. 디누아르 신부는 각각의 유형을 한 두 문장으로 설명하고 그러한 침묵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서도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대선후보들이 자신의 기질을 토대로 다양한 유형의 침묵 기술을 적절히 시연해 두 번 남은 토론회에서 이미지 쇄신을 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일반 시민들께도 일상생활의 대화와 인간 관계 속에서 위와 같은 침묵의 기술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에 한 번쯤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디누아르 신부는 말과 침묵에 대해 쓴 후 글과 침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저자는 우리가 “잘못된 글을 쓰거나, 이따금 너무 많은 글을 쓰거나, 때로는 충분히 글을 쓰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물론 저자가 서두에 언급된 것처럼 교회를 비판하거나 당시 체제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정당한 글쓰기조차 잘못된 글쓰기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부분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 저자가 생각하는 원칙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 볼 만한 문제제기입니다. 쓸데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좋은 내용이라도 지나치게 미주알고주알 글로 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진 한계를 무시해가며 닥치는 대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글을 쓰고자 하는 격한 감정에 취해 서둘러 글을 써내고 있지는 않은지?
책의 후반부에선 1장에서 다루었던 말의 침묵 원칙들에서 '말'을 '글'로 바꾸어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제안합니다. 이 역설적으로 보이는 침묵 원칙들을 토대로 글쓰는 제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침묵보다 나은 쓸거리가 있을 때에만 펜을 움직인다.”
“펜을 붙들어두는 법을 먼저 깨치지 않고서는 결코 글을 잘 쓸 수 없다.”
“글을 써야 할 때 펜을 붙들어두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며, 펜을 붙들어두어야 할 때 글을 쓰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긴요하게 쓸거리가 있을수록 특별히 조심해야만 한다. 먼저 생각을 하고 또 해보는 가운데, 혹시라도 글을 쓴 다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짚어가며 쓸 내용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아야 한다.”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경우 결코 그것을 글로 옮겨서는 안 된다. 절제는 그 때 넘칠수록 좋은 무엇이다.”
“아무리 글쓰기를 자제하는 성향의 소유자라 해도 자기 자신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만약 무언가를 쓰고픈 요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펜을 붙들어두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2장 4절 침묵은 하나의 처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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